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 로즈는 정말 '퐁퐁녀'였을까

존재로서의 사랑, 그리고 생존자의 죄책감에 대해

by 낮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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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 : 17세의 소녀 로즈는 몰락한 명문가의 딸로, 로즈의 어머니는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로즈를 재벌가의 아들 칼과 결혼시키려 합니다. 칼은 로즈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호화로운 목걸이 ‘대양의 심장’까지 선물하나 로즈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원치 않는 결혼을 위해 타이타닉에 오른 로즈는 배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나 가난한 화가 잭이 로즈를 구해줍니다. 잭과의 사랑에 빠진 로즈는 타이타닉에서 칼의 눈을 피하며 잭과의 만남을 이어가지만, 타이타닉은 곧 빙하와 부딪혀 침몰하고 맙니다. 잭의 희생으로 침몰에서 살아남은 로즈는 칼을 피해 가명을 쓰고 새로운 삶을 살며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된 로즈는 ‘대양의 심장’을 찾아 타이타닉의 잔해를 조사하는 탐사대가 이끄는 배에 올라 타이타닉에서 있었던 일을 증언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로즈는 그날 밤, 아무도 몰래 ‘대양의 심장’을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타이타닉이 아직 아름답던 시절로 돌아가 로즈는 잭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퐁퐁남’, ‘퐁퐁녀’라는 말은 유행이 조금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입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퐁퐁론’에서는 결혼 이전에 문란한 이성관계를 가진 여성을 '퐁퐁녀'라고 부르며 설거지감으로 비유합니다. 이들은 연애를 즐길 만큼 즐기고 나서 자신의 화려한 이성편력을 숨기고 깨끗한 척을 하지요.


자신과 결혼함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설거지해주는 ‘퐁퐁남’은 대개 경제적으로 유능한 사람입니다. 퐁퐁남은 매력있는 ‘퐁퐁녀’와 결혼한 대가로 뼛골 빠지도록 가정에 돈을 벌어 바치지만, 여성의 마음은 ‘과거의 그 놈’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기계가 된 것 같은 박탈감이 이 ‘퐁퐁론’이 말하고자 하는 골자 같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의 주인공 로즈를 이런 관점에서 보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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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로즈는 능력이 뛰어나고 돈이 많은 남자인 약혼녀 칼 대신, 타이타닉에서 만났던 무일푼 화가 잭을 선택합니다. 아무리 남자가 여자에게 헌신하더라도 여자는 잘생긴 사람에게만 마음을 준다는 뜻이겠지요. 또한 이 관점은 타이타닉 침몰 사건 이후 로즈가 결혼한 남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 남편은 로즈를 평생 사랑하고 아이까지 가졌지만, 로즈의 마음은 가라앉은 타이타닉의 잭에게 가있었을 뿐이라고요. 평생 로즈의 진심어린 사랑을 얻지 못했을 전 남편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입장입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 굳이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성으로서 이러한 ‘퐁퐁론’이 대두되는 세태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이야기 속의 순수한 사랑마저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성별을 잣대로 서로를 미워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요?


이 글은 로즈를 위한 긴 변명입니다. 로즈는 상처받고 가련한 17살 소녀였습니다. 이쁘장한 얼굴과 명문가 출신의 부모님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한번도 사랑다운 사랑을 받지 못했던 어린아이에 불과했지요. 그런 아이가 자신의 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저 철부지의 백일몽 같은 로맨스에 불과했을까요? 아닙니다. 상처받은 철부지를 성숙한 영혼으로 탈바꿈시킨,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바꾸는 경험이었지요.




어린 로즈는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습니다. 재벌가와 결혼을 하기 위해 오른 배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운명의 사랑 잭을 만나고, 그의 희생으로 침몰로부터 살아남지요.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된 로즈는 타이타닉을 수색하는 보물 탐사대가 이끄는 배에 올라 타이타닉에서 있었던 일을 증언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로즈는 그날 밤, 약혼자가 주었던 목걸이 ‘대양의 심장’을 바다에 던지지요. 그리고 타이타닉이 아직 아름답던 시절, 그 배에서 로즈는 잭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결말에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로즈는 왜 그 귀중한 목걸이를 바다에 던져 버렸을까요? 심지어 로즈가 목걸이를 버린 그곳은 3년이나 그 목걸이를 찾아 헤매던 보물 탐사대의 배 위였습니다. 로즈가 자신이 목걸이의 마지막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리자 헬기를 보내어 로즈를 모셔오는 등 극진하게 자신을 대접한 이들이었지요. 과거를 정리하고 싶다면 그저 이 사람들에게 목걸이를 줘도 괜찮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굳이 로즈는 목걸이를 바다에 던져 버렸을까요?


