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는 행복할 수 없는 걸까?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by 마리무비

마블 시리즈를 모두 챙겨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시리즈 물이라면 사전 공부쯤이야 충분히 감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 개봉 영화 및 드라마를 유튜브로 미리 보고 갔다. 그러나 벼락치기는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느낌만 남았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초능력자이며, 스칼렛 위치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상실감이 매우 큰 초능력자라는 사실만 기억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역시 상업 영화이다. 플롯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서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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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특수효과로만 봐도 될 정도로 가벼운 맛이지만, 그중에도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점이 이런 영화의 매력이다. 생각할만한 소재를 항상 남긴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완다 스칼렛 위치의 호러 연기이다. 이전 작품을 볼 때까지만 해도 히어로 라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영화에서는 메인 빌런으로 등장했다. 빌런이 된 이유는 한 마디로 요약 가능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수많은 감정이 함축되어 있는 복잡한 사정이기도 하다. 사명감을 가지고 지위에 맞는 의무를 다했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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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어릴 때 봤다면, 아니 불과 2년 전에 봤더라면 인물의 감정 흐름을 이해는 할지언정 공감은 절대 못 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어본 경험이 없으니까. 하다못해 한 명이라도 누군가를 그만큼 사랑하고 아껴본 적이 없었다. 감정이라는 것은 고작 호르몬의 화학 작용 결과에 불과하고 그 정도는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 이 영화의 리뷰를 썼다면 글의 소재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현대 영화의 특징이라든가, 시빌 워에서부터 이어지는 공리주의와 영웅심리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람이 바뀌었나 보다. 영화적 장치나 플롯보다는 인물의 관계와 감정에 좀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이 자는 왜 이런 행동을 했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따위의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완다는 확실히 능력과 경험이 있는 실력자였기에 빌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상실을 접하고 나면 너무나도 우울해져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법도 한데. (내 경험의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완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물론 그것이 바람직한 행동이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극적으로 뭔가를 시도했고 그걸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능력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완다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그런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직접 들어야 했다. 뛰어난 능력으로도 소망을 이룰 수 없었기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감정을 글로만 이해했을 텐데,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고 잃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마음 깊이 전해져 오는 게 정말 다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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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은 스칼렛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스트레인지도 마찬가지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같이 시간을 보냈고 서로에게 큰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스트레인지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수는 없었다. 스칼렛과 달리 스트레인지의 감정선은 굉장히 덤덤하게 그려져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결국 둘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 같은 건 없었다.


보면 볼수록 초능력자의 인생은 슬프겠구나 싶다. 어릴 때는 초능력자처럼 힘과 권위와 명성을 가질 수 있다면 뭐라도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까지 부럽진 않다. 초능력자의 상실감과 허무를 채워주기에, 사명감과 이타적 행동에서 오는 보람이나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작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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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멀티버스를 여행할 수 있는 그 소녀에게만큼은 암울한 결말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름이.. 기억이.. 안나) 물론 어릴 때 이미 사랑하는 이들을 잃기는 했지만, 스트레인지나 스칼렛과 달리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왔다. 조금이나마 열린 결말이지 싶다.



그렇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우울한 결말을 선사할 수는 없다. 그것이 미국식 상업 영화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