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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n 23. 2016

하얀 냄새를 찾아요

이별 편

- 하얀 냄새를 찾아요 -


그저, 푸른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만 있다. 검은은 천천히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차가운 우유에 잠긴 눅눅해진 시리얼을 떠먹는다.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중.


이 냄새가 아니에요. 뭐랄까, 하얀 냄새. 더 가볍고 반짝이는 하얀 냄새를 찾고 있어요.


나는 세 명의 낯 선 이를 만났어요. 짙은 검정 냄새를 가진 사람, 강렬한 빨강 냄새를 가진 사람, 밝은 노랑 냄새를 가진 사람까지. 그들은 각각의 색과 냄새를 가졌지만 아무래도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죠. 그들이 어떤 광기나 가식을 가진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그들의 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아. 나는 어두운 파랑의 냄새를 가진 사람이에요. 언제든 깊은 검정이 될 수도 있고, 맑은 하늘빛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나는 하얀 냄새를 찾고 있어요. 섞이는 색에 따라 초록이나 보라색 냄새를 가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역시 청명하고 깨끗한 하늘빛이 좋았으니까요.


이 전에 내가 하늘빛이었을 때 나와 섞여 있던 한 아이의 하얀 냄새를 맡고 있자면, 어떤 두려움도 사라져 용감해질 수 있었고 온 몸 구석구석, 손톱 밑의 엷은 피부까지 행복한 향이 차올랐었 거든요.


때로는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나를 감싸 안는 하얀 냄새가 너무 아늑하여 그 품에 안긴 채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쁜 축복의 삶이었겠어요. 그저 그 아이를 쳐다볼 수 있고, 내가 하늘빛의 냄새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눈물이 흘러넘쳤었던 때도 있었죠.


불행이라는 말로는 차마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불행이 다가와 내 안의 모든 것을 채우고 있던 하얀 냄새가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결국 나의 색이 어두운 파랑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을 때. 나는 절망했어요. 그의 숨을 따라 쉬는 것조차 행복이었을 때가 그리워져서요. 올바른 하늘빛으로 존재하여 오늘보다 조금 더 반짝이는 내일을 만들기 위해 애쓰던 하루가 생각나서요.


별 수 없이 파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는 또 찾고 싶어요. 내가 깊고도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정으로 변하기 전에, 부서지는 햇빛과 예쁘게 조각난 구름과 아름다운 새들이 함께하는 하늘로 만들어 줄 하얀 냄새를.


혼자로 존재하는 색은 싫어요. 못 견디게 외롭고 지나치게 불안하죠. 그러니 혹시 하얀 냄새를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면 내게 알려주세요. 나는 다시 빛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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