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일까 후회일까
엄마는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김치칼국수를 만들어주곤 하셨다.
김치칼국수라, 그리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음식이다.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대충 자른 김치를 넣고 끓인 뒤 마치 김칫국과 같은 모양이 되면 칼국수 면을 넣고 휘휘 저어버리는 게 끝이다. 쉽지만 내가 엄마표 김치를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그 음식을 먹고 나면 그날의 괴로움과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마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기에 엄마도 그걸 느꼈을 것 같다.
혼자 산 지도 벌써 5년이 지나간다. 종종 집밥이 그리울 때면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참조해 음식을 만들어본다. 멀찍이서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하면 왜 재료 손질부터 도전인 건지 모르겠다.
특히나 김치칼국수가 그렇다. 앞에서 말했듯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기에 호기롭게 도전했었다. 집에서 가져온 김치도 있었으니 아무리 못해도 비슷한 맛이라도 낼 줄 알았으나, 반전 없이 장렬하게 실패했다. 그 뒤로 한 번도 다시 만들어본 적이 없다. 도전하기엔 김치가 너무 아깝다. 고추나 배추 같은 재료부터 직접 키워 김장을 하는 엄마기에, 그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김치를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게 되는 게 꽤나 싫다.
20대 중반 이후로, 특히 혼자 살기 시작한 후로 나는 엄마를 존경해 왔다. 그 나잇대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녀는 내 나이에 벌써 나와 동생까지 두 아이를 키웠다. 그 당시에는 여성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육아에 일에 게다가 집안일까지 해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들이 더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엄마는 그 모든 것을 다 해냈는지 모르겠다. 회사만 다녀도 지쳐버리는 나의 모습과 비교해 보니 반성할 점이 참 많다.
그러나 만약에 엄마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었겠지만, 엄마가 나 대신 자신의 인생이나 커리어를 선택한다고 한들 나는 응원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했던 그녀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다고 말한 엄마에겐 집에서 딸 기분을 살펴 칼국수를 끓이는 것보다 넓은 세상에서 자신만을 위한 글을 읽고 쓰며 세상과 끝없이 부딪히는 모습이 더욱 어울린다.
그렇지만 그것은 가정일 뿐이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이미 성인이 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매일 집안일을 한다. 여자로서 대학을 나오는 것조차 어려웠던 그 당시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국립대를 나온 그녀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커리어를 지키지 못했기에 지금은 아르바이트만 전전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딸에게 칼국수를 해줄 수 있어서, 행복해하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이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지 않았다.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괜찮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가 행복하다면 나도 좋은 거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엄마의 요리를 먹으러 가야겠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