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

매거진 ‘슬기로운 초년생활’ 집필 계기

by 승현



좋은 삶이란 나답게 사는 것 아닐까?


하얀 나시는 매거진 ‘슬기로운 초년생활’을 작성하게 된 계기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몸에 달라붙던 하얀 나시. 내 고향 부산에서 이 옷을 입었다가는 듣게 될 것이다. “아이고 남사시러브라” 바닷가로 상징되는 부산에서조차 말이다. 그래서 입을 수 없었다. 이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주변의 시선을 견디는 데 진을 다 빼고 말 것이었다. 사실 집에서조차 입고 나가기 두려운 옷이었다. 우리 가족도 이해하기 힘든 복장이라면 남들에겐 어떨까. 게다가 내 몸이 아주 훌륭한 것도 아니었다. 더욱 서랍 깊은 곳에 넣어뒀다.


평생 내 방의 거울 속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하얀 나시는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빛을 발했다. 그곳은 호주 시드니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콴타스 항공을 타고 10시간을 비행해야 갈 수 있는 곳. 먼 거리만큼 나에게 더 솔직할 수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해서는 한 이틀 동안 간을 봤다. 내가 하얀 나시를 입고 활보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틀의 결과를 보고하자면, 일단 호주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남이 어떤 옷을 입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호주 사람들은 길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줬다. 관심의 정도가 적당하다고 느꼈다. 미지근해서 좋았다. ‘나도 하얀 나시를 입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던 중 본다이 비치에 갔다. 시드니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주 다양했다. 많았다는 사실보다 다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같이 놀러 간 대학 룸메이트와 나는 화들짝 놀랐다. 두 남자가 서로의 손을 잡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를 낯설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건 이성으로 구성된 커플과 동일할 뿐이었다. 그들을 보고 놀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하얀 나시 따위로 고민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언젠가 가장 마지막까지 차별 받는 집단이 성소수자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아동, 여성, 인종, 장애인, 채식주의자, 그다음, 그다음, …, 성소수자. 그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무지개 디자인이나 트랜스젠더 전용 화장실 표지판은 그리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호주는 모두를 존중합니다. 물론 당신도요!”라고 느껴졌다.


또한 복근이 없어도, 심지어 배가 나와도 호주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상의를 벗고 놀았다. 사실 배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았다. 털이 어디에 붙어있든, 어디가 무성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해변 문화를 비판했던 영상이 오버랩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상해요. 해수욕장에서 남자들도 다 래쉬가드를 입고 있어요. 이슬람 국가도 안 이래요.” 겨우 이 정도로 화제가 되는 한국이 미워졌다. 두 남자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유 정도는 돼야 만족스러울 것이었다.


호주 사람들에게 옷이란 개성의 표현에 불과했다. 누가 뭘 입든 상관하지 않았다. 롱패딩이 유행한다고 해서 전 국민이 롱패딩을 사지 않았다. 범고래나 독일군이 유행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사진 않았다. 인간이라면 응당 깔끔해야 하므로 모두가 무신사 앱을 깔지 않아도 됐다. 공대생을 체크 무늬로 놀리지도 않았다. 인스타 패션 매거진이 브랜드별 계급도를 만들지도 않았다. 호주에선 패션이 취향의 표현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계급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호주의 분위기에 용기를 얻어 흰 나시를 입었다. 좋았다. 비로소 내가 된 기분이었다. 밖에 나갔다. 호주 사람들은 역시 내 옷을 신경 쓰지 않았다. 행복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미소를 지어줬다. “Hey, You look so good. Keep going!” 또다시 위로 받았다. 그리고 시드니에 살고 싶어졌다. 동시에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아 졌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만큼 대한민국이 싫었다. 다시 그 숨 막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좋은 삶이란 나다운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반추하다.


