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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Aug 03. 2022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왜 시험만 보면 망치는 거야! (上)


왜 시험만 보면 망치는 거야! (上)


학창시절 내내 나는 시험운이 유난히 안 따르는 편이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도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올 때는 거의 없었다. 기념비적인 0점을 맞은 적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 한 달 정도 부모님의 해외 출장을 따라갔다가 다녀왔는데, 다녀오자마자 수학 쪽지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객관식 문제도 있었는데 찍은 것마저 몽땅 틀려서 장렬하게 0점을 맞고야 말았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0점짜리 시험지가 쪽팔린다기보단,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노진구도 이 점수는 못 받아봤을걸! 


이건 시험운에 관해 수두룩하도록 많은 에피소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나는 전교 1등과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그럭저럭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었지만 전교권에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만 보면 오히려 내가 전교 1등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나는 수업시간에는 항상 선생님의 말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켜고 필기를 했다. 질문도 꽤 많이 하는 편이었다. 질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교탁 가장 앞자리에 앉았을 정도니까. 


내가 그렇게 살벌하게 공부를 하는 동안 전교 1등은 항상 내 옆자리에서 책상 위에 엎어져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가끔 그 녀석은 수업 도중에 코를 골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뚱뚱한 걸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녀석이었는데, 코를 고는 소리도 그 덩치에 걸맞게 지축을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한바탕 낮은 웃음이 교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럴 때면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와 그 친구를 번갈아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도 꿈나라를 헤매는 전교 1등을 깨울 수 있었던 선생님은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전교 1등은 전교 1등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그 전교 1등의 이름은 학교 외벽 현수막의 가장 위에 걸렸지만, 수능을 말아먹고 재수를 선택한 내 이름은 거기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내가 그 때 수능을 얼마나 처절하게 망쳤는지 악필 편지에도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긴장하다 수학은 답안지를 밀려 쓰고, 당황해서 멘탈이 나간 상태로 점심을 먹다 체하고 말았다. 체증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영어를 풀 때는 머리가 지끈거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나머지 나머지 과목을 풀 때는 이미 시험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때를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시험 운이 항상 안 따랐던 건 긴장을 유독 쉽게 하는 성격 탓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수능은 그 멘탈 관리를 극적으로 실패한 경우였다. 너무 긴장만 하지 않았더라면 수학 답안지를 밀려 썼더라도 그게 다음 과목 시험에까지 줄줄이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테니까. 적어도 놀란 속에 점심을 먹어서 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쫄보 성격은 서른을 넘어선 지금도 그대로이다. 논문 심사를 맡은 교수님이나 미팅에서 만난 출판사 직원처럼, 어렵거나 낯선 자리에서 사람을 만날 때 나는 항상 목이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렇게 예민한 아이의 학교 생활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을 학교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겁을 집어먹고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처럼 지냈다. 이따금 친구를 사귈 수는 있었다. 그건 운 좋게도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걸 발견할 때였다. 예컨데 나는 장난감 총을 수집하는 걸 좋아했는데, 우연히 옆 자리 친구가 교과서 귀퉁이에 총을 잔뜩 그려놓은 걸 발견하고는 곧장 절친이 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접점을 발견할 수 없는 타인을 나는 잠재적인 적으로 받아들였다. 내 콤플렉스인 말투를 지적하고 기분이 수틀리면 언제든 나를 때릴 수 있는, 조금 솔직해지자면 아버지 같은, 그런 적 말이다. 


내게 학교는 그렇게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학교에선 눈이라도 감고 있으면 누가 언제 코를 베어갈지도 모르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킬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선생님들이었다. 선생님들의 눈에 들면 아무도 나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을 으스대듯 주변에 보여줬다. 모범생이라는 단어를 마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그런 모습을 선생님들은 좋아했다.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아 수업 시간마다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으면, 재수가 없다고 뒤에서 욕은 좀 했을지 몰라도, 내 면전에서 대놓고 나를 무시하진 못했다. 


교탁 바로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 낮별(상상도)


대상 관계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년기에 경험한 양육자와의 관계가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성장하며 겪는 인간관계는 어린 시절 양육자들과의 관계 패턴을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나 또한 집에서 벌이던 투쟁을 학교에서 고스란히 반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 형의 자리를 선생님과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대신했고, 언제 퇴근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모르는 아버지의 자리에는 그 외의 거의 모든 사람이 들어갔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 집은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고, 그렇기에 집 밖 또한 전쟁터였다. 나는 세상을 그리 따뜻한 곳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는 뉴스레터를 통해 연재했던 에세이 원고를 다듬은 글입니다. 퇴고본이기 때문에 뉴스레터 연재 당시와는 다소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주 수/일요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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