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남자 혼자 사는 방은 대체로 퀴퀴하고 대체로 어지러우며, 대체로 어둡다. 물론 그것은 내 방도 마찬가지어서, 매일 아침 침침한 방에서 일어날 땐 기분이 좋지 않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뭐랄까. 쓸쓸함이나 외로움, 텅 빔 따위를 느꼈던 것인데, 이런 쓸데없는 것들은 내가 퇴근 후 돌아왔을 때에도 당연한 듯이 방에 남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난 라디오를 틀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에서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던 새벽녘이었는데, 물 소리, 칼로 도마를 치는 소리,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는 소리들이 들렸다. 문 건너 저편을 바라보니, 내 방에는 영 어울리지 않던 소리들을 그녀가 만들어 내고 있다.


씻고 나와서도 한동안 그녀가 만들어 내던 풍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주아주 따뜻하고, 보글보글한 풍경을. 그리고 곧 풍경 속에서 걸어 나온 그녀가 내게 다가와 말랑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얼른 와. 아침 먹자."


혼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아침.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더라.


"아니, 아침부터 안 피곤 해?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

"피곤하긴, 찰스가 맛있게 먹고 회사 가면 나도 기분 좋은 일이지!"

"미안해서 그렇지! 좀 쉬다 가야 되는데!"

"괜찮아, 괜찮아. 찰스 나가고 좀 더 자면 돼."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내 점심 도시락까지 챙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시락까지??"

아침부터 사랑이 넘쳐대는 통에 뽀뽀를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 집에 갔다 온다고 했지? 조심히 잘 다녀오고, 중간중간 연락하고, 차조심하고"

"응, 내가 뭐 애냐! 걱정하지 마. 잘 다녀올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며 출근을 했고, 회사에서는 내내 점심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유는 결국 '자랑'이 하고 싶어서였겠지.


회사 연령층이 상당이 높은 편이라, 중년의 과, 부장님들은 도시락을 싸오는 분들도 많았다.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 먹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곤 했는데, 오늘은 나도 그들 무리에 끼어 밥을 먹었다.


"찰스 씨, 웬일이야? 원래 나가서 먹잖아?"

"아, 오늘은 특별히, 그런 일이 있었죠. 히히."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잔뜩 담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어머! 이게 뭐야! 애인이 해줬구나!"


눈치 빠른 회계팀 차장님이 단박에 알아채고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머어머, 맛있는 거 봐! 애인이 요리 잘하네~!"

"흠흠, 뭐 대충 이 정도랄까."


소풍 가는 소년의 도시락처럼 아주 귀엽고 앙증맞게 음식이 담겨있었고, 맛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어깨는 이미 하늘까지 솟을 기세로 커져 '내가 이런 여자를 만난다고.'하는 표정이 끊이질 않았다.


아마 하루 종일 그런 표정이었을 거다. 하루 온종일 그녀가 보고 싶어 문자를 보냈다.

[잘 오고 있는 거지? 보고 싶으니까 빨리와!]


그리고 퇴근 무렵엔 그녀의 도착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저녁시간이었지만, 가서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볼 수 있겠다 싶어 마중을 나가기로 결정. 어차피 집에서 볼 수 있는 그녀였지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안일하게 보낼 수가 없었다. 몇 분이라도 더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후에는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을 확인했고 나오는 곳 앞에서 조금 기다리다 보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래도 그녀를 찾는 일에는 나름 자신이 있던 터라 쉴 새 없이 눈을 돌려가며 그녀를 찾았고, 역시나 인파 속에서 빛나던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 다녀왔어요?"

"놀래라! 왜 왔어. 조금 있다 볼 건데! 밥은?"

"안 먹었지. 혼자 먹기 싫어서. 사월이랑 같이 먹으면 좋잖아."

"아니, 혼자도 챙겨먹고 해야지. 반찬들 꺼내서 먹는 게 그렇게 힘들어?"


무슨 일이 있었나. 평소에도 밥 챙겨먹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그냥 잔소리가 아니라 화를 내고 있었다. 난 그저 저녁을 같이하고 싶었을 뿐인데. 느닷없는 그녀의 화에 당황했고, 내 입도 그렇게 얼어버렸다.


이윽고 집 앞에 도착한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나 전화 좀 하고 들어갈게."

나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집은, 다시 원래의 쓸쓸한 집으로 돌아와있었다. 전처럼 어두웠고, 습했으며, 차가웠다. '후...' 한숨을 쉬며 그대로 침대에 누워 집 곳곳에 끼어있는 적막을 감상했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의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치킨 괜찮지?"

시작부터 끝까지 영문을 알 수 없던 그 '화'가 사그라졌나 보다.


"앞으론 화내지 마. 하나도 안 어울리니까."

"응. 미안."

"얼른 들어와 추워."


찬바람이 묻어있던 그녀를 껴안자, 적막은 천천히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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