저는 그 목걸이가 로즈에게는 죽음처럼 무거운 굴레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노예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 목에 차는 그 굴레지요. 직증 로즈는 그 죽음의 굴레와 계속 맞닥뜨립니다. 물리적인 죽음의 순간도 있지만, 인간이 아닌 사물로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절망에 빠지는 순간도 있지요. 아마 짐작컨데, 로즈는 작중 뿐만 아니라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싸움을 벌여왔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칼과 로즈의 약혼입니다. 재벌가의 아들 칼은 약혼녀에게 프랑스 왕실의 거대한 다이아몬드로 만든 목걸이를 선물로 줄 수 있을 정도의 부자였습니다. 반면 로즈는 몰락한 명문가의 영애로,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고 죽자 어머니에게 떠밀려 결혼을 하게 되지요. 사치스러웠던 로즈의 어머니는 딸을 부잣집에 팔아 현재의 생활을 영위하기를 원했습니다.


영화 초반에 “내가 재봉사로 일하는 걸 보고 싶니?”라고 로즈를 다그치는 모습은 로즈의 어머니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평범한 어머니라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딸을 어떻게 키웠을까요? 반대로 재봉사 같은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딸을 뒷바라지했겠지요. 그러나 로즈의 어머니에게 로즈는 돈을 위해 얼마든지 가족에서 내쫓을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로즈의 가정 환경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딸을 돈줄로 여기는 사람이니 그리 따뜻한 분위기는 아니었겠지요. 어린 로즈가 비뚤어진 모습을 보일 만 합니다. 타이타닉의 거대함을 과시하는 선주 이스메이를 ‘남자는 큰 거는 다 자랑하려 안달이지’라는 뉘앙스로 비꼰다거나, 자신과 잭을 쫓는 약혼자 칼에게 셋째 손가락을 들어 보이거나… 상담실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충동적이고 냉소적인 모습입니다.


로즈의 충동과 냉소는 절망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가 사랑을 잘 할 수 있고, 스스로 사랑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로즈는 타인을 사랑할 줄 몰랐기에 냉소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기에 돈에 팔려 결혼식에 끌려간다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로즈는 배의 난간에 몸을 던지려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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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타이타닉의 침몰로 인한 죽음의 위기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후, 잭과 로즈는 판자 하나에 몸을 의지해 바다를 떠다닙니다. 구명정이 다가오지만 잭은 얼어죽은 후였고, 로즈는 호루라기를 지닌 사람에게 헤엄쳐 가기 위해 잭의 시신을 바다에 놓아 줍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호루라기를 불어 구조를 받는 데 성공하지요.


여기에서 로즈의 선택은 앞서 결혼을 강요당해 자살을 기도하던 모습과 대비를 이룹니다. 자신은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고 살아남고 말겠노라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모습이지요. 로즈는 잭의 죽음에 다시 절망에 빠져 함께 바다에서 죽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이성을 잃은 채 구명정의 사람들에 잭의 시신을 찾아서 실어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로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조용히 살아남아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기를 선택하였지요.


세번째는 보물사냥꾼 브록 일행과의 만남입니다. 이 부분은 앞선 장면들처럼 극적인 절망의 순간은 아니지만 이때 브룩 일행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한 인간이 아닌 수단이자 사물로서 노인이 된 로즈를 대합니다. 이들은 로즈에게 친절했을지언정 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로즈의 목걸이를 어떻게든 찾아내거나, 아니면 로즈의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팔아 돈을 버는 것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을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난 트라우마의 현장을 되짚어보는 로즈의 고통은 이들의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로즈는 어릴 때처럼 냉소적으로 비꼬는 대신 담담하게 자신과 잭의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로즈와 잭의 이야기는 이들을 감화시키고, 돈에 미쳐 타이타닉의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지요. 즉 로즈는 자신을 돈을 벌 기회로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인간성을 인정받고 쟁취해낸 것입니다. 앞선 두 장면을 생각하면 노년이 된 로즈가 얼마나 지혜로워졌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무엇이 자살을 기도하던 소녀로 하여금, 자신의 존엄성을 주장할 수 있는 용감한 노인으로 바꾸었을까요?


