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첫날의 냄새

1부 겨울: 얼어있던 자리

by 오소리

1. 첫날의 냄새

  점심시간이 끝나자 교실의 공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아이들은 식판을 치우며 서로 장난을 치고, 정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지는 걸 느꼈다. 그러다 창밖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운동장 뒤편,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작은 텃밭 자리. 아침부터 자꾸 눈에 밟히던 곳이었다.

  정원은 칠판 앞으로 나와 분필을 들었다.
  “얘들아, 저 뒤에 있는 텃밭 본 사람 있어?”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예전에 상추 키웠었어요. 근데 지금은 벌레 천국이에요.”
  상희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원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벌레가 많다는 건 그만큼 땅이 살아 있다는 뜻이야.”
  “그럼 우리 반도 살아 있어요?”
  어디선가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올라왔고, 아이들 사이로 다시 웃음이 번졌다.

  정원은 그 기류를 타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반이 그 텃밭을 다시 만들어보면 어떨까?”
  순간 웃음이 멈추고 조용한 기류가 흘렀다.
  “힘들 것 같아요.”
  “흙 냄새 싫어요.”
  “더워요.”
  곳곳에서 투덜거림이 피어났다.

 그때 뒤쪽에서 승욱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뭐 심을 건데요?”
 정원은 살짝 웃었다.
 “그건 너희가 투표로 정할 거야.”

“와, 좋겠다.”

승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상희가 힐끗 한 번 바라보았다. 아주 짧고 가볍게 받아쳤다.

“너만 좋으면 뭐해?”

수영이는 이 와중에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정원은 웃으려 했지만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아이들의 망설임 속에서 문득 2년 전 동료 교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없이 외면하던 눈빛, 결재선을 따라 찍히던 붉은 글씨.
  그때의 공기랑… 똑같아.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싫을 수도 있어. 흙은 손에 묻고 벌레도 있고… 가끔은 더럽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흙은 우리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

  교실이 조용해졌다. 공기 속에 작은 숨결 하나까지 느껴질 만큼의 정적. 그때 승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근데 선생님, 흙이 뭐가 좋은데요?”

  정원은 바로 답하지 않고 창밖을 가리켰다.
  햇빛이 교실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글쎄… 나도 아직은 잘 몰라. 그냥… 우리도 살아 있는 걸 한번 같이 키워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수영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정원의 시선이 닿자 곧 창밖으로 눈을 피했다.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굳게 닫힌 문틈으로 숨이 스며드는 것 같은 작은 변화였다.

  수업이 끝난 뒤 정원은 혼자 텃밭 쪽으로 걸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땅은 예상보다 훨씬 딱딱했다. 잡초를 잡아당기자 뿌리가 깊게 박혀 쉽게 뽑히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흙은 얼룩져 까칠했고, 오래 방치된 땅의 숨이 느껴졌다.

  흙, 이렇게 오래 있어도… 여전히 살아 있구나.

  정원은 허리를 굽혀 작은 삽으로 흙을 뒤집었다. 축축하고 풋풋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 향이 폐 쪽으로 스며들던 바로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뭐 해요?”

  돌아보니 승욱이 서 있었다. 정원은 가볍게 웃었다.
  “그냥… 흙이 살아 있나 보려고.”
  승욱은 말없이 다가와 삽을 들었다. 삽날이 땅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땅이 조금씩 부서지며 공기를 머금었다.
  봄의 첫 삽질이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