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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명 Jun 15. 2021

우리는 왜 '프렌즈'를 그토록 사랑하는가

'프렌즈' 덕후가 여섯 친구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

  

출처=HBO Max YouTube

시트콤계의 레전드, 미드계의 마이클 잭슨, 영어공부의 교과서를 꼽자면 '프렌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94년에 시즌 1을 시작해 2004년에 시즌 10으로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우리는 자그마치 17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지난달 드디어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여섯 친구의 재결합, '프렌즈 리유니언(Friends reunion)'이 HBO를 통해 공개됐다. 17년 만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원년 멤버들의 만남에 전 세계의 '프렌즈' 팬들은 환호했다. 해당 방송에는 빌보드 1위 가수 BTS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리더 RM은 "'프렌즈'는 내게 영어뿐만 아니라, 인생과 진정한 우정에 대해 알려줬다."고 말했다.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애청자들은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렌즈 덕후'로서 여기에 더하고 싶은 찬사의 표현이 너무나도 많다.


 나의 질척한 '프렌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자면 먼저 첫 만남 스토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내가 '프렌즈'를 처음 알게 된 학창 시절부터 이미 이 드라마는 영어공부의 바이블로 유명한 상태였다. 지금처럼 OTT 서비스가 잘 되어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저작권 의식이 현저하게 뒤떨어져있던 시절, 인터넷에서는 프렌즈 1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프렌즈'의 짧은 영상을 스쳐 지나가듯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인기가 많다고...? 재밌다고....?'


 어떤 부분이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방청객의 웃음소리는 종잡을 수 없는 타이밍이었으며, 방영시기를 알고 나니 괜히 90년대의 향기가 묻어나는듯해 낯설기 그지없었다. 결국 1화를 보다 꺼버린 나는 '프렌즈'는 내 스타일이 아닌가 보다고 여기며 기억 속에 묻어두고 다시 꺼내보려 하지 않았다.


 이후 대학생이 되었다. 인기 있는 미드와 한드, 각종 영화들 그리고 4인 이용이라는 강점을 가진 ' 넷플릭스'가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나 또한 시류에 편승하며 4인팟을 구성해 감상을 시작했다.


 '프렌즈'와의 재만남이었다.


 영어공부도 할 겸 다시 1화부터 도전하게 됐는데, 다들 지루하다던 파일럿화를 참고 지켜보니 새로운 취향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웃기고 흥미진진했다. 예전에는 시끄럽게만 들렸던 방청객의 웃음소리는 재미를 배가시켰고, 이렇게 신선한 에피소드들이 시즌 10까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행복한 기대감에 젖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프렌즈'는 나의 '밥친구'가 되었다. 집에서 밥을 먹는 매 끼마다 프렌즈를 틀어놓으니 시즌 10의 마지막화가 금세 코앞으로 다가왔다. 10년 치 방송의 끝을 보고 나니 친구들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왜인지 나까지 나의 친구들을 떠나보내는듯한 허망함이 일었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틈나는 대로 보고 다시 보고, 또 보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전 시즌을 통틀어서 네 번은 보게 됐다.


 어느 에피소드를 틀어도 뒷 내용이 줄줄이 생각나고, 여기서 나올 개그의 타이밍과 대사까지 알아맞힐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이렇게까지 '프렌즈'에 빠져들게 된 이유가 뭘까? 이는 전 세계 팬들이 사랑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프렌즈'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 단위의 재방송 수익을 기록하며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덕후의 관점으로 분석한 포인트들을 나열해보려 한다.


출처=HBO Max YouTube




1. 끝없는 "관계"의 굴레에서


 사람은 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관계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부모와의 인연부터 친구, 연인, 직장 동료까지.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허구적인 에피소드들 사이에 현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친구들의 '관계'에 대한 스토리다. 로스와 모니카의 남매 관계, 조이와 챈들러, 모니카 레이첼의 룸메이트 관계, 각 친구들 사이, 연인, 상사, 부모님, 이웃 간의 관계까지. 시즌 10 에피소드들 안에는 여섯 친구들이 흘려보내고 스쳐지나고 쌓아나가는 수많은 안연들이 담겨있다.


 그들은 돈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애정인지 애증인지 모를 사랑 때문에 싸우기도 하며, 인생의 변곡점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기도 한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20여 년 전 청년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네 인생과 꼭 닮아 있다니, '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것은 모두의 교집합이며 인간이라면 필히 겪어야 하는 굴레일지도 모른다. 이 무거운 '관계'의 마음과 이야기들을 가볍게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는 유머감각에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2. 독보적인 "캐릭터성"


 시즌1부터 주연들의 캐릭터는 명확하게 구축된다. 요리와 청소를 사랑하는 모니카, 공룡과 화석을 사랑하는 고생물학자 로스, 비꼬는 개그의 달인이자 존재감이 있는 듯 없는 챈들러, 다소 상식이 부족하지만 먹는 것을 사랑하는 잘생긴 핫가이 조이, 뛰쳐나오는 용기가 있지만 여전히 철부지인 레이첼,  모두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만의 철칙이 확실한 괴짜 음악가 피비까지.


