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똑딱
"올해도 벌써 다 갔다. 그치?"
"그러게요. 과장님은 크리스마스 때 뭐하세요"
"나야 뭐 애들이랑 있어야지. 산타 분장도 하고. 넌 뭐 애인도 없겠다, 케빈이랑 보내겠구만?"
"어휴, 과장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케빈입니까. 이젠 잘 나오지도 않아요 그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답잖은 인생 이야기와 시답잖은 일 얘기로 채워지던 상사와의 저녁식사.
"연애는 안하냐? 내가 한 명 해줘?"
"연애는 무슨, 됐어요. 관심 없어요."
사람들은 때때로 나에게 '연애'를 권유했고, 나는 그때마다 '됐어요-'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런 대답을 하고 나서는 정해진 수순 마냥 그녀를 떠올린다. 그녀가 바다를 건너, 저 멀리 어디쯤으로 날아간 작년 이맘때.
'벌써 일 년인가...'
이미 적당한 취기가 올라왔지만, 집 앞 슈퍼에 들러 또 소주 한 병과 라면을 사고야 말았다. 여전히 집은 컴컴하고, 여자 DJ의 차분한 목소리만이 이 음산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 짓도 참 지겨울 만큼 했구나. 사월인 내가 이렇게 먹는 거 싫어했었는데...'이렇게 무턱대고 그녀가 생각나는 날엔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의 우울이나 상실감이 밀려오곤 했다.
이어서 '잘 지내고 있겠지. 요즘도 밥을 잘 못 먹으려나. 낯선 곳에서 외롭진 않을까. 만나는 친구는 있나.'같은 별스러운 생각도 가득해지곤 한다.
그때, 끊임없이 쏟아지는 생각의 늪에서, 난 어떤 결심을 했던 것일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금요일 연차 내신서를 작성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날 데려다 줄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해보면 참 짧았던 석 달이었다.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석 달이, 그 뒤의 일 년을 집어삼킬 줄이야.
그 때로부터 일 년이 지나 이 자리에 있지만, 그때의 나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발전한 것도, 성장한 것도. 전혀. 그러나 그만큼 그리움이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석 달을 하루로 쪼개 그녀와 했던 모든 것을 떠올리고, 다시 읽고, 또 그렸다. 결국 그녀가 옆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보낸 셈인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 눈 앞에 네가 없다면, 곧 식어버리고 말 거라고. 지금처럼 좋지 않아질 거고, 자연스럽게 멀어질 거라고.
' 개뿔- '
내게 오지 않는 시간을 성급하게 단정 짓고 판단한 탓에, 그녀는 상처만 가득한 안은 채 떠나갔고, 나는 나대로 이곳에 남아 만신창이처럼 살았다. 이제야. 시간이 가져다 준 진실을 마주한다.
"넌 절대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거야-"
그리하여 난 이 자리에 있고, 그곳으로 가며, 그게 무엇이든 '변화'라는 카드를 쥐고 돌아올 것이다. 어떤 변화여도 상관없다. 또 아무것도 변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단 한 가지 바라는 건, 그녀를 한 번만 더 마주하는 것.
그녀와 나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난 일 년을 고백하겠다. 매일 같이 널 그리게 되더라고. 내 하루는 다시 엉망이 되더라고.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당신이 허락해준다면, 내가 있던 곳에 돌아가 널 기다리겠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항 대합실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10시, 하네다로 출발하는 항공기에 탑승하실 고객 여러분께서는 12번 게이트로 탑승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그동안 100일간의 계약연애 시리즈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