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해리 증상에 대해
영화 '아멜리에'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 :
파리의 소녀 아멜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길이 너무 좋아 심장이 쿵쾅댔던 것이 심장병으로 오인받아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가정교사를 자처하던 어머니는 어느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투신자살한 관광객에게 깔려 죽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집에 은둔하며 어머니의 납골당을 보살피는 일에만 몰두하고, 아멜리는 상상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라납니다. 어른이 된 아멜리는 우연히 한 노인의 어릴 때 장난감 상자를 돌려주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멜리는 평생 남몰래 선행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멜리는 니노라는 남자를 짝사랑하게 됩니다. 이를 알아챈 니노가 다가올 때마다 아멜리는 도망을 가 버리고,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이웃 뒤파엘은 아멜리에게 '용기있게 당장 남자를 붙잡으라'고 조언합니다. 늙고 외로운 화가 뒤파엘의 진심어린 조언에 아멜리는 조심스레 문 밖에 나가, 자신을 기다리던 니노와의 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멜리의 모습을 떠오르는 대로 묘사한다면 이런 말들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스럽다, 깜찍하다, 4차원에 사는 것 같다, 용감하다, 그런데 이상한 데에선 소심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처럼 아멜리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집에서 우연히 찾은, 수십 년 넘게 버려져 있었던 장난감 상자를 이제는 노인이 된 소년에게 몰래 갖다 준 것이 그 선행의 단초였지요. 장난감 상자를 열어본 노인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아멜리는 평생 좋은 일만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아멜리의 남몰래 4차원 선행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길을 건너기 어려워하는 맹인을 인도하며 지금 이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재잘재잘 설명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자신이 누군지도 말하지 않고 휭 사라져버립니다. 권태로운 노년을 보내는 아버지가 아끼는 인형을 훔쳐 승무원 친구에게 주고는 인형이 전 세계를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 아버지에게 보내지요. 가게 사장에게 갑질을 당하는 채소가게 아르바이트생 뤼시앵을 위해 사장의 치약과 무좀약을 바꿔놓는 소심한 복수를 대신 해주기도 합니다. 못말리는 짱구의 성인 여성 버전을 보는 것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그런데 이런 용감무쌍한 아멜리도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짝사랑하는 니노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지요. 아멜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체 니노가 잃어버린 앨범을 찾아주는 것부터 천천히 니노에게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상 밖에 니노가 아멜리가 일하는 카페를 찾아와 자신에게 당신이 내 앨범을 찾아준 그 사람이 맞느냐고 묻는 순간, 아멜리는 자신은 당신이 찾는 그 여자가 아니라고 발뺌합니다. 그리고 니노가 그 자리를 뜨자 서러운 마음에 무너지고 말지요.
영화를 보는 사람의 복장이 터지는 장면입니다. “네, 제가 당신이 잃어버린 앨범을 찾아 준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으면 됐을텐데, 갑자기 소심해진 아멜리가 제 발로 굴러들어온 인연을 발로 뻥 차버렸으니까요. 아멜리는 왜 사랑 앞에서는 용기를 낼 수 없었을까요? 왜 그렇게도 용감무쌍하던 아멜리는 갑자기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아멜리의 성장 환경을 먼저 되짚어볼까요? 군의관 출신인 아멜리의 아버지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애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예가 아멜리의 심장병 사건입니다. 어린 아멜리는 한 달에 한번 아버지가 건강 검진을 해줄 때에만 아버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멜리는 그게 너무 좋아서 심장이 쿵쿵 뛰었고, 아버지는 엉뚱하게도 그게 심장병의 징후라고 생각해 아멜리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을 시키지요. 무뚝뚝한 아버지의 지나친 과보호가 아멜리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아멜리의 가정교사를 자처한 어머니는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성격이었습니다. 아멜리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윽박을 지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홈스쿨링 덕택에 친구 하나 없던 아멜리의 유일한 좋아하던 금붕어가 어항 밖으로 뛰쳐나가고, 이를 발견한 아멜리가 소리를 지르자 어머니는 그 금붕어를 강에 버리기까지 하지요. 아멜리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린 딸에게 따스한 온정을 베푸는 성격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멜리는 아주 뜬금없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닥뜨립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손을 잡고 나오던 두 모녀를 성당 꼭대기에서 투신자살한 관광객이 덮치고 만 것이죠. 아멜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맙니다. 아내를 잃은 충격에 아버지는 집에 은둔하며 어머니의 납골당을 보살피는 일에, 아멜리는 상상 속 친구들과의 놀이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아멜리의 성장 배경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애착 손상입니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친밀한 애착 관계는 성격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요컨데 사랑을 잘 받은 아이가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멜리는 애착 손상의 가능성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신경질적인 어머니와 무뚝뚝한 아버지로부터 아멜리가 잘 사랑받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면 상상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와 어울릴 수 있었겠지요. 상상 친구를 사귀는 것은 어린 아이에 자주 일어나는 흔한 일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상상 속에 푹 빠져 살던 아멜리의 삶을 고려할 때 어린 아멜리의 상상 친구에는 독특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원래 심리적 외상은 전쟁터의 참상을 경험한 군인들에게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전쟁 못지 않은 강력한 외상적 사건, 예컨데 천재지변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범죄나 성폭력 등에 노출되었을 때 부적응적 문제가 발생해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하지다. 함께 손을 잡고 걷던 어머니의 벼락 같은 죽음을 경험한 아멜리는 과연 괜찮았을까요? 무뚝뚝한 아멜리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아멜리를 잘 보듬어줄 수 있었을까요? 아마 둘 다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감독이 영화 내에서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지만, 아멜리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행동의 이면에는 사랑받지 못했고, 상처받고도 보살핌받지 못했던 아픔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처를 안고도 아멜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왔던 것이지요.
