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나는 사람들이 타고나길 두 부류로 나뉜다고 믿는다. 덕질 DNA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단적인 예로 이런 것이다. 한 노래를 들었을 때 '좋은 노래네.'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그 곡을 하루 종일 반복 재생으로 감상하면서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고 가사 해석까지 하는 사람. '나는 연예인 누구 좋아해'가 그 사람의 미디어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의미인 머글과, 그 연예인의 사진과 움짤, 영상을 저장하고 지난 과거 영상들도 뒤적거리기 시작하며 알고리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의미인 덕후.
단언컨대 나는 앞선 사례들에서 후자를 담당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나는 모양이 있을 텐데, 내 모양을 다듬어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덕질'이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것들에 꽂혀 난데없이 파고드는 나의 덕후 성향은 학창 시절부터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내 DNA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아기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한다는 공룡에 꽂혀서 공룡 도감 같은 책을 달달 외웠고, 주머니 괴물 만화에 빠졌을 때는 새벽같이 기상해서 TV 앞에 붙어 앉아있곤 했다.
이구아나 사진을 보고 키우고 싶어 하며 미친 듯이 알아보다 시험에서 올백을 맞으면 허락해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죽어라 공부했던 적도 있다. 결국 키우지는 못했다. 전체에서 하나를 틀려 올백을 맞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아이의 호기심에 함부로 생명을 들이지 않게 한 부모님이 현명하셨던 듯하다. 혹은 부모님은 이구아나가 정말 싫었거나...
중학생이 됐을 때는 난데없이 아이돌에 꽂혀서 그들의 앨범 전체를 찾아 듣고, 무대 영상을 보고, 당시 유행했던 '플레이어'란 것을 찾아보며 처음으로 아이돌 덕질이란 것을 해봤다. 차고 넘치는 과거 다큐멘터리나 예능 출연 영상들을 모조리 찾아봤고, 역시나 적당히 덕질하는 법이 없는 나는 춤추는 그들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 댄스학원에 등록해 배워보기까지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한 애니메이션에 빠져 수백 개의 회차를 한 달도 안 되어 정주행 했고, 독서에 꽂혀서 수업시간, 야자시간 가리지 않고 독서를 해 교내 '다독왕' 수상을 거머쥔 경험도 있다. 야자시간에 책 읽지 말고 공부하라고 국어 선생님한테 혼나며 기이한 한국의 입시 시장을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웹툰도 그냥 보는 법이 없었다. 날을 새며 최근 회차까지 본 후, 세계관을 파고들기 시작하며 비하인드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릴 만큼 미쳐있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인이 된 지금도 나의 내면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까지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단 하나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성향이다. 다만 경험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덕질할 수 있는 방향과 대상이 더욱 다양해졌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이렇게 파고들 것이 없어지면 순식간에 삶의 방향성과 인간의 존재 의의와 같은 해답 없는 질문들을 고민하고 우울감에 스물스물 잠식당하는 내 모습을 보면, 타고난 덕후는 어쩔 수 없나 싶기는 하다. 아니면 우주의 먼지같은 삶에서도 숨 쉴 구멍 하나쯤은 만들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애정 어린 덕질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가 브런치에 써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라고 답하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무언가'를 향한 나의 덕질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이에 스쳐 지나가며 나를 살아가게 한 흥밋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말인즉슨, 바다처럼 넓은 분야들의 얕은 수심 곳곳에 발을 조금씩 담가봤다는 말이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어떠한 대상을 향해 품고 있는 애정에 순식간에 풍덩 빠져드는 낭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일컫고 싶다.
관심을 가진 것도, 그만큼 빠르게 흥미를 잃어버린 것도, 예상외로 오래 함께한 것들도 많다. 나와 같이 덕질 DNA를 가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를 바라며 여러 가지에 빠지게 된 계기들과 그로 인해 다듬어져 간 나의 삶의 모양들을 말하고자 한다. 덕질의, 덕질을 위한, 덕질에 의한 과몰입 덕후의 덕질 변천사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