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침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것은 추운 날씨 때문만이 아니겠지. 출근을 할 때에도, 일을 하면서도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연락을.. 해야겠지...?'


합리적인 생각이랍시고 상처 줄 것 다 주고선 이제와 후회를 하는 나란 남자. 워낙 두부처럼 하얗고 여린 사람이라, 많이 상처받았을 텐데.


'뭐라고 하지? 무슨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아직도 기운 없으려나?'

오전 내내 고민만 하다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야, 밥 먹으러 안 가냐?"

"네, 먼저 가세요. 저 하던 것만 마저 하고 따라갈게요."

할 것도 없었으면서 괜히 자리에 남았다.


'그녀도 지금 밥 시간일 텐데... 아!'


그녀가 식후에 마실 커피를 선물하면 되겠다 싶어, 얼른 모바일 쿠폰을 찾았고,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미안해, 단 거 먹고 기분 풀어.]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답장.

[나도 미안해.]


사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쉽게 풀일 일도 사과를 하지 못해서, 눈치만 보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정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고, 그녀가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있었다면, 이렇게 싸울 일도 없었을 테고, 지금쯤 그녀를 꼭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을 텐데.


'역시 보고 싶다. 강사월.'

[끝나고 만나자! 저녁에 갈게^^]


이렇게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사를 했고, 일을 마쳤으며, 그녀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쯤엔 다시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차있었다. 저 앞쪽으로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고, 살금살금 다가가 뒤에서 그녀를 안았다.


"잘 있었어? 미안해. 많이."


풍겨오는 그녀의 샴푸 냄새를 맡으니 모든 것이 좋아진 기분, 오히려 전보다 훨씬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다툼 뒤의 찜찜한 기분을 날려버리기 위해 평소보다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거다.


"우리 떠날래?"


'음... 응...?'

다소 느닷없는 타이밍에 들려온 그녀의 여행 제안.


"응? 어딜 떠나?"

"그냥, 어디든. 어디든 떠나는 거야! 기분 전환도 할 겸. 어차피 내일 토요일이잖아!"


난 '계획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루를 여행 가더라도 시간마다 해야 할 일정을 정해놓아야 하고, 예산을 짜야하고, 동선을 맞춰야 한다. 누구는 꼼꼼하다고도 하고, 다른 누구는 재미없게 산다고도 하는 그런 성격인데.


본래의 성미에는 맞지 않지만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면 도저히 사양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아무것도 준비 안됐는데?"

"준비할게 뭐가 있어. 어차피 겨우 하루인데! 가자!"


곤란하지만 웃는 표정으로, "어디로?" 하고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춘천!?" 하고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춘천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영 낯설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흠, 그래! 가! 가보자 한번!"


그렇게 시작된 '돌발 화해 기념 여행'.


경춘선을 타기 위해 황급히 상봉역으로 향했다.


"나 학교 다닐 땐 이런 것도 없었는데. 캬- 옛날 생각 나는구만! 졸업하고 한 번도 안 가봤거든."

"난 춘천 처음이야. 좋은데 있어? 뭐 먹어? 어디서 자?"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지른 거구만.'


그런 그녀가 멋있었다. 넓은 아량으로 남자친구를 용서하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여행을 외치고, 계획에 없음에도 실행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내게 베풀어주는 그녀가 너무 근사했다. 이미 우리가 다퉜다는 사실은 잊혀진지 오래였고, 오직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만이 가득했다.


늦은 저녁 도착한 춘천역은 꽤 쌀쌀했다.

그녀를 조금 더 내쪽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역시... 춘천은 닭갈비지? 학교 앞에 진짜 맛있는데 있어. 거기로 가자."


몇 년만에 찾은 춘천은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학생 때 자주 가던 닭갈비 집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에게 내 대학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혼자 추억에 젖어서 말하는 게 재미없었겠지만, 그녀는 내내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미소를 담아주던 모습 그대로.


"고마워."

여전히, 날 만져주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고마워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 뭐가?"

그녀에겐 다소 생뚱맞은 타이밍일 수도 있었겠으나.


"그냥, 고마워서."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다투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내게 새로운 봄빛을 선물해준 그녀가 아니던가. 한 번이라도 더, 그녀를 웃게 해줘야 한다.


아주 맛있게 밥을 먹는 그녀를 보니 어쩐지 그저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더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밥을 먹고 난 뒤 시내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사실 짐이랄 것도 없고, 호텔이라 하기에도 너무 이름만 호텔이었지만).


씻고 나온 그녀가 머리를 말리며 내게 물었다.


"내일은 어디가?"


'저기... 나도 갑자기 온 거거든...'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밝고 친절한 안내원의 톤으로 대답했다.


"응, 내일은 남이섬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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