영화 내내 아멜리는 현실에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카페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것에 만족할 뿐, 경제적 문제나 연애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당장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사소한 것을 목격하더라도 황당무계한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맙니다. 어린 시절 상상 친구와의 놀이에 몰두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습니다.
아마 이는 현실도피적인 행동이었을 겁니다. 아멜리에게 현실이란 아주 냉혹한 세계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 잃을지 모르는 곳, 상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신을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곳이었지요. 어린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함께 나누고 버텨주는 어른의 존재입니다. 어른과 함께 할 때 아이는 당장 죽을 것 같았던 고통이 사실은 버틸 만 하며,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지요.
그러나 아멜리에게는 함께 고통을 나눠 질 어른이 없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아버지는 충격에 빠져 어머니의 납골당만 하염없이 꾸미고 있었고, 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아버지를 대신해 아멜리를 지지해 줄 선생님이나 또래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아멜리의 외상 경험이 해리 장애라는 증상으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외상을 겪은 아이들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현실을 떨어뜨리는 해리 증상을 보이곤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나 스스로가 아닌 것처럼 느끼는 이인증, 또는 자신과 현실 사이에 어떤 벽이 있는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 비현실감이 있지요. 현실의 고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가혹할 때, 그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떨어뜨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공상이나 백일몽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또한 유사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자신을 위안해 줄 어른도 없었던 아멜리는 그 현실에서 상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아름다운 상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아멜리는 언제나 밝고 사랑스러워보일 수 있었습니다. 상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은 늘 즐거우며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기로 한 것이지요.
그러나 아멜리가 언제까지고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1997년, 아멜리는 자신의 방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멜리의 마음 깊은 곳에선 어떤 생각이 지나갔을까요?
아마도 지금까지 몸을 담아 온 꿈과 환상의 세계가 내 믿음만큼 안전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동화 속 공주처럼 아름다고 선량한 왕세자비가 치정 문제로 고통을 받다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습니다. 현실은 위험한 곳이라는 공포가 상상의 벽을 깨뜨리고 아멜리에게 닥쳐 온 것입니다. '엄마와 다이애나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처럼 나도 저렇게 갑자기 죽어버릴지도 몰라. 나도 안전하지 않아,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해!' 머릿속에선 경보가 울렸겠지요.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피해 공상하는 데 익숙했던 아멜리가 이러한 자신의 무의식을 명확히 인지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데 그쳤겠지요.
