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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리 Aug 10. 2022

몸으로 마음 틈새를 메웠다

예술놀이로 키우는 육아 일기

  딸과 아들, 아들과 딸


  확실히 다르다. 대체적으로 아들들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욕구가 어느 한 곳으로 몰려있다. 카드면 카드, 게임이면 게임, 이길 때까지 계속 몰입하고 이기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우리 아들도 이런 성향이 강하다. 

  문제집을 풀 때 맞고 틀리고 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틀렸다고 하면 자신이 틀린 게 아니라 문제 자체가 틀린 거라며 기어코 그 문제에 동그라미를 쳐야 했다. 정말 문제는 문제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였다.  


아들: 이 문제가 잘못됐잖아.

엄마: 좀 애매하게 문제를 낸 점도 있네. 하지만 문제 낸 사람 입장이 되어서 다시 한번 풀어봐. 

아들: (동그라미로 고치며) 어쨌든 이건 맞은 거야. 

엄마: 그래? 하지만 틀린 것을 다시 고쳐 봐. 


  그런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소리 난 방향을 보니 문제집이 바닥에 곤두박질쳐져 있다. 아들이 화가 나서 문제집을 내던진 거다. 그리고는 일기 숙제를 한다고는 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씩씩거리고 있다.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지만 제대로 글이 나오지 않나 보다. 아침에 출근하는 시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물론 공감은 해주어야지만 화가 무척 난다. 


엄마: (아들에게) 다 맞으면 하는데 틀려서 화가 났나 보다. 


  언제나 아이의 감정이 풀리도록 시간을 좀 주어야 한다고 가만히 참고 있지만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고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모르겠다. 이제 다음 말이 나온다. 


엄마: 공부란 게 뭐니? ……. 공부는 내가 모르는 걸 알아나가는 거잖아. 내가 아는 것만 공부하면 다시 3학년 것을 푸는 게 낫겠다. 아인슈타인이 뭐 매일 100점을 맞았니?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도 모르는 게 더 많잖니? 그러면서 발명도 발전도 되고...


  흥분이 되었는지 소리도 크고 강하게 나온다. 무엇보다 너무 설명이 길다. 


 엄마: 다시 배운다는 게 뭔지 생각해보고 그래도 네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엄마는 숙제 검사 다신 안 해줄 거야.   

  30명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톤으로 크고 강하게 얘기했다. 


 “엄마가 아침에 바쁘게 나가야 하는데 숙제를 봐주면 경황이 없잖아. 그런데 네가 내 말을 안 들어주니 갑갑하고 미칠 것 같아. 저녁에 숙제를 해주지 않을래?”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불현듯 교사 엄마를 둔 우리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저녁 아들은 나에게 말하고 싶지 않나 보다. 


엄마: 저녁 무엇으로 먹고 싶니?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 엄마는 배고픈데 무얼 먹을까?

아들이 무언가를 먹는 시늉을 한다. 

엄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안 먹고 싶다고?


  아들은 가슴에 두 손으로 X자를 그린다. 그리고 손으로 허공에 나를 향하여 뭐라고 큰 글씨를 쓴다. 


엄마: 천천히 크게 써봐. 


  아들은 온몸으로 글씨를 크게 쓴다. 첫 글자가 ‘라’ 자인 것 같다. 


엄마: 아……. 라면을 먹고 싶다는 거구나.


  그러자 아들 얼굴이 밝아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기가 만드는 흉내를 낸다. 


엄마: 아……. 네가 요리하겠다고?


  아들은 고개를 매우 과장되게 끄덕이더니 


아들: 지금부터 소리 내지 말고 몸으로 말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 역시 언어의 세상을 버리고 비언어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맞다 맞다며 고갯짓을 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팔짝 뛰면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자신만의 특별한 라면 요리가 나왔다. 평소에 아들은 독소를 없앤다고 식초를 조금 넣고, 매운맛을 부드럽게 한다나? 우유를 부으며, 끓일 때 항상 뚜껑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요리비법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라면이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라면 한 가닥을 주면서 먹어보란다. 나 역시 엄지손가락을 위로 ‘엄지 척.’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로 눈이 딱 마주치면서 정말 굉장한 라면이라는 데 마음이 통했다. 찌릿~~


'몸으로 마음 틈새를 메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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