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디 강점기
지난 글에서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인디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한참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인디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때는 2023년 3월, 코로나가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어 대학교에서도 온라인 강의에서 오프라인 강의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원래도 제이팝을 정말 좋아했지만 약 3주간의 긴 일본 여행을 마치고 온 터라 내 플리는 온통 제이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때 저장하고 들은 노래들을 보면 랏도, 범프, 아도, 켄시, 스피츠 등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제이팝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카톡 프로필 음악으로 설정되어 있는 '실리카겔'이라는 밴드를 발견했다. 당시에는 이름이 참 특이하구나 하고 그냥 넘겼다가 며칠 뒤 자주 사용하는 벅스에서 그 이름을 또 마주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궁금해져 제일 위에 있는 'No Pain'이라는 곡을 틀었고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도입부부터 몰아치는 기타 리프와 강렬한 드럼,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보컬까지. 이건 도대체 뭐지? 분명 내가 듣던 인디 밴드의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음악이 뜰 것이고 난 이런 음악을 찾아 들을 것이라고. 그렇게 약 10년 만에 나는 제2의 인디 음악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였고 제이팝으로 가득하던 플리는 점차 한국 인디로 물들어 갔다.
이후 오월오일, 나상현씨밴드, 유다빈밴드 등 다양한 인디 밴드 음악을 들으며 음악 세계를 넓혀가던 중 인생 뮤지션을 만나고 만다. 바로 '한로로'이다. 지금이야 여러 방송에도 나오면서 한대음 대상까지 수상하며 모두가 아는 국민 가수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그 당시에는 1집 EP 이상비행도 나오기 전인 갓 데뷔한 신인 시절이었다. 그녀의 데뷔곡인 '입춘'을 처음 들었던 날, 나는 또 한 번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가사의 깊이와 젊은 시절의 김윤아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 그리고 멜로디까지. 이게 겨우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인의 데뷔곡이라니. 그 이후로 한로로는 내 최애 가수가 되었고 정말 많은 노래를 들었고 정말 많은 공연을 다 따라다닐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지금은 그 열정이 조금은 식었다. 홍대병 말기 환자에게 나만 알던 가수에서 모두가 아는 가수가 된 그녀의 음악이 조금은 멀게만 느껴진다(..)
원래도 월디페를 비롯한 페스티벌은 여러 개 다니고 있었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매 달, 아니 매주 공연을 다니게 되었다. 펜타포트와 부락과 같은 대형 페스티벌은 물론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열리는 소규모 공연, 그리고 섬머소닉 페스티벌이라는 고등학생 때부터 꿈꾸던 해외 페스티벌까지(그 당시는 울트라나 툼랜과 같은 EDM 페스티벌을 꿈꾸진 했지만). 세어보니 매년 크고 작은 공연을 50개 이상 나디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공연을 많이 다니게 되고 나니 나도 이런 멋있는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무 살 때 한 EDM 페스티벌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감독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해 나도 그의 길을 따라 이 길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그렇게 공연 기획을 알아보던 중 아직도 기억나는, 스무 살에게는 큰 금액이었던 110만 원의 수강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을 접고 말았다.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시에 너무나도 쉽게 꿈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부모님에게 빌려서라든, 알바를 좀 더 열심히 해서라든. 아니라면 페스티벌 알바라도 하며 현장 경험이라도 쌓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계속 바뀌고 있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말 후회가 된다.
아무튼 당시 못 이룬 꿈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 번 더 준비하게 된다.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콘서트 기획자 워크숍 모집이 뜨자마자 바로 지원하였고 면접을 거쳐 최종 20인으로서 워크숍을 수강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 직장인에게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회사에서 5분 거리라 퇴근 후 힘들지만 늘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였다. 그렇게 6개월의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수업을 듣고 팀원들끼리 직접 공연도 만들어 보았다 (이에 대한 과정과 회고는 다음에 자세히 풀어 볼 예정이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공연 기획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공연 기획자가 되고자 했으나 다시 접고 말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일단 워크숍을 통해 공연을 만들어 본 거 가지고는 경험이 워낙 적기도 하고 엔터 업계의 워라밸을 듣고 나니 문득 공연을 만드느라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보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전에 하던 일을 다시 준비하면서 취미는 그저 취미로만 남기기로 결심했다. 물론! 공연 '기획자'로서의 길을 포기했을 뿐이지 '기획' 자체는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해볼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브런치 방향성도 공연 기획 쪽보다는 공연 혹은 음악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공연 기획을 보고 들어오신 분이라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물론 위에서 얘기했듯이 직접 참여한 공연 기획에 대한 과정과 회고는 언제 한 번 짚고 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