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소리
2장. 흙의 자리
새 학기 첫날, 5학년 2반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은근한 분필 냄새가 공기 중에 번졌다. 낯선 시선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애들아, 안녕. 나는 유정원 선생님이야. 앞으로 1년 동안… 우리가 함께 자랐으면 좋겠어.”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줄의 상희는 수줍게 웃었다. 정원은 출석을 부르며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정수영?”
대답이 없었다.
“수영아?”
뒤쪽 창가의 한 남자 아이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개를 살짝 들었다.
“네.”
짧고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수영은 책상에 팔을 괴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정원은 그의 옆에 조심스레 쪼그려 앉았다.
“수영아, 이 부분 같이 볼까?”
손끝으로 아이의 팔을 가볍게 건드리려는 찰나, 수영은 몸을 홱 돌리며 어깨를 털어냈다.
“만지지 마요.”
공기가 순간 멈췄다. 정원은 손을 거두었다. 목 안쪽이 마르게 타올랐다. 아이의 눈빛은 차갑다기보다, 어디선가 두려움이 더 많이 비치는 듯했다.
‘이 아이는 사람을 믿지 않는구나.’
‘근데 왜, 내가 흔들리지…?’
정원은 교탁으로 돌아가며 숨을 길게 뱉었다.
2년간 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을 준비하는 2월 첫날 새로 칠한 담벼락과 환하게 웃는 ‘함께 자라요’ 현수막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학교는 변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교무실 문을 열자 분위기가 곧바로 달라졌다. 복사기가 낮게 돌아가는 소리, 서류를 넘기는 종이의 마찰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 기침이라도 하면 그 소리가 멀리까지 울릴 듯 고요했다. 교감과 행정실무사, 몇몇 부장교사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정원은 문을 닫으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고개를 잠시 들던 시선들이 곧 다시 화면과 서류로 떨어졌다. 말이 거의 오가지 않는 공간. 교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정원은 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몇 달 전부터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던 문장을 이제는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화면을 켜자, 잠금화면에는 여전히 그 문장이 박혀 있었다.
교실에서 나와 복도로 향한 순간, 정원은 잠시 휴대폰을 켰다.
화면 맨 위에 오래된 문장 하나가 고정된 채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춥다… 대화도 하지 말래.
정원은 화면을 바로 꺼버렸다.
3월 2일 아이들과의 첫날에 과거를 소환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아직 봄이니까 이런 거야.”
점심시간, 따뜻한 생강차를 마시면 몸 속으로 스며드는 온기로 마음을 달래었다. “괜찮아” 새로 시작된 학교에서 힘들 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기로 한 말이었다. 수영이가 밖으로 나간 빈 책상을 보며 정원은 교실 창문을 열며 아직 찬 공기를 마셨다. 멀리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저 아이도 나도 첫 만남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