시드니에서만큼 한국이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례적이었다. 이 감정에 집중했다. 그리고 꽤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아, 나답게 살 수 없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구나. 주관적인 감정 하나만으로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 자국에 대해 이토록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 자체로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리의 조각을 담고 있기에 괜찮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것들은 다면적이다.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 다면적으로 구성된 한 대상은 수용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부각되기 마련이다. 나답게 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은 우리나라의 인상 중 하나이므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 주장을 조금 더 발전시키고자 한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겪고 있다. 자살 문제는 너무 익숙해서 무서울 정도다. 꾸역꾸역 삶을 유지하느니 삶을 포기하는 편이 더 유리한 곳. 이런 계산이 성립하는 곳을 소중한 내 아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내 아기가 태어나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나부터 살기 바쁘니 말이다. 이처럼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나답게 살 수 없는 분위기에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리는 비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자. 나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가치가 나에게 강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다. 앞의 논지와 이어보자면, 나는 이 강제성으로부터 저출생과 자살 문제가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얼마 전 KBS의 한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인재전쟁‘이라는 제목의 다큐였다. 중국은 성적이 높은 학생이 공과대학을 선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의대를 선택한다는 내용이었다.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흥미보다는 안정성과 높은 소득을 선택하는 한국. 흥미는 나로부터 발생하지만 안정성이나 높은 소득은 나의 밖에 존재하는 요소이다. 판단의 기준이 내가 아닌 밖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 계획에 따라 이공계 분야 종사자에게는 고액의 소득과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국인들도 공대를 선택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의대를 향한 우리나라 교육의 과열이 주로 안정성과 고소득이라는 외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조선일보 취재기자 논술 문제는 ‘의사, 변호사 등 자격증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주제로 다루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언론사도 전문직에 대한 집착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자 골칫거리로 판단한 것이다. 가장 부유하면서도 경제 불황을 겪는 세대이므로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안정성이나 고임금에 대한 선호는 다른 나라도 다를 바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과연 법학이 좋아서 또는 자신만의 정의관을 실현하고 싶어서 로스쿨에 입학하는 사람이 다수일까? 법조인이 되면 안정성과 고임금을 한 번에 잡을 수 있기에 이 길을 선택한 사람이 다수 아닐까?


