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_카프카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그레고리는 평소와 다른 아침을 맞이했다. 늦잠을 잔 것이다. 그럼에도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출근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지배인이 그레고리의 집까지 찾아왔다. 출근을 하지 않은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족의 설득과 지배인의 협박에 결국 그레고리는 방문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모습을 본 모든 사람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의 눈동자를 가득 채운 것은 침대만한 바퀴벌레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레고르 가족의 삶은 점점 바뀌어갔다.
그레고리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밤늦게 퇴근하며 얻은 월급으로 윤택한 생활을 했던 가족들이었다. 그레고르 덕분에 아버지는 비만이 됐고, 여동생은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으며, 집에 가정부를 세 명이나 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직장을 구해 월급을 받아야만 했으며, 그레고리와 마찬가지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개인의 취미와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는 바퀴벌레가 된 그레고리를 잘 챙겼다. 그러나 심적 여유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레고리에 대한 배려도 사라졌다. 그저 방치했으며, 나중에는 문을 걸어잠그고 그가 죽기를 바랐다. 결국 그는 죽었으며, 그의 가족은 행복을 찾게 됐으며,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프란츠 카프카는 20세기 초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령 소속이었고, 해당 도시는 다민족 국가로 통합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체코에서 생활했지만, 소설은 독일어로 집필했다.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카프카는 내성적이었다. 카프카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던 아버지는 그의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 폭언과 폭력을 사용했다.
독서를 좋아했던 카프카는 아버지의 조언 또는 강요로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을 했다. 또한 배려심이 넘쳤다. 공원에서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와 함께 이틀 동안 인형을 찾으러 다녔다. 결국 인형을 찾지 못해 그는 아이에게 인형으로부터 온 편지라며 자신이 작성한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이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그의 열성적인 모습 덕분에 1차대전 징집 대상이었지만, 공단 필수 인력으로 선정되어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서 집필을 이어가던 그에게 폐결핵이 찾아왔고,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죽기 전까지도 아버지라는 강압적인 파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유언으로 “모든 원고를 태워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지만, 친구는 그의 유언을 듣지 않았다. 카프카의 원고를 들고 독일 홀로코스트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도망갔다. 덕분에 미완성 원고가 우리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① 바퀴벌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바퀴벌레로 변신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거액을 벌어다 주는 배려심 넘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은 빚을 지게 됐고, 삶의 빛을 잃어버리게 됐다. 그 모습에서 책임감을 느낀 그레고르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라도 나의 행복이 아닌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며칠만에 그레고르는 일반사원에서 영업사원으로 승진하며 가족들에게 호화로운 생활을 선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어느 순간부터 실적이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직장의 압박과 가족이라는 부담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바퀴벌레가 됐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며 식량만 축내고, 가족의 보살핌을 필요로하는 벌레가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를 의미할까?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온 폐인이 될 수도 있고, 산업재해로 장애가 생겨버린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길을 걷다 교통사고 등을 당해 식물인간이 되버린 가장일 수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날 이후 “돈을 벌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어머니일수도, 아버지일수도, 형제, 자매일수도, 배우자일수도 있는)이 갑자기 “돈을 벌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면, 즉 바퀴벌레가 됐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② 그레고르 가족의 선택
그레고르 가족은 처음에 돌봄을 선택했다. 그레고르가 다시 돈을 벌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작중 어머니는 “그가 다시 우리에게도 돌아온다면…그 사이 있었던 악몽을 더 쉽게 잊을 수 있잖아”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그레고르가 벌레가 된지 두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가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은 그런 희망을 버렸다. 이후 그레고르의 방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오물과 점액으로 더럽혀진 채 방치됐다. 가족은 그를 더이상 돌보지 않았고, 나중에는 가정부에게 돌봄을 위탁했다. 아니 그의 방을 청소를 위탁했다.
이후 그레고르의 존재가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자, “그가 우리를 이해한다면…”, “…이미 파악하고 스스로 나갔을 것이에요.”라는 말을 그레고르 면전에서 말한다. 즉,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수 없으니, 그레고르 스스로 사라져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배려심 많은 그레고르는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한 채, 가족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거둬들였다.
그레고르 사후 가족들은 실용적인 집으로 이사갈 수 있었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동생은 능동적으로 변하며 새로운 희망을 쟁취하기 위한 기지개를 펼쳤다.
③ 그레고르와 대비되는 가족들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사업에서 망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퀴벌레가 됐을 때 자신을 희생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린 사업의 실패 때문에 불행을 겪는 가족들을 가능한 빨리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기계가 됐다.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냉담했다. 물론 처음에는 모두들 기뻐했다. 하지만 익숙해짐과 동시에 고마움을 잃어버렸다. “그레고르가 많은 돈을 벌어서 가져다 줬음에도 예전처럼 가족들이 기뻐하는 일은 없었다. …중략… 부모님은 그에게 그이상의 특별한 애정을 주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된 상태에서도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불쾌한 일들을 참아내야만 한다”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가족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부끄러워했으며, 징그러워했다.
그레고르는 5년 간 빚을 갚기 위해 사표를 주머니 속에 둔 채로 일을 지속했지만, 가족들은 5개월도 참지 못하고 그레고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④ 당신은 그레고르인가? 그의 아버지인가? 여동생인가?
그레고르는 돈보다, 자신의 행복보다 가족이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면 아버지는 “벌레가 된 첫날부터 그레고르에게 엄격했다.” 그레고르로부터 가장 많은 금전적 혜택을 받은 아버지가 그레고르를 가장 먼저 버렸다. 그는 그저 그레고르를 가족이 아닌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딸을 바라볼 때에도 그랬다. “그녀가 아주 예쁘고 화사한 여성으로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고…중략…아이를 위해 착실한 남자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예쁘고 화사한 딸을 부유한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여동생은 그레고르 덕분에 음악을 할 수 있었고, 그레고르 덕분에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그 역할을 잃을까봐 아무도 그레고르의 방을 청소하지 못하게 했었다. 이후 그레고르를 가장 먼저 버리자고 말했던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다 능동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 사람이다. 즉,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다. 자신만의 자아를 설정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피해를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당신은 어떠한 사람인가? 그레고르처럼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버지처럼 가족을 돈으로 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가족이란 공동체는 모르겠고 나 스스로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가?
1917년에 출판한 변신은 현대사회에 아주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돈을 위해서 가족을 살해하는 보험사기, 무안참사에서 돈에 초점을 맞춰 유가족에게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이 있다. 돈을 위해 양심을 팔며, 돈을 위해 불법을 저지른다. 다들 부자가 되길 원하며 돈을 제1의 가치로 여긴다.
하지만 그곳에 행복이 있을까? 돈으로 원하는 제품을 사면 다른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돈으로 사치를 부려도 그 옷이 당신을 대변하지 못한다.
밥말리는 “돈은 숫자고 숫자는 무한해서 돈으로 행복을 채울 수 없다”고 했다. 돈이 삶의 중심이 되면, 만족은 사라지게 되어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진짜 친구는 당신이 어떤 옷을 소유하던, 어떤 자산을 소유하던 상관없이 당신의 존재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있고, 편안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돈보다 자신의 존재를, 가족의 존재를, 친구의 존재를, 공동체의 존재를 더욱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레고르처럼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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