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마지막. 그녀와 함께하는 끝. 여기까지 와서도 영 실감이 나지 않은 채였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관계의 맺고 끊음은 정확하게 해야 하니까. 그녀와 함께 지내는 일주일 동안 내내 생각했다. 난 그녀가 먼 곳으로 떠나더라도, 그녀의 부재를 인정하고 가슴에 품은 사랑을 간직하거나, 혹은 유지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내 눈 앞에서 숨을 쉬고, 움직이고, 시간을 나누는 동안에는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을 퍼다 줄 자신이 있다. 다만 내가 혼자 이 검고 탁하고 숨 막히는 곳에서 그녀의 부재를 사랑의 애틋함으로 지워내는 일은 자신이 없다.


냉정하거나 무정하거나, 혹은 현실적이거나 사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주제 파악.


어딘가에서 읽었던 문구가 있다. 두터운 벗은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좋다고,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는 거라고, 그리하여 아주 멀리 떨어져있어도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내가 결국 슬픈 결론에 다다른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마음이 부족해서 였겠지.


찬 공기가 어떻게든 따뜻한 방 안으로 들어오려던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녀의 살내음을 맡았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향'으로 남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그녀의 향을 더 들이키고 싶었다. 그녀가 돌아누워 내 온 곳을 만졌다.


어딘가 슬퍼 보이던 그녀의 손짓.


유난히 말이 없던 그 날 아침. 빵을 구워 먹으면서도 특별한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이별'이라는 거대한 벽을 감지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을 했는데..."

"친구 중에 아스팔트에 고인 물로 세수하는 또라이도 있다니까?"

"난 고등학생 때 이후로 놀이공원 가본 적 없는데..."


주제도 없고 방향도 없던 이야기들은 그녀의 웃음이 되었다가 이내 사라져갔다. 근처에 숨어있던 적막들은 내 이야기가 끝날 때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이 공간을 노리고 있었고, 난 그들이 돌아올 틈도 없이 어떤 이야기든 꺼내어 놓았을 거다.


"저녁은 우리 나가서 먹자.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아니야. 집에서 먹자. 스테이크 해줄게. 저번에 사둔 와인 있지? 그거랑 먹으면 되겠다."

"음.. 그래! 우리 파티 하자, 파티하는 것처럼! 초도 켜야겠지!?"


잠시 뒤 그녀의 손에서 마지막 저녁식사가 만들어졌다. 큰 와인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작은 공간에 울리자, 결국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일이네."


그리고 난 도망쳤다.


몇 시 비행기로 가느냐, 누구랑 가느냐, 짐은 챙겼느냐.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피해가며 잔을 채웠다. 분명히 생각은 정리를 했는데,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 따윈 없는 치사하고 비겁한 겁쟁이처럼.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가 핵심을 짚었다.


"우리는?"


그녀의 말에 검은 적막이 식탁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삼켰다. 그리고 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난... 여전히 자신이 없어."

"그럼, 여기서 그냥 끝인 거야?"

"미안해. 난 용기도 없고 기백도 없어. 스스로를 믿는 확신 같은 것도 없어. 오히려 내 사랑이 변질되고 말 거라는 확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이런 지경에서 널 안심시키고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처음에 했던 약속의 날이었잖아. 오늘까지만 이었잖아 오늘에 맞춰진 사랑이었으니까,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었어. 고맙고, 미안해."


이야기의 중간부터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미안하다는 말을 마친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그녀를 안았다. 내가 그녀를 안아주고 '위로'했다기보다, 그 어마어마한 슬픔 속에서 서로를 껴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게 정확하다.


가슴 부분이 점점 뜨겁고 축축해진다.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를 틀어막아보지만 얼굴엔 물기가 한 가득 이기도 하다. 우리가 눈물의 강에서 휘청일 때, 그녀가 아직 울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목소리를 꺼냈다.


"그래, 우리 오늘 헤어지자."


가을의 초입.

따뜻한 커피와 함께 그녀를 만났어요.

하얀 해가 가득했던 나무 밑을 걸었고,
늙은 나무로 만들어진 기타를 연주했으며,

초록으로 신선한 잔디 위에서...


사랑이 곳곳에 스며있던 터널을 지나오며

아주아주, 행복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역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고마워요.

내가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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