그 단초는 물론 잭과의 만남입니다. 타이타닉이 출항한 첫날밤, 배에서 뛰어내리려던 로즈는 우연히 잭을 만납니다. 생면부지의 타인이 자신이 뛰어내리면 따라서 뛰어내리겠다고 하자 로즈는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자신의 절망을 처음으로 누군가가 알아봐주었다는 당황감이었겠지요. 그날 잭이 본 것은 로즈의 절망 뿐이었습니다. 잭은 약혼자처럼 자신의 신분과 외모만 탐하지도 않았고, 어머니처럼 딸을 돈벌이로 여기지도 않았지요. 그럼에도 잭은 로즈의 절망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철부지 소녀의 로맨스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에게도 자기 자신을 수용받지 못했던 마음의 구멍이 채워지는 순간이었지요. 로즈의 외모와 집안만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러한 조건으로 로즈를 판단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비꼬고, 냉소하는 자신마저도, 그래서 확 죽어버리려던 자신마저도 누군가에겐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로즈는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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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칼이 로즈에게 선물해 준 목걸이 대양의 심장은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축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걸이가 가진 양면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칼의 선물로서의 의미입니다. 칼과의 결혼은 로즈에게 자신이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폭력의 희생양임을 상기시킵니다. 칼의 애정을 상징하는 그 목걸이 또한 폭력의 매개물이지요. 이 화려한 목걸이가 로즈에게 하나의 굴레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잭과 함께 한 시간의 상징입니다. 오히려 목걸이가 로즈의 절망의 상징이었기에, 로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에 목걸이를 걸고 잭의 앞에 서서 초상화의 모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나의 상처를 화려한 옷으로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는 로즈의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잭이 어떤 사람이기에 로즈는 그에게 자신의 절망감을 먼저 내보이기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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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의 왕이다!

타이타닉에 막 올라탄 잭이 배의 난간에 뛰어가 외쳤던 이 명대사를 우리는 잠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잭은 무일푼 거렁뱅이에 불과했습니다. 타이타닉의 3등실 티켓도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도박으로 따낸 것이었죠. 그럼에도 잭의 입에서 터져나온 나는 세상의 왕이라는 선언은,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으로 살아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겁니다.


이런 잭의 확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화가 있습니다. 로즈를 구해 준 대가로 잭은 1등실의 저녁 만찬에 초대받습니다. 잭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갑부들의 사교 모임이었지요. 사교모임에 어울릴만한 옷조차 없어 빌려 온 옷을 입고도 잭은 주눅들지 않고 로즈의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전 필요한 건 전부 가졌어요. 제가 숨 쉴 공기와 그림 그릴 종이도 있죠. 더욱 행복한 것은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이며 누굴 만날지도 모르고 어딜 갈지도 모른다는 거죠. 어젯밤에는 선교 밑에서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배에서 여러분과 샴페인을 들고 있잖아요.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면 안 되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대처하는 법을 배워요. 순간을 소중히 해야죠.”


자신의 삶의 매 순간을 사랑했기에 잭은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 사이에서도 당당했을 것입니다. 잭이 얼음장같은 겨울 바다에서 로즈를 판자에 태운 채 죽어가면서도, 저는 그 순간까지 잭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얼어서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으로 잭이 로즈에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리라고, 행복한 삶을 누리다 편하게 죽을 것이라고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이 죽으리라는 절망까지도 삶의 일부로서 사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즈는 구조된 후에 ‘로즈 도슨’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순간, 칼이 준 물건은 필요 없다며 목걸이를 바다에 던져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삶을 바꾼 잭을 기리며 이 목걸이는 자신의 것이라고 당당히 차고 다닐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로즈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로즈는 목걸이를 조용히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지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에게 가까운 예를 들어 봅시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건입니다. 10대 학생 다수를 포함한 수백 명의 목숨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꺼져갔던 비극입니다. 비극은 그 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 중 또 많은 이들이 삶을 등지기를 선택했습니다. 친구들을 두고, 가족들을 두고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였지요. 작년 할로윈에 이태원에서 있었던 압사 사고에서 살아남은 한 학생도 친구들 가운데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너무도 이른 길을 가고야 말았습니다.


영화에서 직접 표현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살아남은 로즈의 삶이 어떠했는지 감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겉보기에 로즈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착한 딸을 낳은 행복한 여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로즈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이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것을, 로즈는 과연 담담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그러한 맥락에서 목걸이는 세번째 의미를 가집니다. 로즈에게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하는 물건이지요. 상상컨데 행복을 기원하는 잭의 축복마저도 로즈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잭이 유언으로 남긴 축복의 말들이 역설적으로 로즈의 삶을 지배했겠지요. 로즈에게 행복한 삶이란 잭이 남긴 평생의 숙제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목걸이는 로즈가 잭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는, 바꿔 말하자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되었을 것입니다.


