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옆자리엔 여전히 그녀가 잠을 자고 있었다.


'와.. 같이 잔 거네 진짜... 나 코 골거나 한건 아니겠지..?'


처음으로 밤을 온전히 함께 보내고 나니, 신기함과 설렘,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쨌거나 좋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머리를 감고 이를 닦았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아주 예쁜 그림의 모닝 키스를 해주고 싶어서. (하여간 좋아 보이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달까.)


간단히 씻고 나오니 그녀가 뒤척이며 눈을 떴고, 나에게 하는 아침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입을 맞췄다.


"헤헤, 이리와, 한번 더 해!"

그녀가 활짝 웃으며 받아줬다.

아침부터 사랑이 방울방울 맺혀간다.


"조금만 기다려, 내려가서 토스트랑 시리얼 가지고 올게."

"응, 빨리 와!"


아침식사를 챙기러 내려가던 중에 생각했다.

매일이 이런 아침이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이 아침처럼 그녀는 여러 방면으로 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어서, 나 역시 그녀를 항상 웃게 해주고 싶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그녀의 손을 잡고 밖에 나오니, 공기는 쌀쌀하고 햇살은 따뜻했다. 적당한 추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며 우리는 남이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남이섬, 이름을 알지 못하는 커다란 나무가 양 쪽으로 서있고, 그 사이로 쭉 뻗어있는 예쁜 흙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나는 이민을 생각한다고 말했고, 그러자 그녀는 같이 떠나자며 맞장구를 쳤었다.


"나중에 같이 가는 거다!?"


사실 이런 류의 미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거기다 그녀와의 미래라면, 더욱더.


쉽게 공수표 날리듯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당장 두 달 뒤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보다 먼 미래의 이야기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싶어서.


'둘이 같이 떠나자, 거기서 행복하게, 여유롭게, 그렇게 살자.'

이런 말들이 현실이 된다면 더할 수없이 좋겠지만, 그래서 복권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당첨된 뒤의 일을 꿈꾸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음에 쓸쓸함이 몰려왔던 탓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진짜 오길 잘했다."


더 쓸쓸한 생각이 덮치기 전에 다른 주제를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남이섬은 가을 낙엽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나무 틈 사이로는 강물에 부서진 햇빛조각들이 보여, 그야말로 산책을 하기에 딱 좋은 풍경을 담고 있었다.


또 사람은 꽤 있는 편이었지만 우리의 페이스대로 걷는 데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으며, 사람들의 소음보다는 바람소리와 개구리 소리, 새 소리들이 더 많이 들리는 편이었다.


"여기 좀 앉을까?"


그녀의 체력이 왕성하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적당한 타이밍에 휴식을 제안했다.


"휴... 좋다 그치?"

"응, 진짜 좋다. 서울은 어딜 가도 사람도 많고 시끄러운데. 여긴 조용해서 너무 좋아!"


그녀는 항상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했다.


"고마워. 덕분에 이렇게 힐링여행도 하고 말이야."

"에이 내가 더 고맙지! 가자고 하는데 불평도 없이 나 데리고 와줘서."

"앞으로는 종종 이렇게 다니자. 싸운 뒤에 오는 화해 여행 말고!"


싸운 뒤라 더 애틋한 감정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좋은 마음으로만 오자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서로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씻어냈고,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남은 코스를 더 걸었다. 흙길을 조금 더 밟은 뒤에야 우리는 화해 기념 돌발여행을, 우리가 처음 한 밤을 보낸 역사적인 날을 마칠 수 있었다.


열차에 올라 나른한 몸을 한참이나 꾸벅거렸고 서울에 도착할 때 즈음 정신을 차렸는데, 그 사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린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놓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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