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름을 짓는다면

제3화. 이도 다이어리_김경묵 지음

by 셀끽

그냥 어쩌다 한 번쯤 상상해 보는 주제 있잖아요. 내가 만약 언젠가 아기를 낳는다면 이름을 뭘로 지을까? 하는. 중학생 때 연애, 결혼, 출산, 가족을 꾸린다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것과는 별개로 친구들과 이름 짓기 놀이를 하곤 했어요. 별명을 붙일 때도 이름을 가지고 만들죠. 대대손손 내려온 아주 오래된 원초적 농담처럼요. 부름으로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그를, 비로소 꽃으로 바꿔버리기도 하는 이름이란 것. 운명과 정체성을 좌우한다는 이름이란 것. 앞으로 보살필 존재에 이름을 붙여 생명력을 불어넣고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성스러운 행위라고나 할까요. 이름 짓기란!


중학교 때 제가 미는 아기의 이름은 '김치'였어요. 성은 '김'이고 이름은 '치'인 건데 지금 들어보면 황당무계한 거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고요!

1. 한국적일 것

→한국적인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 시절 여느 소녀처럼 드라마 '궁'을 재밌게 봤었죠. 우리나라도 입헌군주제였으면 좋았겠다,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다, 나중에 50대 되면 한복 입고 다녀야지(왜 50대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같은 식의 꿈들을 꾸었어요. 이름도 마찬가지. 한글, 한강 이런 이름이 참 예뻐요.


2. 형제자매 둘이라면 돌림자를 써서 비슷하거나 연결되어 이어질 것

→이것도 영화 '식객'을 보고 생각이 든 건데요. 마지막 장면이었나. 누군가 "진수, 성찬이가 모이니 진수성찬이네~"라고 말해요. 주인공 요리사 이름이 성찬이고, 요리대회를 취재하는 VJ 이름이 진수예요. 작명센스에 감명받았어요. 형제자매가 둘 이상이라면 이름이 연결되면 좋을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대한 민국 만세, 훈민 정음... 등등.


3. 이왕이면 받침이 없을 것


4. 영어 이름으로도 쓰기 좋을 것

→3번 4번은 비슷한 맥락이에요. 저의 본명이 딱 받침도 없고 영어 이름으로도 같이 쓰기 좋아요. 부를 때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 있고, 영어 스펠링도 너무 길지 않고 간결하게 쓸 수 있어서 편리해요. 제니, 리아, 유나, 나나... 등등처럼요.


김치에 이어서 셀끽의 작명 계보를 흔든 떠오르는 샛별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바로바로...! '이도'입니다. 맞습니다. 이도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의 이름이에요. 조선의 제4대 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학문이면 학문, 예술이면 예술, 과학이면 과학. 우리의 민족문화를 활짝- 꽃 피웠어요.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뭐 천재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으로 다스리는 애민정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위대한 위인으로서 세종대왕의 존재를 익히 들어 알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인전을 따로 읽어보거나 깊게 파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던 2025년 2월, 다독다독 모임책으로 과이리가 이 책을 선정합니다. 바로바로바로...! 김경묵 작가의 '이도 다이어리'. 세종대왕은 어릴 적 과이리의 최애 인물이었대요. 성인이 되어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고요. 책을 읽고선 셀끽의 최애 왕이 되었습니다. 과연 이도는 일명 덕질하기 좋은 덕후몰이상(?)이에요. 세종의 진짜 어진이 남아있진 않지만요. 그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덕후들을 잔뜩 양성할 수밖에요.


이도 다이어리는 163권의 세종실록을 기반해 세종 재위 기간, 22세부터 54세까지의 33년(즉위년+재위 32년)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냈어요. 김경묵 작가 본인도 덕통사고로 세종에 빠진 한 사람이었어요. 삼성전자 디자이너로 20년간 일하다 정리한 후 이 책을 쓰게 됐는데 그 시간이 무려 11년이 걸렸다고 해요. 세종실록을 읽고 생각하기를 9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를 2년.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위대한 성군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시간을 들였는지요. 1년이 한 개의 챕터고, 2020년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당시 관직명이나 용어, 문체, 도량형을 현대와 가깝게 바꿔뒀어요. 그래서인지 우리네 사는 모습이 과거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져요.


업적이 거의 천상계이고, 따뜻한 마음씨는 말해 뭐해요. 고기를 덜 먹고 몸을 더 움직이든 너무 일만 하지 않고 워라밸을 챙기든 건강을 지키며 오래 살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쉬움도 남아요.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이도는 셀끽의 작명 기준에 모두 적합한 이름이에요. '한국적'인 것의 근간이 되는 위인이고, 받침도 없고, 영어로도 쓰기 괜찮을 거 같고요. (둘째가 있다면 역대 조선 왕의 이름 중에 골라볼까요. 왕의 이름에 쓰이는 글자는 피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지요. 피휘라고 합니다. 그래서 확률을 줄이기 위해 조선 왕들은 이름을 보통 외자로 지었어요. 외자로 통일성을 가질 수 있겠어요. 아, 최근에 흥행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세종의 손자이기도 한 단종이 유일하게 두 글자 이름이에요. 이홍휘. 태조, 정종, 태종은 태어날 때 왕족이 아니었기에 패스) 아무래도 김치라는 이름은 반대도 좀 있고, 놀림을 많이 받을 거 같으니 이도라는 이름을 우선순위로 올려두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과이리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친한 언니도, 아직 예정 없는 항항도 '이도'라는 이름을 후보에 올렸다고 했어요. 곧 '2027년 인기 이름 순위'에 이도가 랭킹 될지도 몰라요. 호호.


갓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 그런데 그 이름을 '이도'로 짓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도에게는 엄청난 존경의 의미이고, 아기에게는 그만큼 애정과 사랑의 의미이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아기 이름의 영감을 얻게 된 이도 다이어리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지 않겠어요? 아기 이름의 강력한 후보가 된 만큼 앞으로 이도의 덕질을 해보려고 합니다. 한글로 된 책을 읽는 행위도 그의 덕질에 해당될까요?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관. 조선의 네 번째 왕 세종!
과학이면 과학. 측우기와 해시계.
예술이면 예술. 궁중 음악 악기인 편경.
끝판왕 훈민정음 창제.


나무위키 느낌으로 이번에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더.

1. 세종대왕의 탄신일은 1397년 5월 15일. 한글을 창제해서 백성들에게 지식을 전파한 민족의 스승으로서 의미를 담아 스승의 날을 5월 15일로 지정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도와 과이리는 97년생 띠동갑. 소띠... 이도가 600살 연상.

2. 조선 왕의 어진은 남아있는 게 몇 점 없어요.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한번, 6·25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1954년 보관 창고에 불이 나서 한번... 그렇게 거의 소실되었어요. 세종대왕의 실제 어진 역시 없습니다. 만 원권에 그려진 것은 상상으로 그려진 초상화인데, 그것을 그린 김기창 화가 본인 얼굴과 비슷하다고 해요...

3.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요, 세종대왕은 경복궁에서 즉위하여 승하한 최초의 왕이라고 합니다.





다독다독의 '이도 다이어리'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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