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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n 24. 2016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별 편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그들이 헤어지기 전, 데니스가 그녀에게 말하지. "당신 때문에 한 가지 싫어진 게 있소." "그게 뭐죠?" 그녀는 물었어. "혼자 있는 시간." 데니스의 대답이야.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에 인용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대사.


첫 자리. 그와 앉았던 첫 자리는 꽤 따뜻한 공간이었어. 내 오른편엔 탁상용 책꽂이가 놓여 있었고 그곳엔 작은 책들이 꽂혀 있었고, 테이블은 보통의 크기보다 훨씬 넓은 편인 나무 탁자였어. 왼 편으로는 내 키보다 더 큰 트리에 작은 엽서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커피 향이 잔뜩 묻어 있는 벽 면에는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들이 걸려있었어. 그리고 정면에는 그 사람.


우리는 보통 열한 시쯤에 그곳으로 갔어. 이른 작별을 하고 싶지 않았다거나 아직 할 말이 남았다거나 그냥 내가 그 사람을 더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일 거야. 들어갈 때에는 대체로 사람들이 많았어. 그런데 조금만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이 우리 둘 밖에 없는 거야. 새벽 한 시쯤이었을까. 난 그 느낌이 좋았어. 결국에는 우리 둘이 남았다는 느낌. 저 쪽 구석에 놓여 있던 전축에서 나는 소리도, 이 쪽 선반에 올려져 있던 옛날 타자기도, 결국 우리 둘만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나는 그 공간을 좋아했어. 언젠가부터 우리를 알아보는 여직원이 가끔 쿠폰 도장을 하나씩 더 찍어줄 때 웃었어. 어느 날엔 피곤했는지, 눈이 반쯤 감겨있으면서도 집에 가자고 말하지 않는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웃었어. 한 날엔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어떤 이들의 버킷리스트가 적힌 책을 골라 우리도 여기 나온 일들 하나씩 해보자. 말하면서 웃었어. 아주아주, 오래전에.


우리는 어떤 사정이 생겨 한 동안 그곳에 가지 못했어. 함께 좋아했던 그곳에 다시 가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이별을 했고. 새삼스럽게 옛날 이야기를 해보는 건, 내가 얼마 전 그곳이 있던 자리에 다시 가봤기 때문이야.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의 흔적을 따라 간 건 아니고, 단지 친구의 차가 거기에 세워져 있었거든. 어떤 이유던 간에 의도치 않게 그 자리에 돌아가버린 나는 괴로워졌어. 친구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만큼 아파졌어.


그 사람과 내가 앉았던 자리가, 그와 내가 사랑을 시작하던 곳이, 그래서 우리에겐 가장 의미 있던 장소가 무너져 있더라. 요즘 같은 시대에 커피 가게 하나 문을 닫는 게 별스러운 일은 아니야. 그렇지. 그런데 있지, 나는 우리의 기억이, 그와 나눴던 사랑이, 그때의 마음들이 전부 없어진 것 같더라. 알아, 이별은 원래 이런 거잖아. 전부 다 없어지는 거잖아. 이렇게 무너져가는 거잖아.


내게는 아주 소중했던, 그 커피 가게의 이름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고, 그냥 나만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게 억울해져서, 네게 소개하고 싶었어.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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