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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 달려본 남자 Jun 17. 2024

자동차 주행시험장 (1)

현대자동차의 숨겨진 영웅

남양주행시험장부터 모하비주행시험장까지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하고 양산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차체의 안전과 내구성은 물론 수많은 차량 내 부품이 기후, 도로 환경, 운전자 특성, 법규 등의 기준을 충분히 만족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개발 중인 자동차의 성능, 안정성, 운전상의 편의성 등에 대한 모든 검사는 자동차 주행시험장(Proving Ground)에서 한번에 다 이뤄진다.


우리나라에는 현대자동차가 1995년부터 운영하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 내 주행시험장이 유일하다. 그보다 앞서 1983년에 울산에 지어진 주행시험장은 2025년 전기차공장으로 바뀔 예정이고, 기아 화성공장에는 품질확인용으로만 운용된다. 사실 상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남양주행시험장에서는 총 16개 노면 위에서 약 300여 개 시험이 진행된다. 차량 디자인과 단품 및 시스템 시험이 끝난 개발차량을 여기서 직접 운전해 보는 것이다. 고속주회로는 마치 사이클 경기장처럼 코너 부위에 42°의 경사가 나 있어 시속 25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카레이싱 선수가 아니라면 난생 처음 보는 계기판 숫자다.


40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남양주행시험장에는 비 오는 조건을 묘사한 강우시험장, 먼지 조건을 묘사한 먼지터널, 미끄러운 노면을 묘사한 저(低)마찰로 등 자동차의 다양한 주행환경 등이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재현하기 어려운 폭설의 저온 조건은 별도의 장비를 사용하여 1차로 시험하고, 최종으로는 알래스카 현지를 직접 달려보면서 검증한다.


해외에서는 미국 모하비 사막에 캘리포니아주행시험장을 운영중이다. 2005년 완공된 이곳의 면적은 약 1770만㎡. 여의도 2개를 합한 크기에 육박하고, 무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답게 여름철 지면 온도는 54℃를 넘는다. 현대차는 이곳에서 극도로 더운 환경, 해발 700m 이상의 고지, 등판로 등 한국의 지리적, 기후적 조건 상 남양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시험을 진행하고, 미국뿐 아니라 멕시코, 브라질 공장 생산차량의 품질확인 시험도 실행한다. 또한,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는 중국 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경기도 화성의 남양과 똑같은 주행시험장을 운영중이다.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주행시험장이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주행시험장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곧, 자동차의 모든 부품을 나사 하나까지 모두 설계하고, 조립하고, 완성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기술자립에 성공하고 현대차의 첫 고유모델인 ‘포니’를 1975년에 만들고, 그 이후로 엑셀, 스텔라 등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자동차주행시험장의 역할이 컸다. 주행시험장이 없던 시절에는 해외에서 가져온 도면 그대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울산에 자동차주행시험장이 완공된 1984년 이후에는 기술자립이 가능해졌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현대자동차에 자동차주행시험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고 현대자동차를 나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주행시험장에서 입사하여 퇴직할 때까지 30여년간 근무할 수 있던 것은 매우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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