잭은 죽었기에 그가 남긴 축복은 로즈의 삶을 지배하는 영원불멸의 지상명령이 되었겠지요. 마치 목걸이에 박힌, 바닷속에 수십 년을 잠겨도 빛을 잃지 않은 다이아몬드처럼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할머니가 된 로즈는 모두가 잠든 밤, 홀로 보물 사냥꾼의 배 켈디쉬의 난간에 오릅니다. 그리고 로즈는 주머니에서 대양의 심장을 꺼내어, 바닷속으로 던지지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대양의 심장을 보며 로즈는 뜻 모를 한숨을 내쉽니다.


앞서 저는 로즈에게 목걸이가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말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잭이 남긴 저주 같은 축복의 증거물이었지요. 그러나 노년의 로즈는 보물 사냥꾼 브록에게 주저없이 전화를 걸고,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기꺼이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로즈는 무력한 노예처럼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의미있는 행동을 시도한 것이지요. 그 용기는 로즈가 그 죽음의 굴레를 직면하고 벗어던질 힘을 기어코 키워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굴레를 씌운 것은 잭이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던진 힘의 뿌리에도 역시 잭이 있었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잭으로부터 절망마저도 수용받은 경험이었겠지요. 그 자그마한 희망의 뿌리로부터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운 로즈는 마침내 목걸이를 바다에 던지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힘들었지만 괜찮아. 인생은 축복이니까. 나는 세상의 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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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로즈의 환상인지 꿈인지 모를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타이타닉이 위풍당당하게 대양을 거닐던 시절로 돌아가, 로즈는 그 때 배에 있던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잭과 재회합니다. 이때 잭과 뜨겁게 키스하는 로즈는 대양의 심장이 아닌, 훨씬 가벼운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두 사람이 마침내 자유로운 영혼으로 마주하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잭은 로즈의 연인이기도 했지만 삶의 구원자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결핍된 존재 그 자체로서 수용받는 경험을 채워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 사람이었지요. 잭의 헌신의 무게만큼이나 버거웠던 부채감으로 평생을 살아내었던 로즈는 마침내 그 부채감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목걸이를 하고 나타납니다. 상상컨데 그 목걸이는 로즈 자신이 고른,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목걸이가 아니었을까요?


이제 잭은 구원자가 아닙니다. 로즈도 비련 속의 가련한 공주님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를 서로로서 존재하게 하는 자유로운 두 영혼이 만났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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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서로를 자유롭고 평등한 영혼으로 만나는 것이 이토록 어렵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한 서로로 존재하게 하나요? 돈으로, 명예로, 성욕으로,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우리는 서로를 규정하지 않나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성장이 일어납니다. 그 과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관계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고 사랑하는 법을 잘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다행히 나이가 들더라도 사랑하는 법은 언제든지 배울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은 욕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와 그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평생을 걸려 마침내 잭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로즈가 그러했듯이요.


퐁퐁론과, 퐁퐁론을 렌즈로 사랑을 재단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참 안타까운 존재입니다. 모든 가치가 물질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시각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간 사랑이 서로를 얼마나 자유케 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서로에게 이득이 되느냐로 가치가 매겨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을 하루라도 미루기 위해, 저는 오늘도 사랑을 믿겠습니다.




이전에 이 글이 처음 연재되었을 때, 장문의 비판을 댓글로 달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날이 선 반응이 낯설었던 저는 그때 별다른 답을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여기에 그 답을 짤막히 적어볼까 합니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잭은 작중 로즈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이는 잭이 로즈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던 난봉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반면 칼은 귀중한 보물을 로즈에게 선물하는 등 최선을 다해 로즈를 사랑했음에도 로즈는 칼을 배신하고 잭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또한 한 명의 남성으로서 이 관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랑과 인정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실패에 좌절합니다. 갖은 노력을 통해서 부와 명예를 쟁취하고도, 또 이를 자신의 사랑에게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실패하고 만 칼의 이야기는 절망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어떠한 물질적인 노력보다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로즈는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당하고 가족에게 배반당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습니다. 옳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 옳은지 배울 수조차 없는 가족에서 로즈는 자라나고 버려졌습니다. 칼이 로즈에게 건넨 것이 목걸이가 아니라 따뜻한 이해였다면 어땠을까요? 끝없는 절망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 신경질을 부리던 로즈에게 칼이 조용한 미소를 건넬 수 있었더라면, 아마 이 영화의 결말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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