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는 방법

제4화. 한 여자_아니 에르노 지음

by 셀끽

엄마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어려운 일이에요.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요. 엄마는 언제부터 그런 존재가 된 걸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답일 거예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 봤더니, 그냥 전부이고 우주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사실이 좋거나 싫거나 만족스럽거나 불만족스럽거나 인정하거나 회피하거나 선택과는 상관없이요.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예요. (태어나기 이전부터 연결되어 있던 관계기도 하고요.) 생후 6개월부터 2세 사이에 양육자와의 관계로 애착 유형이 형성되죠.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열리는 거예요. 세상이 안전한가, 사람을 믿어도 되는가,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은가... 나의 마음이 안정, 불안, 회피, 혼란 이런 유형으로 분류되어 이미 기억도 안나는 아기 시절에 정해졌다니. 억울한 부분이 있죠?


애착 유형 말고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많아요. 어릴 때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따라 자존감의 토대가 되고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요, 삶의 기준과 가치관의 씨앗이 심어져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과 시선과 방식이 다 엄마한테서 온 거라니! 하다 못해 "난 엄마처럼 살 거야" 혹은 "나는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선언하는 것처럼요.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난 이렇게 커버렸는데. 그냥... 엄마는 엄마였고, 나는 나였고. 서로에게 상처를 신랄하게 주고받으며, 사랑과 희생까지 곁들였어요. 아빠랑 친하고, 엄마는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그때는 "아빠의 일 순위는 가족인데 엄마의 일 순위는 엄마 자신 같아"라는 말을 잘도 했었어요. (건방지게. 뭘 안다고! 그리고 일 순위가 자기 자신이면 뭐 어떻다고!) 성인이 되고, 삼십 대가 되고 사회의 쓴맛을 세게 느끼면서 엄마도 날 무지 사랑하는구나 느끼는 일들이 생겨요. 특히 결혼하면요. 결혼 준비할 때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 오랜만에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 차 앞까지 배웅하는 모습... 낯선데요. 드라마에서 보던, 애틋한 모녀의 그림이요. 하루는 어릴 때 사진을 찾고 싶어서 서랍을 뒤적거렸어요. 철제 상자가 보였고, 동생과 제가 그동안 써왔던 편지 뭉텅이가 빼곡하게 쌓여있었어요. 우리 엄마도 편지를 이렇게 소중히 간직해 뒀구나 하고 괜히 뭉클해지던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창피해요. 줄노트를 북 찢어서 "난 엄마 진짜 싫어.... 하는 행동은 이기적인 거야" 화가 잔뜩 난 메모를 남긴 종이 조각이 있는 거예요. 이런 것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일렁였어요. 상처를 줬겠구나 하는 미안함, 분노에 찬 종이 조각도 간직하는 만큼 날 사랑했구나 하는 안도감이요.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니쥬가 선정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는 작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녀를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이에요. 한 여자, 한 노동자, 한 인간의 삶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되짚고 곱씹으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의 존재가,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죠. 100페이지 안팎의 짧은 분량이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될 거예요.


한 여자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봅니다.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요. 너무 예쁜 한 여자였는데 한 소녀를 다시 여자로 키워내면서 어느새 늙어버린 우리 엄마. 친절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나름의 고군분투로 한 여자의 우주를 창조해 준 우리 엄마. 사랑합니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전화할게요.


한 여자와 함께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 엄마.





다독다독의 '한 여자'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https://monthly-dadoc.stibee.com/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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