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민들레

by 한 올

혼동의 소리들이 혜인을 깨웠다. 빛이 서서히 혜인의 눈꺼풀 안으로 들어오고 얼굴들이 혜인을 보고 있었다. 수술 담당의사가 왔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다행히 전이되지도 않았습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의사가 새 생명을 선물한 것처럼 의사에게 감사했다. 중세기 중죄인의 몸에 사슬이 감기어 있듯이 혜인의 몸에는 몇 개의 호스가 꽂혀 몸을 두르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마취가 풀리자, 예리한 칼로 가슴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선 신들린 무당처럼 혜인은 가슴으로 고통의 칼날과 맞섰다. 점차 통증이 쾌락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욕망의 찌꺼기가 모두 씻겨 나가는 환희로 고통의 칼날은 꽃으로 변해 있었다.

퇴원한 혜인은 기력 빠진 빠삐옹이 작은 감방 안을 많은 발걸음으로 걷듯이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노란 꽃에 혜인의 눈길이 닿았다. 입원하고 수술하는 와중에 민들레를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었다. 꽃은 당연히 말라죽어있거나 적어도 시들시들해야 했는데 입원하기 전보다 더 싱싱하게 피어있다.

입원하기 전, 혜인은 집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높이가 백 미터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에 매일 올랐었다. 꼭대기엔 세 평 정도의 양지바른 평평한 땅이 있다. 그곳엔 산에 오른 사람들이 쉬어 가도록 긴 의자가 놓여있다. 혜인은 늘 의자의 같은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보지 못했던 노란 민들레가 보였다. 길가나 들판에 흔히 피어있는 그 꽃이 산봉우리까지 씨를 날려 자신이 늘 앉는 의자 앞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꽃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꼈기에 자신도 꽃을 바라보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영혼이 깃든 꽃이라고 믿었다. 당장 그 꽃을 가져다 곁에 두고 싶었다. 맨손으로 흙을 파서 꽃을 옮겨 왔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민들레에게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혜인은 하루의 일을 시작했었다. 혜인은 작은 꽃 모양의 액자에 사진을 끼우듯이 남편의 모습을 꽃에 대입시켰다. 외출할 때나 집에 돌아왔을 때도 꽃에게로 갔다. 혜인은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남편에게 수다 떠는 것처럼 꽃에게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스프레이로 꽃을 촉촉이 적셔주고 마치 남편의 발을 씻겨주듯이 물수건으로 잎사귀를 매일 닦아주었다. 꽃이 힘없이 보일 때에는 남편이 아플 때 간호하듯이 꽃을 보살폈지만 무슨 까닭인지 산에서 옮겨온 후 꽃은 시들시들하고 생기를 되찾지 못했었다.

꽃은 여전히 환한 얼굴로 혜인을 보고 있다. 혜인이 수술하던 날 태어난 손자가 아버지를 닮은 것을 보며, 아들에게 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것인지 모르겠다던 딸의 전화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사람의 영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거다. 나의 환상으로 너를 이 낯선 곳으로 데려왔었다. 미안하구나. 네가 뿌리내린 곳으로 돌려주마. 너는 네 삶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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