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 6일째, 얘들아, 이제 좀 나와주면 안되겠니?
요 며칠 아침, 저녁으로 우리 부부의 주 관심사는 6일 전 파종한 고추 씨앗들이다. 12시간을 따뜻한 물에 담가 6시간에 한 번 물을 갈아준 후(이를 ‘침종’이라 한다) 키친타올에 곱게 싸고 흰 비닐봉지에 넣어 습도를 유지해 발아할 수 있도록 두었다. 이때 키친타올은 물에 적셔 꼭 짜서 씨앗을 감싸주듯 했다. 씨앗이 수분을 흡수했지만 싸고 있는 종이도 수분이 충분해야 발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첫 고추 모종 키우기 도전은 물에 담가 씨앗에 수분을 흡수시키는 것부터 두근두근 긴장의 연속이다.
‘비닐 속 고추 씨앗들이 발아했을까?’ 혹시 씨앗들이 들을라, 우리 둘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이틀 뒤 파란 고추씨(종자회사에서 병충해 예방을 위해 색깔을 넣어 코팅하는 것으로, 고추의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에서 발아의 흔적이 보인다.
새끼손톱의 1/4 크기니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돋보기안경까지 쓰고 세밀히 관찰했다.
”오…. 여보…. 났다.“ 소리를 내어 좋아할 수도 없다. 너무 떨려서다.
발아했으니, 흙에 심어야 한다.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트레이에 600개를 한 치 오차도 없이 1개씩 심었다. 물론 원예용상토다. 원예용 상토위에 질석 흙으로 덮어주었다. (이는 ‘복토’라고 한다) 씨를 심고 나서 흙을 ‘질석’으로 덮어주는 이유는 싹이 흙 속에서 수분을 유지하고, 외부 온도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는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게 600개의 씨앗은 하나하나 뿌리를 내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방 한 칸씩을 차지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선물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남으로 만나 함께 산 지도 30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많이 싸우고 서로에게 생채기 내면서도 잘잘못을 따지는 숱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세월을 넘어 이제는 씨앗을 발아하고 잎을 틔우는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이다.
어쩌면 오랜 도시 생활 뒤에 찾아온 농사짓기가 우리 부부를 더 사이좋게 만들어 줬을 수도 있다. 인정한다.
주변에서 왜 힘들게 밭농사를 짓느냐고들 한다. 도시에서 오래 살다가 시골로 와 괜스레 멀쩡한 논을 밭으로 만들어 얼마나 오래가겠냐 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 우리가 원하는 작물들을 심고 우리 먹거리를 우리 손으로 수확해 보자는 거였다.
처음 시골에 와 인근 정미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흙에 쌀겨가 배수 역할을 하는데 좋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사장님께 거저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둔 상태였다. 성인 두세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큰 자루를 여러 개 준비해 정미소에 가 쌀겨를 담아 옮겨본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그 정미소 사장님이 왜 우리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는지 알겠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의 행동은 완전 생초보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쌀겨를 흙에 섞어 배수 역할을 하게 하는 건 도심의 주말 텃밭에서나 시도할 법한 일인데, 논으로 계속 쓰던 땅에 쌀겨를 섞어 배수 역할을 해보겠다고 덤빈 우리 부부는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그래도 제법 초보 농사꾼 부부 이름에 걸맞아지고 있는 것 같다.
트레이에 발아한 씨앗을 심은 지 6일째다. 그런데 한 스무 개 정도만 흙 사이로 고개를 내밀까 말까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찾아보니 다른 씨앗과 달리 고추 씨앗은 흙 속에서 뿌리를 다 내리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고 한다. 그래도 노트에 적어놓은 순서대로라면 지금쯤은 씨앗이 나와줘야 하는데….어제 하루 종일 우리 부부는 나오지 않는 씨앗을 두고 이제나 나오나, 저네나 나올까 긍긍하다, 오늘 아침 관수를 하기로 했다. 트레이의 깊이가 얕고 씨앗이 너무 작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식물에 물주기 방법으로는 안 된다. 트레이보다 큰 그릇에 물을 담아 트레이 바닥 구멍으로 수분을 흡수하도록 하는 거다.(이를 ‘저면 관수’라고 한다)
집에서 키우다 보니 볕이 부족해 하루에 12시간씩 LED 볕도 쬐어주고, 오늘 관수도 했으니 곧 요 녀석들이 뿌리를 잘 내렸노라 흙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줄 것이다.
참 신기하지 않나,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저 흙 속에서 작은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는 게…. 이러한 궁금증이 그리고 그 결과물이 농사를 짓는 즐거움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고추 씨앗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주길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26.1.28.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