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부터 번지점프까지, 최근 며칠 동안이 참 짧고 치열했다. 최선을 다했고, 애썼으며, 사랑했고, 웃었다. 그가 떠남으로 인해 느껴질 부재는 새로 만든 예쁜 기억이 채워주리라-.
좋은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그녀와 함께 있던 시간, 내내 밝게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땐, 이미 저 먼 곳에 간 것처럼 지독한 불안이 엄습해온다.
그녀는 살던 집을 정리했고, 남은 시간이 아주 짧았으므로 그 기간 동안은 우리 집에 와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마음 같으면 일주일 연차를 쓴 뒤,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사랑을 비벼대고 싶지만. 결국엔 한숨만 쉬어 대며, 짐을 싸고 있다.
"찰스!! 잘 싸고 있어? 내가 시킨 대로 하고 있지??"
부엌 끝에서부터 걱정과 못 미더움이 결합되어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게 새어나온 한숨을
황급히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으며 답했다.
"그럼!! 사월이 오빠 못 믿니!! 오빠가 다 알아서 해줄게!!"
애써 웃음 바른 대답을 하며 서랍을 열었더니 앨범이 나왔다.
'참, 꼼꼼하기도 하지...'
으레 이사할 땐 한 번씩 꺼내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써온 기록들을 마주했다. 가장 최근으로는 번지점프와 송별회, 그녀와 싸운 뒤 건넸던 노란 장미 사진 옆엔 이미 마른 꽃잎이 붙어있었고 벽화 마을이라던지, 부산에서의 기억들도 고스란히 한 켠을 채우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치열하게도 사랑을 만들었구나.'하는데 눈이 뜨거워졌다. '아, 들키면 안되는데.' 생각하지만, 이미 터져버린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다행히 그녀가 밖에서 일을 하고 있던 덕분에 울음소리가 들리진 않았을 거다. 급하게 눈물을 훔치고 그녀 몰래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휴. 왜그러냐 너. 니가 울면 사월인 얼마나 슬프겠냐. 울지 마. 사내 새끼가 뭘 울고 그래!"
강하고 단단한 남자인 척도 했다가 웃어도 봤다가, 조금 시간이 지났나 보다.
"김찰스! 뭐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안 나와?"
"어휴 뭘 그렇게 보채고 그러나! 세수하고 있어!! 어련히 알아서 안 나올까 봐!"
"갑자기 뭔 세수야, 일 얼마나 했다고."
"뭐어-?! 얼마나아-?! 너 내가 방에서 지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피- 이리와, 안아줄게."
고생한다며 날 격려하던 그녀를 안고 또 한 번 눈두덩이가 부어올랐으나, 간신히 참아내며 밥타령을 한다.
"우리 얼른 정리하고 밥 먹자!! 이사하는 날은 역시 짜장면이지!!"
그녀가 틈틈이 짐 정리를 해둔 덕에 오래 지나지 않아 일을 마칠 수 있었고 일주일 동안 지낼 옷 몇 벌과 간단한 짐만 챙겨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
"휴. 이제 진짜 가나보다?"
"응. 집까지 정리하고 나니까 실감이 조금 나네."
"그래도 다행이다. 회사에서 정리할 시간 줘서."
"그러니깐! 찰스네서 일주일 동안 부인 행세해야지!"
"어쭈? 이놈의 여편네! 아침만 제대로 안 챙겨줘 봐 아주 그냥!"
'그래. 아직도 일주일 남았으니까. 남은 시간 마저 행복하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와 나의 생각이 같을 것이란 걸 알기에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 장 보러 가자! 입주 기념으로 저녁은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그녀가 말했다.
"벌써 시작한 거예요 부인? 그럼, 나 된장찌개!"
혼자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 그리워지는 집밥 메뉴가 있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엔 그게 '된장찌개'였다. 된장찌개의 맛을 좋아한다기 보다, 뭔가 음식 자체에 '그리움'이 담겨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녀가 만들어주는 찌개에 기억을 담고 싶었다.
마트에서 둘이 카트를 끌고 있으니 정말 그녀가 내 와이프라도 된 것 같았다. 그녀가 재료들을 담아 내고 있을 때 웃으며 그녀를 자극했다.
"할 줄은 알지?"(그녀는 요리 실력에 대해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너 딱 기다려. 평생 잊지 못할 맛을 만들어주지."(예상을 했음에도 귀여웠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탁을 꾸민 그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의 첫 숟갈을 지켜보고 있었다.
".. 와...."
"어때!!"
"사월아.. 내가 말했잖아... 너 가지 마라. 그냥 여기서 장사하자... 이건 무조건 떼돈이라니까!?"
"그럴 줄 알았다. 히히. 고마워 맛있게 먹어줘서."
예상대로 우리의 저녁식사는 따뜻했다. 찌개도, 시간도, 그녀의 마음도.
우리의 '동거' 첫날은 온기를 머금은 채 저물어 간다. 호들갑을 조금 떨기는 했지만, 분명히 진심이 담겨있던 말.
가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