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품격있는 선배였을까?’
2월 4일 늦은 오후, 외출에서 돌아온 딸이 문 앞에 물건이 있다며 들고 들어와
”엄마, 엄마한테 누가 뭘 보냈나 봐“ 한다
택배를 시킨 것도 없고 해서, 의아해 확인해 보니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설 명절 앞이라 ‘함께 일할 때 즐거웠다며, 설 연휴 잘 보내세요’ 라는 메모가 붙어있다. 나의 제2막 인생을 응원한다는 문구도 덧붙여있다.
퇴직하고 한 달 반이 지났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준 후배가 참으로 고마웠다. 퇴직 후 ‘선택적 고독’이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직장과 인연 맺은 이들과는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렇게 35년 다닌 직장과 이별하는 중이다. 퇴직만하면 모든 게 편안하고 출근하지 않으니 좋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긴 세월 출퇴근하며 일도 사람에게도 마음을 전부 준 곳이라 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퇴직 이후에 알게 됐다. 무슨일이든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후배가 남겨두고 간 물건이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집까지 와 문 앞에 두고 가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카톡에 물건을 두고 간다는 연락도 없었다. 그게 고마운 거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를 너무 잘 아는 후배의 배려인거다.
내게도 고마운 상사이자 선배님 두 분이 계신다. 직장 내에서도 명절이 되면 상사나 동료에게 선물을 주고받곤 하지만, 나는 서로에게 부담이라 생각되 선물 주고 받는 걸 하지 않았다. 또한 왠지 상사에게 선물을 드리면 뭐 부탁할 게 있나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겠다 싶어 한 번도 드린 적이 없다.
그 두 분이 퇴직하고 나서 수년간 설, 추석에는 꼭 선물을 집으로 보내드렸다. 같은 직장에 있을 때 못다 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한참은 집으로 보내드리다, 카톡 선물하기가 편해 방식을 바꾸고도 수년을 그렇게 했다. 퇴직을 결정한 이후는 두 분이 부담스러워 하시겠다 싶어 지금은 보내지 않는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물 한 방울 없더니 퇴직한 사람한테 무슨 선물을 보내냐….“
”퇴직 하셨으니까 보내는 거죠. 부탁할 게 없잖아요….“
그렇게 두 분과 오랫동안 1년에 두 번은 꼭 안부를 나누었다.
직장을 다니며 많은 이들을 만났다. 상사로, 동료로, 부하직원으로도…. 일을 하다 보면 부득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고, 싫은 소리를 할 때도 있다. 서로가 불편한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문제가 뭔지를 두고 실랑이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 가운데 서로를 미워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들이 무한 반복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건 ‘품격’이다. 나이가 많은 상사든, 금방 들어온 신입 직원이든 서로에게 언어와 행동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 나이와 경험치를 떠나 존중하는 그 품격을 말하는 거다.
선배가 퇴직하고 난 자리에 후배들이 앉게 되고 그 후배가 퇴직하면 또 다른 후배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 모든 후배들은 퇴직한 선배를 기억한다. 고단했던 세월을 함께 견딘 시간이 기억을 꽉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퇴직 하고도 기억에 남는 선배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직장에서의 좋은 선배는 모범이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거쳐간 선배들을 기억한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조직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배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녀간 후배의 선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아직 풀어보지 못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와 나는 이 선물을 받아도 될까, 근무하는 동안 나는 후배들에게 품격있는 선배였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퇴직 후 직장과의 완전한 이별을 연습중인데, 모르게 다녀간 후배의 마음에서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퇴직한 선배의 홀로서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어 나의 홀로서기가 외롭지 않나보다.
26.2.5.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4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