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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독후감/도서추천] 데미안 - 헤르만 헤세

by 지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인상 깊었던 구절


아직 열한 살도 안 된 아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사람들도 더러 있을 줄 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 일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인간을 보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다. 자신의 감정들의 한 부분을 생각 속에서 수정하는 법을 익힌 어른은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이런 생각을 잘못 측정하고, 이런 체험들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 싱클레어 독백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러면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 데미안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고.

- 데미안



중요한 건 이 온전한 유일신, 구약과 신약의 신이 탁월한 분이기는 하지만 원래 그가 표상하는 신은 아니라는 점이야. 그는 선, 고귀함, 아버지다움, 아름답고 드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지.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뤄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바로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로 기리면서도 생명이 근거하는 성생활은 간단히 묵살하고 어쩌면 악마의 일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

- 데미안



금지된 것을 하면 대단한 악당이 될 수 있지. 거꾸로 악당이라야 금지된 일을 할 수 있기도 하고 말이야. 사실 그건 그냥 편안함의 문제거든!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 데미안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하나가 된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지고의 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 싱클레어 독백



누군가를 죽이거나 어떤 어마어마하게 불결한 짓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건 아브락사스임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개 씨가 아닐세.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하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 피스토리우스








동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미 없이 넘기던 유튜브 영상 와중에 우연히 민음사 유튜브를 시청하게 되었다. 책 소개 영상을 보고 데미안이라는 고전문학에 관심이 생겼다.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무언가 고되고 권태롭게 느껴지던 찰나였다. 그날 당일이었나 다음날쯤 기분 좋게 나의 최애 문학 폭풍의 언덕과 함께 민음사에서 출판한 데미안을 구입하였다. 그리곤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책이었다.

오랜만의 독서라 첫 페이지를 폈을 때 느껴지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해하지 못할까, 집중하지 못할까, 읽다 말아 버릴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전에 구입했던 민음사 출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다가 초반에 무너져 먼지 속으로 사라져 버린 기억이 있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2편까지 있는 책인데 1편의 3분의 1도 못 읽고 책장 속에 들어갔더랬다.. (그 뒤로도 두세 번 다시 읽기를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분명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데미안을 구입할 때도 설렘과 동시에 꽤나 긴장이 되었다.









줄거리


먼저 데미안은 사람 이름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싱클레어. 싱클레어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와중, 어린아이 특유의 자칫 어긋난 패기로 인해 질이 좋지 않은 친구와 엮이게 된다. 그 후로 그 친구에게 끌려 다니며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어두운 세계에 빠지게 된다. 이 와중 전학생 데미안이라는 구원자를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한순간 싱클레어를 크로머에게서 떨어뜨려 주었다. 그 후 싱클레어는 본래 화목한 가정생활 속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둘은 그 뒤로 관련 이야기를 꺼낸다거나 긴밀한 친구로 이어지진 않는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서 왠지 모를 거부감과 초월 감을 느꼈다. 데미안은 간혹 마주치며 싱클레어에게 색다른 영감을 주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 둘은 헤어지게 되고,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퇴학위기를 맞을 만큼 방랑한 생활을 보내다 우연히 공원에서 한 소녀를 보고는 영감을 얻었다. 그 영감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그때 데미안에게서 쪽지를 받는다. 에 대한 것이다. 이 책에서 새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굉장한 상징성을 가진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고뇌하며 잠시간의 방랑한 생활을 종료한다.

그 뒤로도 싱클레어는 자신의 안에서 계속 꿈틀대는 새와 데미안, 아브락사스에 관하여 관철하며 보다 더 넓은 세상을 얻고자 자신만의 사투를 벌이며 깨달음의 과정을 겪어간다.









느낀 점


데미안이라는 고전문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을뿐더러 읽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책 내용이 나에겐 매우 철학적이라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내 지식과 이해력의 한계이다. 이해 안 가는 구절은 두세 번씩 반복하여 읽어보고 대략 이런 뜻이겠거니 하고 넘기며 읽었다.

(사실 모르는 단어도 꽤나 나와서 나는 0개 국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데미안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싱클레어와 함께 나도 생각의 전환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머리가 띵하였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나는 성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성경에 따르면 모든 생명은 고귀하며 그것은 선과 악으로 따지자면 선이다. 하지만 생명이 생기는 과정에 대하여는 악으로 규정지어진다. 과정 없이는 생명은 태어날 수 없다. 하지만 성은 악이며 생명은 고귀함으로 규정된다. 생명이 생기기 위한 과정인 성은 불가피한 요소이며 긴밀히 연관되어 있지만 그 둘은 분명히 선과 악으로 규정지어진다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하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단정할 수 없다.



데미안은 보통 사람들이 나쁘다 옳다 라고 규정한 것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하거나 그대로 믿지 않고 본인의 철학대로 새로이 해석한다. 항상 생각하고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은 나 자신의 판결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불결한 것으로 흘러들기가 쉽고 그렇게 사는 인생은 참 쉽다고 한다. 여기서 머리를 띵하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회피하며 쉽게 사는 인생이었던가.



사실 뒤에 작품 해설을 기대하며 겨우 나 나름대로 해석하여 완독 하였지만 해설본을 읽어도 명쾌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들이 으레 생각하는 대로 빠져 사는 것은 죽은 인생이나 다름없다고. 나의 철학을 가지고 이 세상의 편협한 범주를 벗어나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며 도울 이도 없는 외로운 길이다. 하지만 그걸 깨닫고 난다면 어떤 운명이든 마땅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처음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보았을 때 같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 같지 않은 초월적인 것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싱클레어 또한 데미안을 닮아가며 남들이 싱클레어를 보는 시선이 어릴 적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보던 시선과 동일한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 책을 보고 있자면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광적으로 느껴지며 남들이 봤을 때는 약간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남들과는 다른 초월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느끼기엔 이들은 사람이라기 보단 반은 신, 반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제2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쫄깃하였다. 과연 내가 데미안 같은 존재를 만난다면 어떠한 영향력을 받을 것인가. 데미안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눈을 한 번만 들여다보고 싶다.



언제든 데미안은 한 번 더 읽어 볼 요량이다. 그때는 조금 더 발전된 이해력으로 깨닫고 싶다. 지금도 읽고 난 느낌의 잔재가 가시질 않는다. 이 오래된 책이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 옛날이나 오늘날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언제나 느끼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어느 곳이거나 사람이 살아가고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개인적인 해석과 느낀 점을 표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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