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 사이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언젠가 나는, 직접적인 감정 전달로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클래식 좋아하세요?" 라고 우회적으로 물은 적이 있다.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을 마주할 때마다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 비슷한 질문을 던졌던 과거의 한 시점을 곱씹게 된다. 이 개인적 경험은 단순한 회상을 넘어, 작품 속 감정 절제와 인물의 행동을 해석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작품 초반부에서 시몽은 연인이 있는 폴의 감정을 존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한다. 그는 직접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로제의 외도를 언급함으로써 관계를 진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폴의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배려 섞인 태도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로맨틱한 질문으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은 1959년에 쓰여진 소설로, 표면적인 평온과 달리 내면의 공허와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전후 프랑스의 불확실한 정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은 인물의 태도와 기분, 미묘한 분위기를 섬세하고 밀도 있게 구현함으로써 사건 중심의 19세기 문학과는 완전한 차별점을 둔다. 또한, 이 작품이 전후 프랑스 사회의 과도기적 시기에 쓰였다는 점에서, 시몽과 로제의 대비와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폴의 관계는 단순한 연령의 차이, 사랑의 문제를 넘어, 전후 프랑스에서 외로움과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서적 세대교체의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
주말에 혼자 있는 것이 외롭다는 이유로 시몽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폴, 자신을 기만하는 로제와 헤어지지 못하는 폴,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폴에게서 안정을 찾는 로제의 모습 등을 통해 작가는 독자의 마음속에 하나로 수렴되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공허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고독을 두려워하는 존재인가? 시몽과 함께할 때 폴은 사랑받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로제와 관계를 지속하면 상처를 받지만 폴은 로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로제는 폴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폴은 독자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을 하지만 사강은 작품 속 어떤 인물의 선택도 비난하지 않으며 그 판단을 끝내 유보한다. 사랑이 구원은 아니며 자신의 젊음도 흘러가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시점에서 사강은, 결말에 의문을 가진 독자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배려 어린 사랑도, 정열적인 사랑도, 아름다운 외모도 흐려지는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브람스는 슈만과 결혼한 열네 살 연상의 클라라에 깊은 애착이 있었고 슈만이 사망한 뒤에도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사강은 이들의 '요구하지 않는 관계'에 주목하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계성이 이 작품 속 시몽과 폴의 관계에도 투영되어, 폴이 헤어짐을 이야기할 때 깊은 사랑과 정열이 있음에도 이를 수용하고 물러나는 시몽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는 흔히 '자기표현의 시대'라고 한다. 어떤 이는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 상대에게 불안을 주고, 또 다른 이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고 원치 않는 배려를 제공하며 그 대가로 이해와 감사를 기대한다. 이런 시대 속에서 시몽의 사랑의 온도와 배려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관계에서 감정 절제의 미학을 드러낸다. 어쩌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사랑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 선택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누군가에게 다시 "클래식 좋아하세요?"라고 묻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어떤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사강이 끝내 유보한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 함께 들을 곡
브람스 - Piano Quartet No. 3 in C minor, Op. 60 中 III. Andan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