과연 의학이 좋아서 또는 환자를 살리고 싶어서 의대를 선택하는 학생은 다수일까? 안정성과 고임금에 이끌린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또는 고되었던 학창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아닐까? 성적을 훌륭하게 받다 보니 주변에서 의대를 권유해 의대에 입학하는 경우도 개인적으로 많이 봤다. 이 충동적인 결정은 스스로 성찰하여 도달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이 좋아야 합격할 수 있다는 외적 유혹에 순간 이끌렸을 뿐이다. 이들이 어려운 공부를 지나 인턴을 마치고 전문의 과를 골라야 할 때, 외과나 응급의학과보다 성형외과나 안과로 학생이 몰리는 현상도 다르지 않다. 이는 내면의 소리가 아닌 외부의 소리, 즉 시장 논리에 충실해 발생한 현상이다. 의사가 되어도 다르지 않다. 의사협회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정부와 투쟁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방치한 행위 또한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의 본질보다 안위를 우선했기에 발생했다. 깊은 고민으로 자신이 의사가 되어야 할 이유를 찾은 사람이라면 주로 권리보다 의무를 우선시하지 않았을까? 물론 의무를 포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협상력을 높일 수 없다는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본질보다 안위를 우선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격증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도 결국 판단의 기준이 내가 아닌 밖에 존재해 발생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EBS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7세 고시’는 과도한 경쟁 교육의 정점을 보여줬다. 7세 고시란 예비 초등학생을 위한 유명 대형 학원의 시험을 이른다. 분명 미친 짓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가 아니라면 이런 짓을 소중한 자녀에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곳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는 특별히 악하지 않다. 오히려 기반은 사랑이다. 우리 아이가 편하게 살았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같은 반 아이가 좋은 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크게 동요하게 된다. 우리랑 다를 것 없다. 우리도 그곳에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7세 고시에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이 유혹은 사랑을 전제로 하는 만큼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이것을 행하면서도 비정상적이라고 자각하기 어렵다. 점점 지쳐가는 아이와 다투는 일도 많아진다. 결국 의사가 되면 그동안 쌓인 원망은 해결될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더욱 굳세게 나아간다. 나약해지지 않아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굴 위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아이를 위하지만 정작 아이는 괴로워한다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물론 큰 성취를 위해서는 큰 고통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이룬다고 한들 행복할 수 있을까? 단지 남들에 비해 안정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으니까? 사랑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가치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즐거워하는지 함께 고민해주는 것이다. 정답은 아이에게 있다.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의 샘 리처드 사회학 교수는 한국 학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SKY에 합격해도 다른 대학을 선택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많은 학생들은 하버드나 예일에 붙어도 다시 우리 대학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우리 대학의 미식축구 문화가 좋아서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인은 대학의 간판보다 경험을 더 중시한다.” 간판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함에 목적이 있다. 경험은 내면의 성장에 목적이 있다. 간판은 초점이 바깥에, 경험은 초점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사례는 나답게 살 수 없는 우리나라를 잘 보여줬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질을 어떻게 떨어뜨리는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방 대학보다 수도권 대학,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지방 거주보다 수도권 거주, 서울 중에서도 8학군, 일반 회사원보다 전문직 등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우열 관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좋은 삶, 훌륭한 삶, 행복한 삶에 대한 인상이 단 하나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가치 체계는 결국 물질주의 하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내가 아닌 바깥에 존재하는 판단 기준 또는 나에게 강제되는 사회의 가치가 물질주의였던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평가 받는 기준은 바로 ‘물질주의’ 단 하나였다. 한 사회가 구성원으로 하여금 단 하나의 가치만을 강제한다면, 그 속에서 단 하나의 평가 기준만이 존재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단일적인 계급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주지가 서울인지, 직업은 전문직인지, 학력은 인서울인지, 내향적이기보다 외향적인지, 부모님이 골프는 치시는지 말이다. 결혼정보회사는 이를 점수화하여 계급도를 작성했다. 하나의 피라미드 속에서는 대부분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하나의 통로에서 소수만이 선두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성공은 소수의 몫이다. 아니, 소수라서 성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패배자인 국가에서 아이를 많이 낳고 그만 자살하라는 말은 어리석을 뿐이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이 물질주의적 가치관 하나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들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 수능을 치고, 대학에 들어가 알바를 하며, 서포터즈든 동아리든 자격증이든 스펙을 쌓고서, 인턴십에 합격해 기뻐한다. 한두 번 정도 인턴십을 하고 나면 자기소개서도 꽤 풍성해지고, 수많은 불합격을 받다가 취업에 성공한다. 그러면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결혼 이야기를 무례하지 않은 척 꺼내어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잔소리에서 자유롭고 싶었는지 어느 순간 결혼을 해 출산도 한다. 바쁘게 아이를 키우면서 20년이 속절없이 지나간다. 대학을 보낼 즈음 부모님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신다. 위아래로 돈이 줄줄 샌다. 그런데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골프도 친다. 동시에 노후 걱정은 막중한데 답은 없어서 반 포기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김창옥 같은 분이 마음 둘 데 없는 우리를 위로해준다. 은행은 이 수요를 바로 알아차리고서 역모기지 같은 상품을 출시해 나름 유리한 해결책을 마련한다. 그러면 그것이 마치 휼륭한 대책인 양 유행한다. 유행에 편승하면서 계속 비슷하게 살아간다. 다 그렇게 산다. 이처럼 하나의 가치만이 작동하면 생활양식도 획일화된다.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길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든 일은 적당한 때가 있다. 그리고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취급 받는다. “쟤 고졸이래”, “쟤 왜 아직 결혼을 못 했지? 어디 하자 있는 거 아냐?”, “아직도 취업을 못했어? 눈 좀 낮추지”. 모두가 비슷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주 불안하게 했다. 달라선 안 된다고.



