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아주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불신, 자신감 상실, 증상이 더욱 심각해질 땐 '자기비하'쯤으로 나타낼 수 있는,
온몸에 가시를 돋아내고 다가오는 사랑을 찌르는, 그 정도의 버릇.
오늘 그 버릇 덕분에 그녀와 말다툼을 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툴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평소와 같은 퇴근 시간의 문자를 했고 그중 하나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나 한국에 없으면 바람 필 거야?]
대답을 할 때부터 많은 생각을 하고 답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질문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대답 또한 의도를 담고 있진 않았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자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니? 절대 아닌데? 그럴 리가 없어'
정도의 대답을 정해놓고 기다렸던 것인가.
그리고 생각을 시작했다.
답이 정해져 있었다면 물음은 왜 시작된 것일까. 마냥 '아니'라고 답하는 것보다 훨씬 솔직하고 현실적인 대답이 아닌가. 물론 당장은 기다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그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혹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녀를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기다릴 자신이, 솔직히 없다.
그래서 그렇다고 답했을 뿐인데.
그녀의 메시지를 본 후 처음 든 생각이 '기다릴 수 있어! 왜? 난 지금 그녀를 사랑하니까! 아주 불같은 사랑이니까!' 였으면 참 좋았겠지만, (생각이 이쯤에서 멈췄다면, 다툼까지 가지 않았을 테지.)
실상은 '난 기다릴 수 없을지도 몰라. 왜? 난 그런 놈이니까.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놈.' 이었다.
상대가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의견을 끝끝내 이야기하고야 마는 좋지 않은 습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건 사실 솔직하다기보다 예의 없고 오만한 것이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문제를 명확히 알면서도 고쳐볼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은 이랬던 적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미래의 우리는 어떨까?'라는 식의 질문을 했고, 난 '모든 사랑은 비극일 거야.'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말하고 난 뒤에도 내내 찝찝하고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저 그게 내 생각이었을 뿐이다.(그 때도 아마 그녀는 상처를 받았겠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이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나는 그런 사람.'
아마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가 너무 크기 때문일 거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은. 어린 나이에 한 친구를 만나 20대, 내 청춘의 절반이라는 긴 시간을 사랑했다. 그리고 끝났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이후로 사랑은 언제나 비극이며, '해피 엔딩'이라는 말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모순의 극치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오래된 이별 뒤에는 항상 이런 류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랑을 찾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어찌 됐건, 새로운 사랑을 만나 또 치열하게 사랑하면서도 한 켠에 자리 잡은 우울하고 부정적이며 불필요한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눈 앞의 사랑에 방심하다가 또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그녀의 전화가 왔다.
심술이 잔뜩 찬 목소리로 한참을 투정거리던 그녀에게 사과를 했고 그녀 역시 스스로 예민했다며 너그럽게 날 받아줬다. 그리고는 다시 웃으며 남산, 자물쇠, 십 년 후에 받는 편지 등을 이야기했는데, 그 와중에 그녀가 또 아까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십 년 후에 보는 편지는 안 되겠다. 바람 필지도 모르는 남잔데 그때 내 옆에 있겠어? 흥!"
'하...'
분명히 내 말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겠지? '봐달라고, 나 너 때문에 상처 났다고.'쯤인가. 그걸 알면서도 미간이 약간 찌푸려져, 좋은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감정이 싫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을 두고 건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일 얘기하자."
이게 오늘의 마지막 대화였다.
조금의 흥분도 없는 채로,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무덤덤한 마음으로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 질문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아닌가. 내 잘못인가. 내가 부드럽지 못했나.
[누구 때문인가]
이야기의 발단은 그녀. 그리고 마무리는 나.
[화해(누군가의 사과)가 필요한가]
결국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마 나겠지.
[왜]
감정이 상했음을 드러내며 대화의 창을 닫은 게 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을 제 깐에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기둥에서 파생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충돌을 이토록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파악했다.(이것 또한 나의 문제가 확실하다)
그리고 결국 '내일 다시 연락해봐야지.'하고 말았다. '분명 내 앞에 그녀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마 눈 앞에 그녀가 있었다면 나를 감싼 사랑에 푹 빠져서, 그녀에게 상처가 될만한 일이나 말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거다. 방금 같은, (내 딴에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오만함은, 오직 그녀가 내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니까.
다시 한번 스스로의 '이중적 태도'에 경악하며,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