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농사꾼 2년차 부부, 밭농사도전기(8)

고추모종 심기 9일전, 이제 준비작업은 끝났다.

by 선심화

세상 공짜 없는 농사의 질서를 배우는 초보농사꾼 부부

260409 고추모종(68일차).jpg 파종한지 68일차 되는 고추모종, 올해 처음으로 고추씨를 발아해 모종으로 키웠다. 사랑스럽다.

이제 며칠 뒤, 지난겨울부터 정성 들여 키운 고추 모종이 세상 밖으로 나와 밭에 심기게 된다. 농사를 지으며 가끔 사람 사는 것과 별반 다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공짜 없다’ 농사도 그렇다. 씨앗도 시기가 맞아야 싹을 틔우고, 작물도 자랄 수 있는 제때 맞춰 심어야 한다. 성급한 마음에 이르게 땅에 심은 작물들은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어 시들어버리기 일쑤다. 섣부른 사람의 욕심이 계절의 섭리를 앞설 수 없다는 걸 농사를 지으며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 귀농 후 첫 밭농사를 하면서 급한 마음에 먼저 심은 작물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맥없이 주저앉는 걸 보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경험으로 배웠다. 흙은 거짓말 하지 않았고, 정성을 담은 노동에는 반드시 결과물을 안겨 주는 게 농사의 정직한 이치였다.


그래서 올해는 내 안의 조급함을 눌러 앉히는 게 우선이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심는 것을 멈추고 작물들이 땅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렇다고 기다림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시간은 아니다. 모종이 밭에 나와 심어지고 서서히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작물이 심어질 곳에 미리 밑거름을 넣어 영양을 채워주고, 두둑을 높게 만들어 충분히 흙 속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연약한 모종 하나가 이 공간에 심어지지만, 이 과정은 어릴 적 아이들을 키울 때와 너무나 닮은 꼴이다. 아이들이 자랄 때 늘 그 자리 같아도 어느 날 문득 뛰어오는 아이가 훌쩍 커 보일 때가 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꼬마 주먹밥 하나라도 더 먹여 어린이집에 보내 키우던 딸이 이제는 엄마의 슬픔을 공감해 주는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엄마의 정성으로 하나하나 채워져 어른이 된 아이처럼, 고추 모종도 영양 가득한 흙에서 깊이 뿌리 내릴 거라 믿으며 사랑으로 공간을 채웠다.


지난 몇 해 동안 연습으로 한 고추농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고추는 뿌리를 내린 직후부터 물 공급이 굉장히 중요한 작물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영양이 공급된 흙에서 뿌리를 내리더라도 적당한 습기가 없으면 뿌리가 말라 성장을 멈추게 된다.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물이다. 그래서 물 공급을 위해 높은 두둑 위에 ‘점적 호스(아주 작은 구멍이 일정하게 뚫려있어 물이 조금씩 나오는 호스)’를 깔았다. 일반 호스로 물을 주면, 흙의 겉만 젖고 뿌리까지는 전달되지 않거나 강한 물살로 흙이 파일 수 있어 방울방울 고르게 나오는 물이 천천히 뿌리까지 가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점적 호스다.

260327 울진밭(점적호스자동관수 시험가동).jpg 점적호스를 깔고 시험가동한 모습...물이 잘 나온다.

점적 호스를 깐 후에는 전체 두둑을 검은 비닐로 덮었다. 이를 보통 ‘멀칭’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도 이유가 있다. 우선 점적 호스로 물을 공급했는데 그 물이 증발하지 않고 흙 속으로 물을 가둘 수 있는 역할을 해 뿌리에 보습 효과가 있다. 거기에 더해 낮에 비닐이 품은 열기로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 흙 온도를 지켜줘 뿌리를 내리는 어린모종들에게는 든든한 보호막이 된다. 이처럼 농사의 과정들이 다 숨은 이유가 있다는 걸 하나씩 배워간다. 어린 모종의 성장을 위해 물을 가두어주고 온기를 지켜주기 위해 비닐을 덮는 이 수고로움은 결국 작은 모종이 스스로 자라 강한 비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게 없듯, 밭을 일구며 수확하기까지 하나하나 과정은 흙과 나누는 질서가 아닐까. 거기에 노동이라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그 질서가 지켜지기 위한 가장 정직한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허리 굽혀 호스를 깔면서, 비닐을 덮으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두둑 양쪽을 흙으로 덮느라 몸의 고단함이 있지만 이런 고됨의 노동에 결국 농사는 수확물이라는 보답을 안겨준다.


거친 세상을 마주해 잘 자라도록 지원하는 준비 작업의 마지막을 오늘(9일) 일찍부터 서둘렀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한 작업은 바로 ‘Y자형 고추 지지대’ 세우는 일이다. 모종이 자라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거다. 고추 모종을 심어두고 지지대를 박을수도 있지만 혹여라도 여린 뿌리가 다칠 수 있어 심기 전에 미리 심을 자리를 따라 일정하게 위치를 잡아 박았다. 이 지지대를 중심으로 모종들을 심은 후 끈으로 고정해 주면,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고추들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260409 울진밭(고추지지대설치중1).jpg Y자형 고추지지대 설치 시작점
260409 울진밭(고추지지대설치시작).jpg 드문드문 박고 난 후 촘촘히 간격을 맞춰 지지대를 설치한다.

이제 밭에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한 사전 준비는 끝났다. 영양분을 가득 넣어둔 흙,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높은 두둑, 쑥쑥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빨아 당길 수 있는 물 공급,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기둥까지 마련했으니 말이다.


이제 다음 주 토요일(18일), 온 정성을 다해 키운 고추 모종이 세상 밖으로 나와 두둑에 심기게 된다.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버스 안 출근길에서 주먹밥 하나라도 더 먹이며 키운 딸이 엄마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이 되었듯, 고되지만 잘 준비한 이 자리에서 고추들이 잘 자라길 빌어본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2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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