 그들의 과거와 성격, 상호 관계를 빠르고 확실히 초반에 드러내고, 이를 토대로 어울리는 에피소드를 캐릭터에 잘 들어맞게 젠가처럼 쌓아 올린다. 확고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반복되는 개그의 패턴은 후반부에 가면 눈에 훤히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 캐릭터는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대사를 치겠지?'와 같이. 이만하면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게 하는, 배우들이 캐릭터에 첨가한 사랑스러움. 이것이 '프렌즈'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3. 트렌디한 "패션"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프렌즈'를 보면 그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주인공들의 패션, 특히 모니카와 레이첼의 복장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패션 피플'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Best 'Friends' Outfits"과 같은 게시글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런 패션들은 '프렌즈'에서 오래된 촌스러운 드라마가 아닌, 아직까지도 세련된 드라마로 보이게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정취를 감출 수 없는 것은 바로 소품이다. '삐삐'를 받았다고 좋아하거나, 커다란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거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 장면에서 유로화가 아닌 '리라' 화폐 단위를 이야기한다던가, 챈들러의 회사에서 사용하는 뚱뚱한 컴퓨터 모니터 등. 지금이었다면 스마트폰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 같은 현대 문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당시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에피소드들과 감성도 상당히 많다. 이처럼 트렌디한 패션과 구세대의 소품들의 조화는 '프렌즈'를 90년대의 상징으로, 그러나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4. 그렇게 "성장"한다.


 '프렌즈'의 인물들은 결코 멈춰있지 않다.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원하는 교수 자리를 꿰차기도 하고,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기도 하며, 이름을 알리는 배우로서 일하기도 하고, 그토록 원하던 패션업계에서 꿈을 펼치기도 한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겠다며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그만두고 인턴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길을 구축해나가는 친구도 있다.


 시즌 10에서 여섯 친구들의 모습은 시즌 1과는 사뭇 다르다. 배우들의 외형을 떠나서 각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10년의 기간 동안 결혼을 하기도, 아이를 가지기도, 원하던 커리어를 성취하기도 한 친구들을 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성장한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비록 그들의 10년의 삶을 압축해서 감상했을 뿐이지만, 마지막 화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문이 닫히는 순간 나의 추억도 함께 끝나버린 것 같은 공허함에 빠지기도 한다.


 여러 번 떠나보낸 마지막이면서도, 볼 때마다 숨이 차오르며 울컥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성장을 지켜본 끝에 남은 것은 나 홀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변화가 반복해서 눈 앞에 재생되는 동안 나 또한 성장했을지, 조금은 궁금하다. 친구들과 같은 치열한 고민과 휘청이는 갈등이 내게도 찾아온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 끝에 찾아온 것이 그들과 같은 단단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내가 유연하게 흔들리게 해 줄 밑거름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5. 영어회화의 교과서


 '프렌즈'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영어공부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반복되기 때문에 일상 속 표현들을 많이 익힐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라고 많은 언급이 되고는 한다. 비록 어떠한 표현들은 소위 말하는 "오래된" 어휘라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식 발음이나 제스처, 억양 등을 익힐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나 또한 그 수혜자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렌즈'는 내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본격적으로 '프렌즈'를 영어공부를 위해 파고든 것은 아니지만, 영어 자막을 틀어놓고 보기도 한 일련의 시간 동안 회화 실력이 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처음으로 서양 국가에 가본 것은 20대 초반, 홀로 떠난 유럽여행이었다. 현지인과 각국의 여행객들과 웃고 떠들고, 미국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나는 '프렌즈'의 톤과 제스처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섀도잉"을 해보면서 본격적으로 '프렌즈'공부를 해보고 싶다.





 나로 비추어봤을 때 '프렌즈' 덕후라 함은, 풋볼 테이블을 보면 조이와 챈들러를 떠올리게 되고, "Could I BE"라는 문장만 봐도 그 특유의 억양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자신감에 찰 때면 모니카처럼 "I KNOW!"를 외치고 싶어 지고, 비슷한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에피소드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웃음이 터지는 사람인 것 같다.


 수많은 드라마를 거치고 거쳐도, 결국 다시 '프렌즈'를 재생하게 되는 것은 이들을 지켜보는 시간들이 나를 복잡한 세상에서 분리시키고, 내게 온전한 웃음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전에 같은 화를 감상할 때와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어떻게 달라졌나, 돌이켜보며 내면의 성숙도를 책정하는 감회는 덤이다.


 최근 시즌1부터 또다시 정주행을 시작했다. 오늘도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여섯 친구들을 만날 예정이다. 지겨울 만큼 본 에피소들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저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내 마음속의 친구들이기에.








* 커버사진 출처=HBO Max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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