해결 방안은 곧 매거진 ‘슬기로운 초년생활‘의 집필 계기


우리나라는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 불황이 한몫할 것이다. ‘나’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를 주지 않은 교육도 한몫할 것이다. 개인보다 공동체가 강조되는 농경사회에 익숙한 동양이라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불과 100년도 안 되었기에 물질주의의 환상에 집단적으로 눈이 멀어버리는 현상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이 누구인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물질적인 가치가 곧 올바름의 기준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나라는 진정한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자유주의가 맞다. 하지만 의식적인 차원 또는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전체주의에 가까울지 모른다.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죄송하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을 아직 찾지 못했다. 전체주의라면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도록 강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물질주의’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물질주의적 전체주의 국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해온 그 거대한 문제 덩어리를 나는 ‘물질주의적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물질주의적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은 판단의 기준이 내가 아닌 밖에 있다. 물질주의에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짚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핵심을 건드리는 만큼 해결책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결 방안도 단순하게 도출할 수 있다. 밖에 있는 판단의 기준을 내 안으로 들여오면 된다. 나다운 선택을 하면 이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들이 가는 대로 그저 휩쓸려 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이 매거진 ‘슬기로운 초년생활’의 집필 계기이다. 나다운 선택을 하면 좋으니 같이 해보자고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행복한 삶은 나로 충만한 삶이며 나로 온전한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더 거창하게는, 과열된 우리나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기획했다. 따라서 책의 내용도 ‘1. 내가 직접 나다운 선택을 실천하며 느낀 점’과 ‘2. 나답게 사는 인물을 소개‘하는 두 부분으로 구성했다. 머리에 피도 덜 마른 게 어딜 인생을 운운하냐고 지적할 수 있다. 충분히 공감한다. 나 같아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께 조언을 듣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매거진은 조언보다 공유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짧은 인생에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나다운 선택을 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작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소망한다.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어쩌면 초보적이다. 문제 해결을 제도가 아닌 개인에 의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에는 항상 ‘관련 교육 강화‘라는 진부한 해결책이 달리듯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근본적이기 때문에 진부한 것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꽤 괜찮은 수준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순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나다운 삶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며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집단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를 실천한 개인의 삶만큼은 충만해질 것이다. 직접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한 사람으로서 인생이 보다 윤택해지는 경험을 했기에, 혼자만 이를 깨닫고 행동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하기 쉬운 세 가지


다만, 이 글을 읽다 보면 오해하기 쉬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물질주의 가치관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물질주의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물질주의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진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아무리 멋진 가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집단 전체를 사로잡는다면 경계해야 한다. 그러니 물질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질주의를 추구했을 때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들에게는 나다운 삶이다. 이 분들은 오히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차가운 원리와 본인의 가치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치 비주류가 아닌 주류 음악에 뜻이 있는 작곡가는 자기가 원하는 음악 방식을 추구하기만 해도 대중의 수요가 자연스레 따라오듯 말이다. 반면, 자신을 성찰하지 않은 이가 그저 물질주의를 답습하는 행위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무조건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은 항상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행복은 통념처럼 완벽하게 즐거운 상태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행복은 불행이 동반되어야 한다. 어둠이 있어야 빛도 존재할 수 있듯 말이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훌륭한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즉 실질적인 행복이 발생한다. 행복은 마냥 행복하지 않아야 존재할 수 있다. 완전함이란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 욕심 때문이든, 권태 때문이든 완벽이란 어떻게든 존재할 수 없다. 나아가 이 균형점에서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완벽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 주변에서 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다운 선택이 의미 없어지진 않는다. 나다운 선택은 나에 대한 성찰을 전제로 한다. 나를 더 잘 알면 행복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더 쉬워진다. 또한 나다운 선택 역시 행복처럼 완전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과 타협해 적당히 나다울 수 있다면, 그 균형점에서 오히려 온전할 수 있다. 가장 나답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물질주의적 전체주의가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양면적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경제적 또는 기술적 성장을 해왔다. 급격한 경제적 성장 때문에 물질주의적 전체주의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했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피식민지가 식민지의 1인당 GDP를 추월한 전례는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이는 유명인을 일명 ‘나락’으로 보내버리는 ‘냄비근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냄비근성으로서의 전체주의적 성향은 그리 달갑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합세해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민주주의를 이뤄냈으며,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 IMF를 극복해냈다는 역사는 어떤가? 얼마 전의 12.3 내란도 우리 시민의 단결력으로 종식시킬 수 있었다. 이 기반에는 전체주의적 성향이 존재했다. 부정적일 것만 같았던 우리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한 것이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기의 고통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성숙하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성장통일 것이다. 사춘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물질주의적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이 매거진을 시작했지만, 아픔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만은 않기를 원한다. 그저 덜 아프게 지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매거진을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