그 순간 아멜리는 우연히 타일 뒤에 숨겨진, 수십 년이 지난 장난감 상자를 발견합니다. 아멜리는 상자의 주인을 찾아 돌려주고 그 사람이 기뻐한다면 평생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지요. 이는 뜬금없이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보호를 받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였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아멜리의 무의식은 아멜리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착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아멜리는 좌충우돌 남을 닥치는 대로 돕기 시작하지만, 몰래 선행을 베풀었거든요. 사랑받고 싶어서라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아멜리가 한편으로는 새로운 인연을 맺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처럼 저 사람도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슬프고 무서울 때 아버지처럼 저 사람도 내 고통을 무시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아멜리의 마음에 숨어 있었다면,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건 깊이있는 관계를 피함으로 또다시 상처받지 않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때문에 아멜리는 우연히 만난 니노를 볼 때마다 커져가는 사랑의 감정이 무서웠을 겁니다. 마음 가는 대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던 아멜리는 니노 앞에서 갑자기 치밀해집니다. 니노가 잃어버린 앨범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도록 유도하면서 아멜리는 자신의 모습을 멀리서 슬쩍 내비치고, 니노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니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려 줍니다. 그리고 수수께끼를 자신이 일하는 카페를 통해 알려주지요. 이러한 계획적인 면모는 사랑 앞에서 아멜리가 느낀 불안을 잘 설명해줍니다. 또 상처받을까 두려웠던 아멜리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획적으로 천천히 니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게 잘 먹혔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평생을 즉흥적으로 살던 아멜리가 계산적이고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꾸미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과 비슷했을 겁니다. 그랬기에 아멜리는 계획이 틀어지면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니노가 카페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말을 건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계획 밖의 일이었지요.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은 아멜리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였고, 그건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불안함에 융통성을 잃은 아멜리는 그만 소심해지고 맙니다. 자신은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니노가 자리를 뜨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리고 말지요. 사실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미웠겠지요.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아멜리에게 또다른 기회가 찾아옵니다. 니노는 직감적으로 아멜리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앨범을 찾아 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챕니다. 그는 아멜리의 계획에 얌전히 따라가는 대신, 아멜리의 직장 동료에게 접근하고 아멜리의 이름과 집을 알아내지요. 그러나 아멜리는 니노와 직장 동료가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한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아멜리가 사랑을 잃었다는 착각에 집에서 홀로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 니노는 아멜리의 집을 찾아갑니다. 현관 앞에서 니노는 아멜리를 부르지만 아멜리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니노는 ‘다시 올게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아멜리의 집을 떠납니다. 아멜리가 다시 눈물을 쏟으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리지요. 전화를 건 사람은 아멜리의 고민을 알고 있었던, 이웃집의 늙은 화가 뒤파엘이었습니다.
“넌 유리인간이 아니야. 직접 부딪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 지금 이 기회를 놓쳐 버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네 심장은 내 앙상한 몰골처럼 말라버려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 거야. 그러니까 당장 가서 남자를 붙잡아!”
뒤파엘은 왜 이런 조언을 건냈을까요? 유리처럼 뼈가 잘 바스라지는 병 때문에 ‘유리인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집에 칩거하던 뒤파엘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이웃이 채소가게 아르바이트생 뤼시앵과 아멜리였습니다. 뒤파엘은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 <뱃놀이 일행의 오찬>을 끊임없이 모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덧붙일 수 있지요. 유리인간이라는 별명은 단순히 그의 병약함 뿐만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잘 상처받는 섬세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집에 은둔해 같은 그림만을 반복해 그리는 그의 모습은 상처받은 사람이 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공상의 세계를 끝없이 헤매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르지요. 마치 어린 아멜리가 어울릴 사람이 없어 상상 친구와 놀이와 열중하던 모습처럼요.
그러나 뒤파엘은 아멜리에 사랑을 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뒤파엘에게 아멜리는 늙고 병든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또한 아멜리가 니노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자신의 공상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받기를 너무도 두려워했던 그는 아마도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뒤파엘은 늙어가는 자신의 심장이 '앙상한 몰골처럼 말라버려서 산산조각'이 난다고 느끼면서, 사랑을 할 능력이 있음에도 겁을 먹고 움츠러든 아멜리를 안쓰럽게 여겼겠지요.
아마 뒤파엘은 아멜리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고개만 들면 될텐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만 건낼 수 있으면 될텐데, 그 정도 용기만 낼 수 있으면 아멜리는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뒤파엘의 조언을 들은 아멜리는 황급히 방을 뛰쳐 나갑니다. 아멜리 혼자만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신이 사랑을 할 힘이 있을 몰랐을 뿐이었습니다. 아멜리가 상처를 받더라도 아멜리의 친구들은 아멜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멜리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잇고, 사랑을 할 능력이 있음을 아멜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 스스로가 아멜리의 따스한 마음의 증거였습니다.
아멜리가 현관문을 벌컥 열자 그 곳에는 아직 아멜리의 집을 떠나지 않은 니노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뜻밖의 상황에 화들짝 놀랍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멜리가 니노를 밀치는 대신, 그의 팔을 붙잡고 집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니노에게 키스를 하지요. 니노 또한 아멜리에게 천천히 키스하지요. 상처에 입을 맞추듯, 조심스럽고 숙연한 키스였습니다.
키스를 받는 아멜리는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뜻밖의 상황에서 일어난 불안을 외면하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니노의 포근한 체온을 느끼며, 아멜리는 깨달았을 겁니다. 상처는 이미 나았음을, 이제 그 아문 자리에 사랑이 피어나고 있음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