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데이트에서 지적 매력 발산

제2화. 찬란한 멸종_이정모 지음

by 셀끽

자꾸 여자 얘기만 하는 거 같아서 멋쩍긴 한데요, 뭐 어쩌겠어요. 아무래도 셀끽의 영감의 대상인 듯하네요. 주위를 맴도는 매력적인 여성들. (내가 얼쩡거린 걸까요?)


며칠 전 (제2화 영감의 대상이 된)친구 M과 국립중앙박물관 데이트를 했어요. 930만 인구 대도시, 서울의 인프라 중 아쉬울 거 같은 장소가 여러 군데 있죠. 한강, 궁, 백화점과 핫한 골목들, 그리고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소장 유물도 제일 많은 국립중앙박물관! 유홍준 관장이 말하길 박물관의 3대 구성요소는 유물, 건물, 사람이래요. 서울 한복판 남산과 거울못을 담은 배산임수의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유물 사이로 M과 나는 거닐어요. 가능한 자주, 틈틈이 누려야지. 이놈의 인프라.


먼저 국중박의 슈퍼스타, 대표유물인 반가사유상을 감상하기로 합니다. 이름하여 사유의 방. 대상을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 방. 방에 들어서면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 단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볼을 짚고 다리를 얹은 자세로 생각에 잠긴 채 존재해요.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탓에 해탈의 경지, 무아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너의 한숨을 내쉬게 하며 단숨에 너를 사로잡아버린 그 문제들, 지나간다. 흘러간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보고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굿즈를 사고 싶었어요. 오다가다 보다 보면 반가사유상처럼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ㅎ 현장구매는 실패했지만요.

(왼)국보 제78호 (오)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다시 1층, 박물관의 규모가 방대해서 하루 만에 다 살펴볼 엄두를 내진 못했죠. 교과서의 첫 페이지를 펼치듯 제1장과도 같은 선사·고대관의 구석기 신석기 파트 앞에 섰어요. 입구에는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표현한 미디어아트가 재생되고 있었어요. 아 이거 책에서 읽었지. 바로 M에게 아는 체를 합니다. "이거 봐,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한다면 인류의 탄생은 고작 1초 전 이래. 1초 전에 불쑥 나타나선 지구에서 많은 걸 일궜고 또 많은 걸 파괴했지. 단 1초 만에!" 재작년 다독다독에서 환경을 주제로 읽었던 책 중에 마지막을 장식한 이정모 관장의 '찬란한 멸종'이 머리에 스칩니다. 나름 (셀끽이 무척 어려워하는)자연/과학 부문의 책인데도 스토리텔링이 잘 짜여 술술 읽혔던.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건 단 1초 안의 일(차례 전 페이지, 13쪽에 지질시계가 나와요. 23시 59분 55초,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두둥.)'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M에게 아는 체까지!


전시는 고인류에 관한 짤막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M의 시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동시에 공존한 기간이 있었대" 하. 저 이것도 들어봤어요. 그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에서 말이죠. 141쪽, 하이델베르크인은 100만 년 전에 등장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여기서 45 만년 전쯤에 분기되어 나왔다. 또 여기서 30 만년 전쯤 호모 사피엔스가 분기되어 나왔다. 그러니까 한때 하이델베르크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가 모두 함께 살았다는 것. 박물관을 돌아보며 살짝씩 되살아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이어 붙이니 지식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P.141)하이델베르크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는 동시대 존재했다.

+흥미로운 내용 추가. 네안데르탈인은 식량을 보관할 수 없어서 있을 때 최대한 먹었어요. 힘들게 사냥했는데 썩혀 버리기 아까우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폭식. 있을 때 잔뜩 먹어서 몸에 지방을 쌓아 평소에 적게 먹어도 생존할 수 있도록요. 그것이 바로 SLC16A11 유전자고요. 빠르게 지방을 몸에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탓에 현대인의 몸속에 남아 비만과 당뇨 문제를 일으키게 됐죠. 5~6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교배가 일어나면서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현대에는 덜 필요해진 공포의 SLC16A11 유전자가 교환된 거고요.


M은 그녀만의 도슨트를 이어갑니다. "빗살무늬토기가 왜 바닥이 둥그런지 알아? 주로 해안가에 사니까, 모래에 고정시키려고 그런 거지." "농경사회 들어서면서는 바닥이 평평해져. 농사를 짓고, 땅에 정착을 하니까." "흑요석 잔돌날 정교한 거 봐." "주한 미군 그렉보웬이 전곡리에서 데이트하다 주먹도끼를 발견해서 모비우스 라인 이론을 뒤집은 거야. 유럽과 아프리카에는 정교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됐는데, 그동안 동아시아에선 찍개만 발굴됐었어. 근데 유럽인들이 우월하다는 근거를 뒤집게 된 계기가 된 거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돌이지 않겠어? 고고학 전공자가 보니 그게 주먹도끼인 거지.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거 같아."

어떻게 구석기와 신석기에 대해 이렇게 잘 아냐고 감탄했더니 오히려 문제집의 첫째 장만 너덜너덜해지는 거랑 비슷한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박물관에 와서 구석기 신석기에 대해 구석구석 설명해 주는 사람이라니. 매력적이에요. 홀딱 반하고 맙니다. 그런 그녀에게 박물관을 나서면서 책 한 권을 추천했어요.


'찬란한 멸종'. 지은이도 털보 관장으로도 불리는 관장님이에요(현재는 펭귄각종과학관 관장). 지구의 다섯 번의 대멸종을, 아니 어쩌면 예견된 여섯 번의 대멸종의 시간을 거꾸로, 각 시대마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어떤 기후변화와 환경 보호 관련 책 보다 이입이 됐어요. 내가 태어난 고향, 지구별에 애정도 더 생기고요. 박물관 데이트에 나서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찬란한 멸종' 읽어보는 건 어떠신지요. 당신의 지적 매력을 발산함과 더불어 찬란한 데이트가 될지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남산타워. 서울 하늘도, 지구도,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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