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좀 이뻐해 봐, 임마. (下)
기숙학원을 나온 나는 원래 가고 싶었던 논술 학원에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 학원 선생님들은 약속하셨던 대로 교실 하나를 자습실로 내 주셨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재수생 친구 한 명과 함께 그 교실에서 죽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출근하기도 전에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저녁 9시쯤엔 선생님들과 함께 퇴근을 했다. 재수생 친구와 함께 그 교실에서 매주 한 번씩 국어와 수학 수업도 듣고, 교무실에서는 탐구과목 인강을 들으며 공부를 했다.
재수를 기점으로 나는 엄청나게 나태해졌다. 사실은 무기력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첫 두어 달은 제법 재수생답게 바짝 공부를 했지만 그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그리고 그 무기력은 지금까지도 일을 미루는 버릇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여유가 생기면 게을러지고 할 일이 있으면 미루고 싶은 건 누구나 그렇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래 준비한 중요한 일도 마감을 놓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을 정도로 나는 대책없이 나태해졌다.
그건 신경증의 발현이었다. 나는 항상 지쳐 있었다. 나는 어떤 관계든 사람을 만나기면 하면 과하게 긴장했고, 덕분에 집에만 들어서면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특히 어려운 관계나 공적인 관계와 관련이 된 일을 꾸준히 해내는 걸 더욱 어려워했다. 그리고 일을 미루는 데에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주어진 일도 처리하지 못할 만큼 지치고 버거운 상태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시위하는 것이었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이 글도 예정된 시간까지 완성하는 게 불가능한 시간까지 미루다 겨우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꽤 훌륭하게 연재를 해내고도 왜 마지막 글을 이렇게 쓰기 버거워하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여기에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더해져서 어떤 일을 내 마음에 들 만큼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더 꾸물거리며 시작을 미루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역기능적 완벽주의와 관련된 착수 지연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매일 무기력과 완벽주의와 싸우고 있다.
그런 무기력과 일을 미루는 버릇이 기숙학원을 나온 이 시점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내가 비로소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줄 어른들을 만났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집에서는 아버지와 싸우는 투사였고, 학교에서는 별 볼일 없는 성적으로 콧대만 잔뜩 세우던 아싸였다. 어느 곳에서도 나는 마음껏 울고 보채도 나를 받아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보살핌을 받고 싶다는 유아적 욕구를 일깨워 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여전히 나는 나잇값을 못하는 응석받이로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도 선생님들께 감사한다. 그때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는 깔려 죽을 것처럼 무거운 우울을 지고 계속 살아갔지도, 어쩌면 그에 깔려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곳의 선생님들이 표현의 자유라고 함축해 말하는 것에 나는 깊이 빠져들었다. 우울해도 괜찮다. 나약해도 괜찮고,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생각을 안고 살아가도 괜찮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 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충분히 올바른 방향을 스스로 찾아 나갈 수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타인의 표현을 존중하는 관용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선생님들의 생각은 내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그런 의미의 존중은 내가 아버지에게서는 거의 받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논술 학원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인상이 선명하게 남은 건 첫 수학 수업이었다. 나는 기숙 학원에서 성적을 제법 올리긴 했지만 수학만큼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하필 내게 트라우마를 안겨 줬던 그 수학만 성적이 지지부진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첫 수학 수업에 선생님은 수업 대신 모의고사 한 회분을 나눠주었다. 나는 새로 바뀐 환경과 처음 보는 수학 선생님이 낯설어 여전히 주눅이 들어 있었다. 잔뜩 쫄아있는 상태에서 받아본 수학 시험지는 마치 날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는 이번에도 징그럽게 어려웠고, 나는 또다시 패닉에 빠져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아무튼 겨우 시간 내에 모의고사를 마치고 채점을 했을 때였다. 뜻밖에도 1등급 커트라인을 넉넉하게 넘긴 점수가 나왔다. 점수를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내가 느낀 건 가슴 벅찬 희열이나 뿌듯함이 아니었다. 당혹감이었다. 뭐지? 내가 1등급이라고? 채점을 잘못 했나? 두 번이나 다시 점수를 매겨 보았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등급표가 잘못 나온 건가? 그런데 등급표를 재차 확인해보아도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제대로 치른 모의고사는 아니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아 본 것이다.
그걸 확인하고도 나는 여전히 기쁘지가 않았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 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낮이 어둡고 밤이 하얗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느 날 내가 자고 일어났더니 여자가 되었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본 적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런 일이 내 시험지에 일어난 것이었다. 당혹스럽다 못해 혼란해진 머릿속에서 펑, 하고 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내 표정을 본 수학 선생님이 넌지시 내게 물었다.
“K야, 몇 점 나왔어?”
“어, 92점이요. 근데 이상해요.”
“잘 봤네. 뭐가 이상해?”
“이 점수가 나올 리가 없는데… 제가 분명히 채점도 제대로 했거든요? 근데 1등급이 나올 리가 없는데…”
내 시험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한동안 시험지를 살피다, 이내 한숨처럼 웃음을 지었다.
“1등급 맞네. 널 좀 이뻐해 봐, 임마.”
선생님은 그 때 내 성적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그 한숨 같았던 선생님의 웃음은 안쓰러움에서 나왔을 것 같다. 얼마나 자신감이 떨어졌으면 이 아이는 자기 성적을 믿지를 못할까. 얼마나 이 아이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자기가 잘 해놓고도 자기가 잘 한 걸 인정하지를 못할까. 이 선생님에겐 그게 점수보다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아닐까. 널 좀 이뻐해 보라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그만큼의 성과를 거뒀으니 너 스스로가 그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해 보라고.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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