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랜포드> 엘리자베스 게스캘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서

by 도토리






<크랜포드> 엘리자베스 게스캘


"우선, 크랜포드는 아마존이 지배하는 지역이다."
"크랜포드 주민들에게는 고유의 정서가 있어서 그들 중에 누군가가 가난을 숨기려고 하면 모두들 능청스럽게 못 본 척해 주었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동체에 대한 향수로 '크랜포드'를 읽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 왜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독자로서의 이 질문은 크랜포드를 읽는 내내 나를 따라왔다. 이 질문을 붙들고 읽다 보니 작품은 나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물질적 빈곤과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품위에 반드시 비례하는가?"
자신의 결핍이나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는 흔히 현대사회의 경쟁적 비교의 산물로 이해된다. 그러나 작품 속 영국의 작은 마을 크랜포드에서 가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태도는 단순한 체면 유지를 넘어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의 경제적 궁핍을 인지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암묵적으로 형성된 그들만의 공동체 윤리를 드러내고 경제적 궁핍과 개인의 품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대가 물질적 결핍을 대하는 미묘한 태도 차이는 크랜포드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이 작품 해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는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계층 이동과 경제적 불안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식민지 건설을 통해 제국은 풍요로운 외형을 갖추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한 경제적 상황과 여러 노동과 빈곤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 역설적이게도 여왕이 다스리던 시대였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적으로 표현할 공간이 없었고, 풍요와 빈곤, 과학과 미신, 엄격한 도덕주의와 허영과 위선이 함께 공존하던 패러독스의 시대였다. 작가는 당시 시대가 요구했던 이러한 가치들을 집약하여 크랜포드라는 작품 속에서 여성 중심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 적응하여 살아가는지를 서술한다. 크랜포드에는 물질적 궁핍이 있지만, 자신도 파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미덕이 있으며,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함께 돕는 공동체 주의도 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의 화자는 크랜포드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크랜포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술하는 젊은 여성이다. 메리 스미스라는 이 미혼의 여성 화자는 크랜포드 속 인물들에게 있는 허영심마저도 따뜻한 유머로 승화시키며, 한 발짝 물러선 관찰자의 시선으로 크랜포드 사회를 바라본다. 산업화에 따른 공동체의 와해와 개인주의의 팽배 등은 유니테리언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목사와 결혼한 개스켈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미혼 여성 화자를 내세운 설정은,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 양태로 변하는 사회를 목격한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조명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또 게스캘은 어릴 때 실종되었다가 재회하게 된 형제 이야기와 같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피터와 매티의 관계 속에 녹여내어 희극으로 마무리한다. 비록 현실은 비극이었을지언정 사라져 가는 시대와 와해되는 과거 공동체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크랜포드를 통해 희극으로 형상화한 것이리라. 노사문제나 산업화로 인한 빈곤 등 산업혁명 이면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조명하던 게스캘이 살짝 시선을 돌려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은 삶의 많은 진실을 유일하게 대변한다.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라고 말한 중국의 소설가 옌롄커의 말과도 일치한다. 게스캘이 영미문학 주요 작가로 꼽히는 이유도 이에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와 비교의식이 만연한 현대 사회는 무한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을 기본 사회 미덕으로 삼는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우월감을 느끼고 직업과 자산, 연봉이 곧 개인의 존엄과 품위를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게스캘이 이 작품에서 제시한 공동체 윤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 역시 개인의 자산과 성공이 그 사람의 품위와 일치한다고 생각하는지.

나 역시 경쟁 사회에서 자랐다. 그러나 온기가 내재된 인간이기에 경험해 보지 못하였으나 그 온도의 따뜻함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낭만화되고 더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평범한 이웃이 베푸는 온정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단순한 감동이 아닌, 점점 사라져 가는 윤리적 미덕이 내면화된 과거 공동체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씁쓸해지는 것은, 온정주의가 미덕인 공동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 속한 나 역시도 그 공동체에 호기심이 있고, 개인의 가치는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나의 삶과 인식에 적용하지 못함에 있을 것이다.

— 함께 들을 곡
포레 '돌리 모음곡(dolly suite)' 中 1번 자장가(berce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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