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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이코노미 Sep 06. 2022

화폐의 출현

화폐는 3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는 거래의 매개체, 둘째는 회계단위, 그리고 셋째는 가치저장수단이다. 사용빈도와 시차를 고려할 때 거래매개체로서 사용되는 화폐가 회계의 단위나 가치의 저장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거래의 매개체로서 화폐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을까? 본 글에서는 물물교환경제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했다는 일반적인 추론과 다른 주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칼 멩거(Carl Menger)의 이론에 따르면 화폐단위는 자주 거래되던 재화가 점차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래의 매개체가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한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점점 더 많이 사용될 수록 이 매개체로서 재화가 제공하는 효용이 늘어남에 따라 지배적인 거래매개체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이론은 화폐가 물물교환이 지배적인 교환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로부터 자연스럽게 출현하게 되었다는 일반적인 추론과 맞닿아 있다. 그 추론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자급자족경제로 부터 벗어 났으나 화폐가 없던 물물교환경제 시기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기에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통해 자급자족하던 때에 직접 생산하거나 수확하지 못했던 물건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전보다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고 그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을 본인이 갖고 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즉  ‘욕망의 이중적 일치문제(Double Coincidence Problem)’가 발생한다. 교환 비율도 문제다.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협상에 의해 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교환시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찾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거래매개체로서 화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론의 주내용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개든,  금이든, 은이든 무엇이든 화폐가 될 수 있었다. 대부분 다른 재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구성, 휴대성, 가분성 등의 우위를 보였던 재화들이 지배적인 거래의 매개체, 즉 화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도 뉴펀들랜드섬의 말린 대구, 버지니아에서의 담배, 서인도제도에서의 설탕 등을 예로 들며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펠리스 마틴 (Felix Martin (2013))에 따르면, 인류학자 조지 돌턴(George Dalton), 캐롤라인 험프리(Caroline Humphrey),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등은 물물교환이 경제시스템에 중요한 거래 방식이 었던적이 역사적으로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도 물물교환에서 화폐가 태어났다는 증거보다는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들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화폐는 신용거래에 수반되는 정산과정에서 사용되는 수단 또는 증거물(Token)로 출현하게 된다. 정산은 재화의 인도 즉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누적된 거래내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애덤 스미스의 예시들은 채권과 채무를 상계하고 남은 잔액에 해당하는 가치만큼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지급한 재화, 다시 말해, 순채무 잔액의 정산을 위한 상품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례중 대표적으로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존재했던 영국 재무성의 엄대(Tallies)를 들 수 있다. 엄대는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영국 웨스트민스터궁 인근 강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가 재료로 사용되었다. 엄대 위에는 눈금이나 글씨를 통해 재무부의 수입지출 내역이 쓰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납부한 세금에 대한 영수증도 있고 채무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거래 당사자들은 엄대에 세부 거래내역을 기록한 뒤 세로로 길게 쪼개서 하나씩 나눠 가졌다. 일종의 분산원장이다. 그것도 휴대성이 뛰어난. 버드나무의 나뭇결때문에 위조도 불가능해 안전하기까지 했다. 특히 재무부에 대한 채권내역이 기록된 엄대는 거래시 지급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거래상대방은 이를 다른 거래상대방에게 사용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처럼 말이다. 엄대 외에 다른 예로서,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재조명된 얍섬(Yap Island)의 돌화폐 페이(Fei) 유사하게 작동하는 화폐로 볼 수 있다. 


제시된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볼 때, 신용거래에 수반된 정산과정에서 양도가능한 채무로서 화폐가 출현했다고 보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현재에도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면 지급 이후 청산과 결제가 이루어지는데 결제는 중앙은행의 양도가능한 채무로서 이루어진다는 점 고려하면 더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이를 암호화폐에 적용해 본다면, 비트코인은 양도는 가능하나  어떤 주체의 채무인지 불분명해보인다.


참고문헌

Felix Martin (2015), “Money: The Unauthorized Biography”, Vintage


<그림> 영국 재무부 엄대. 13세기.

출처: Flickr


metaecon.io 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재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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