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장례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염습을 생략하는 무염습,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는 무형식, 3무(無)장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https://www.mk.co.kr/article/11985764 “빈소 없애고 3일장 안 해요”…고인의 마지막길, 추모도 조용해진다)
늘 가던 장례식장, 대부분 지인의 가족상이다. 부조 봉투를 챙기고 고인에 대한 예의로 절을 올리고 상주들과 인사를 나눈다. 조문을 온 내가 누구인지 서로 일면식을 트고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며 장지가 어딘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의례적인 질문들을 주고 받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흔한 장례식장의 풍경이다. 고인보다 상주와의 관계로 다녀오는 조문이 대부분이다.
내가 처음 장례를 접한 건 스물한 살 때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자택 장례를 치렀다. 시골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고 시신은 방한 쪽에 모셨던 기억이 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물한 살, 죽음은 그냥 무섭고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사람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처한 상황과 인생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는 천차만별일 것 같다. 결국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것은 꽃이 피면 지는 것처럼 자연의 조화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전히 내게 죽음은 무겁고 두렵다. 죽음이라는 인생 여정의 마침표를 정리하는 형식이 장례식이다.
나는 5남매 맏이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장례식에 대한 무거운 부담은 늘 가슴 한쪽에 묻어두고 있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두고 장례를 떠올리는 게 불효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언젠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걸 나이가 드니 알게 됐다. 건강하게 오래 자식들과 잘 계시기를 당연히 바라지만, 한번은 맞아야 할 이별 절차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은 어쩔 수 없는 K-장녀의 몫이다.
몇 해 전 내게 엄마는 ’큰딸이니 너는 알고 있어라, 끝방 농 위에 있는 보자기 쌓인 상자가 엄마, 아버지가 갈 때 입을 옷이다‘라고 하셨다. 가실 때 당황해할 자식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배려다. 그리고 보건소에 가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고 하셨다. 나이 들면 갈 때는 가야 한다면서 절대 당신 몸에 의미 없는 생명 연장 기구들을 달지 말라고 수차례 전하며 유언이니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삶의 여정이라는 걸 나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무빈소, 무염습, 무형식 3무(無) 장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한동안 묻어둔 장례식에 대해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형식 없는 장례를 치르는 것이 늘 다녀오던 장례식에 비해 야박하고 성의 없는 이별로 비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보여 주기 식 의례가 아니라 떠나는 이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남은 이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 거기에 더해 따뜻한 배웅의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장례 절차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이별의 방식이 다르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선택이 중요하다. 하지만 장례에 관한 이야기를 부모님과 나누기는 어렵다. 다행히 엄마는 편하게 큰딸인 내게 속마음을 건네신다. ’이 세상에 와 다섯 자식 낳고 다들 사이좋게 잘 사는 거 보고 좋았다. 고생한 거 다 잊을 만큼…. 이 세상 떠날 때 내 새끼들이 배웅해 주면 된다. 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엄마의 전언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허례허식을 워낙 싫어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도 딱 질색인 엄마가 과연 자주 보지도,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적 없는 사람들의 조문을 좋아하실까? 그렇게 3무(無) 장례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장례라는 절차를 당신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게 조심스럽게 여쭤볼 수 있는 용기를 내보고 싶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아니면 끝까지 용기를 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3일장이든 3무(無) 장례이든 엄마가 떠날 때 배웅받고 싶은 ’내 새끼들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진심은 꼭 지켜드리겠다.
’우리 다음 생에도 만나자. 내 새끼들로 만나자‘ 가장 솔직하고 따뜻한 엄마의 예고된 이별사다.
’예!예. 알았으니 오래오래 우리랑 더 놀다 헤어집시다‘ 오늘은 엄마의 이별사에 혼잣말로 답을 대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