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저녁, 거실 식탁에 앉아 수업에 참여한다. 3단계 20주 과정으로 구성된 온라인 수업이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누구든 신청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갈등의 대상이 다르다. 직장에서는 상사, 동료 직원이 될 수 있고, 가족 안에서는 엄마, 아버지, 남편, 자녀, 형제, 자매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갈등 없이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 나는 다른 누가 아닌 내가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실천하는 방안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1년, 지금 참여하고 있는 수업 모든 과정을 마쳤다.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를 한번 했다고 해서 깊숙이 박혀있는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한다. 과정 중 내가 불편하고 힘든 상대에 관한 연구 과정이 있다. 대상은 각자 다르다. 나에게 있어 연구 대상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싫어할 때 어떻게 해주면 갈등이 해소되는지 연구하는 거다.
아버지는 올해 83세다. 전쟁을 겪은 세대다.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찍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피죽 한 그릇 먹기 힘들었던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너무 배가 고파 남의 집 감을 훔쳐먹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구걸했던 유년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배우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아버지의 기억을 추억이라 이름할 수 없다. 그건 아픔이다.
눈치도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던 어린 소년이 군청 급사(예전에는 관공서에서 서류 전달, 청소, 등사, 손님 안내 등 사소하고 잡다한 일을 해줄 사람을 채용했다고 한다)로 취직하면서부터 아버지의 굶주림은 줄어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졸업장도 없는, 기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가 숱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누구보다 성실하고 강한 책임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의 연구 대상 1위다. 어떤 일 앞에서도 아버지의 판단만이 옳고, 당신이 다 해야 하고, 도무지 자식들 말은 듣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소통은 한계에 부딪치고 ’아버지는 원래 저래, 대체 뭔 고집이래? ‘하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지금까지도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이다.
결혼하고 이사를 할 때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를 한다. 나도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면서 꼭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은 따로 보물 상자에 담고 다녔다. 그 중 제일 중요하게 지닌 건 아버지가 결혼할 때 준 글 한 자가 담긴 액자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 친정에 인사하러 들렀을 때 아버지가 ’인(忍)‘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셨다. 지금은 기억에 없는 덕담이 분명 있었을 텐데, 종이가 적힌 글자만 가지고 있다. 이사를 하면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아버지 사진과 액자를 뒀다. 이 글자는 칼 신(刃)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된, 날카로운 칼끝이 심장을 겨누는 것과 같은 고통을 참아내는 의미의 한자어다.
아버지가 내게 전한 한 글자를 소중하게 이고 지고 다니면서 왜 이 글자를 적어주셨을까 의문을 가진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쩌면 험난한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아버지의 지난 인생에서 가장 의미를 담은 글자가 아니었을까, 전쟁을 겪고 배고픔과 격동의 세월을 버티게 한 아버지만의 삶을 대하는 철학이 이 한 글자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혼자 해석하고 있다.
아버지의 지난 세월을 담은 아버지만의 삶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아버지와의 평행선은 좁혀 가고 싶다. 30년 전 내게 준 한 글자에 담긴 아버지의 시간을 갈등 없이 마주하기 위해 계속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셨고 나는 그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노력이란 걸 하고 있다. 그래도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를 하면서 평행선이 조금 굽어지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아버지를 대하는 게 예전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평행선은 절대 좁아지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아버지를 향한 날 선 반항 대신 인정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좁아지고 있다.
평행선을 붙이지는 못해도 최대한 가깝게 하는게 언젠가 마주할 아버지와 이별 전 내가 꼭 풀고 싶은 숙제다. ‘진작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죄송해요. 이제는 알아요‘ 후회 없이 건넬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숙제를 끝내는 날 나는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잘 살아낸 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4086&PAGE_CD=00000&CMPT_CD=S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