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과 그의 자식
3.
2016년 설 연휴가 끝나는 날 많은 눈이 내렸다.
시어머니는 마당의 눈을 쓸다 미끄러지셨고 5번 디스크 파열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예전부터 다리가 불편하셨던 시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오셨다.
아이들은 학원 하나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학습하고 있었다. 내가 데리고 다니며 생활 속 여행을 즐기던 시기라 아버님이 함께 하게 되는 시간은 아이들 케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혼자서는 차려놓은 식사도 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붙박이 가정보호사가 되었다.
큰아이의 학교 상담이 있던 날, 나는 교실 뒤 환경미화 게시판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반 아이들이 쓴 시가 붙여져 있었다. 상균이 시의 제목은 ‘거북이’였다. 다시 태어나면 장수하는 거북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내용의 시였다. 상담하면서 들은 아이의 일상 키워드는 ‘죽음’이었다. 할아버지가 집에 오시면서 평소 하던 것들은 다 할 수 없게 되었고 나이 들어 힘들고 아픈 할아버지 때문에 아빠도 엄마도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고 했다. 내가 아이들을 너무 신경 못쓰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은 누구나 언젠가는 알게 되는 인생의 섭리지만 아직 어린 아들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상상 속의 불안감만 키워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선생님은 이런 환경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밝은 신체 활동으로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래서 주말에는 남편에게 아버님을 부탁하고 아이들과 평소 하던 근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님의 건강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아버님은 대소변도 못 가리시는 상황이 됐고 우리 가족의 다른 생활은 다시 없어졌다. 아버님의 병간호에 모두가 지쳐갔고 집안은 온통 회색빛이 감돌았다.
아침 5시 반이 되면 남편은 일어나 아버님 목욕을 시켜 드렸다. 플라스틱 작은 의자를 샤워부스 안에 두고 아버님을 앉혀 드리고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매일매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꾸준히.
어느 날은 남편이 출근하고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아버님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걸음은 더디고 보조기를 밀고 가는 내내 바지 밑으로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변이 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님은 화장실로 들어가셨고 내가 거실 바닥을 닦고 있을 때 남편이 부랴부랴 집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어 선 남편의 한숨소리.
어려서 어른들이 “벽에 똥 칠 할 때까지는 살지 말아야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벽에 똥을 칠하다.’ 나는 그 말은 나이가 들어 치매에나 걸려야 하는 행동쯤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님은 화장실에서 바지에 뭍은 똥을 어떻게든 혼자 처리해 보고 싶으셨던 듯하다. 아들, 며느리 보기에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셨을 테니까.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는 아버님 손에, 벽에, 변기 여기저기에 똥이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며칠 지난 어느 밤, 아버님은 우리 부부를 불러 앉히시고 말씀하셨다.
“이제 나도 요양원에 갈 때가 된 것 같구나.”
4.
언제나처럼 해가 떴고 원래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도 눈을 떴다. 한 여름 제주의 아침은 참 이르다. 일어나서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책도 읽었는데 시간이 여유롭다.
어제 애월 도서관에서 빌려 온 다 읽어버린 책들과 선글라스를 챙겨 아들들을 학교까지 바래다줬다. 각자 교실로 들어가는 아들들에게 친구들의 관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끄러워하는 형제를 보고 있는 내가 긴장이 되기는 하지만 잘할 거라 믿는다.
등교하기 전에 미리 와서 봐뒀던 학교모습에 나보다 더 긴장했을 아들들, 하지만 적응력도 나보다 훨씬 좋다는 걸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아들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이제 아침 8시 10분. ‘나는 무얼 해야 하나?’ 반납하겠다고 가지고 나온 책은 있지만 애월 도서관은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새별오름’으로 정했다. 짧은 코스이기도 하고 오르기도 수월하다고 하니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국민안전처 긴급재난문자〕폭염주의보 발령 중! 야외활동 자제와 주변의 노약자를 살핍시다. 가축, 작물, 어장 관리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이른 아침인데도 해가 쨍해서 좀 걱정이었는데 재난 문자를 받았다. 근래에 나는 체력도 마음도 거의 요양상태이지만 마음먹었을 때 해 내고 싶어서 용기를 냈다.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는데 그 많은 제주 여행 중에 차로 가거나 한라산에 오른 것 말고는 작고 예쁜 오름들에 오른 적이 없었다.
아직 제주가 성수기도 아니고 오늘 같은 평일 아침에 인적 드문 곳을 오르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인지 소길로를 지날 즈음부터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제주는 동네마다 날씨 차이가 많아서 이 동네에 폭우가 쏟아져도 5분만 차 타고 가면 해가 나기도 했다. 폭염주의보 중에 만난 구름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주차장은 넓은데 차는 한 대도 없었고 푸른 억새는 올라가는 입구가 어딘지도 모르게 자라 버려서 한참을 헤맸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이 힘들어서 인지, 내 마음이 설레어서 인지……. 뜨겁지 않은 바람은 구름도 보내 주고 올라가는 내 엉덩이도 밀어줬다. 온통 푸른 길에 아무도 없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느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그 설렘이 느껴져 심박수가 오르는 듯하다.
정상에 한참을 서서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제주 서쪽지역의 ‘해돋이 포인트’ 이기도 한 새별오름을 자주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오름이 제주 오름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거라고 감히 자신한다.
올라온 길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벌써 가지 말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다 내려와서도 가라앉지 않는 흥분. 나는 둘레길을 또 걸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두 달 제주 살이를 하는 동안 세 번의 일출을 이곳에서 보았고 다른 가족들이 잠시 들렀을 때도 꼭 함께 올랐다. 혼자서 점심을 먹어야 할 때는 햄버거나 커피를 사서 주차장에서 먹고 가기도 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애월 도서관에 들러 책도 반납하고 아들들을 데리러 갔다. 먼저 나와 다른 반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큰아이와 새로 사귄 친구들을 몰고 온 둘째. 함께 학교 앞 ‘나들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렇게 우리 제주 살이의 1교시는 각자가 긴장하고 설레어하며 달콤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