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엿보기_시월

- 공휴일 -

by 캄이브

< 윗동네 시월 >

윗동네 달력에는 ‘개천절’도, ‘한글날’도 없다.
시월의 가장 큰 행사는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일.


정당이라고는 하나뿐인 나라에서
그날은 명절이자 축제이자, 충성의 날이었다.


나는 평양 단군릉 앞에서 개천절 행사를 한다는 걸
아랫동네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그땐 조금 놀랐다.

‘단군도 윗동네에 계셨구나’ 싶어서.


윗동네의 시월은 분주하다.
겨울나기 대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추수로 거둔 알곡은 곡간으로 들어가고,
봄부터 말려온 나물들은 다이어트한 몸으로
곡간 천장에 박쥐처럼 매달린다.


오이, 고추, 마늘은 소금에 절여
꼬들한 채로 김치움 속에 자리를 잡고,
된장·간장·소금 단지는 그 옆을 든든히 지킨다.


여름 내 산에서 해온 장작도 담벼락 따라 줄을 선다.
내가 살던 함경북도는 10월 말에도 눈이 내렸기에
김장도 아랫동네보다 서둘러야 했다.


아랫동네는 늘 신기하다.
시장에는 사시사철 나물이 가득하고,
카드 한 장이면 월동준비 끝.
세상 참 편해졌다 싶다.


< 아랫동네 시월 >

아랫동네의 시월은 개천절로 문을 연다.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시작을 기념하는 국경일.
가가호호 태극기를 달고, 하루를 쉰다.


곧이어 한글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세종대왕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윗동네에선 김 씨 일가의 ‘혁명역사’가 시험교과의 대부분이었다.
출생일, 업적, 가계도까지 외워야 했지만
세종대왕은 이름 석 자 외엔 배운 기억이 없다.


‘훈민정음’이라는 단어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시험에 나오지 않으니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내가 매일 쓰는 글자의 주인을 몰랐다는 게.


< 하나였던 시월 >

분단 이전,
우리 조상들은 함께 개천절을 기리고
추수의 기쁨을 나누며 월동을 준비했을 것이다.


이젠 달력의 공휴일도, 가르침의 방향도 다르지만
유일하게 한글만은 함께 쓴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언젠가 우리 동네, 우리 한글, 우리가 함께 하는 그날
다시 맞이하길 바라며,


시월의 바람에 우리말이 실려가길,

그 말이 서로의 마음까지 닿길.


- 캄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