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이 필요해지는 시간
1.
충남 합덕에 사시는 시부모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오셨다.
두 분 다 당뇨나 고혈압, 뇌병변 같은 지병이 있으셨고 정기적으로 검사도 하고 약도 처방받아 가셨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아버님은 늘 빵을 사러 나가셨다.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손주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한 번을 거르지 않으셨다.
그날은 둘째 손주랑 함께 나가셨다. 나가신 지 얼 마 되지 않아 아이가 울며 뛰어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넘어지셔서 옆에 있던 아줌마가 119 불러서 갔어요. 할아버지가 혼자서 못 일어나요!” 곧바로 119 대원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평소 다니시는 병원으로 안내를 부탁드렸다.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나보다 구급차가 늦게 도착했다.
놀란 아버님은 속이 안 좋다며 토해내셨고 얼굴은 왼쪽 눈 밑에서 코까지 바닥에 갈려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다행히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때 놀란 이후로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상처 치료를 하느라 아버님이랑 단둘이 병원에 가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짧은 거리지만 그때 드라이브를 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해 주셨다.
“네 엄마랑은 참 안 맞아.” 라든가
“인생엔 정답이 없어. 그때는 정답이었다가 지금은 아닌 것도 있지.” 라든가
“너무 애쓰지 마라.” 라든가.
2.
어느 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남편이 말했다.
“올 해에는 제주에서 한달살이 해 보는 거 어때?”
사실 작년에는 단번에 거절했었다. 초등학교 1, 3학년인 아직은 어린 아들들 둘만 데리고 남편도 없이 외딴곳에서 그렇게 오래 떨어져 지낼 자신이 없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달랐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책임과 시부모님들에 대한 마음속 멍도 그냥 다 두고 떠나고 싶었다. 어디라도 떠나야 했다.
참 신기하게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지끈거리던 머리가 감쪽같이 나았다. 매일 침대 속에만 있고 싶었던 몸도 도서관이나 서점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나의 에너지 가득한 모습. 모든 게 설렘으로 바뀌는 신기한 순간이었다.
제주에서의 긴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역이나 집이 중요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실 지나고 보니 그런 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방학에 맞춰 가려니 마음이 급해졌다.
여행비용이 정해졌을 때 ‘위탁교육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도농교류 차원으로 전학하지 않고 학교장의 재량으로 아이들이 지역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교환학생 시스템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추억과 경험을 할 수 있고 나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겼다.
이렇게 여름방학 한 달과 위탁교육으로 약 한 달 해서 두 달간의 여행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