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의 more than words, ‘엘리제를 위하여’나 ‘캐논 변주곡’ 정도는 연주해야 피아노 좀 건드려 봤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기타 좀 뜯어봤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 곡 정도는 연주할 줄 알아야 했다. 이 곡은 1990년에 발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오로지 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케이블 방송이라는 것이 생소했던 그때 오로지 공중파 TV에서 간간이 보여주던 뮤직 비디오로 이 노래를 알게 됐다. 음반이 발매된 지 2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당시에 알바를 하고 받은 월급으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나 좋아하는 외국 가수의 뮤직비디오테이프를 구입했던 취미가 있었다. A-ha의 ‘Take on me’에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Michael Jackson의 ‘Thriller’처럼 뮤지컬 같은 퍼포먼스도 없는 이 뮤직비디오는 흑백 화면에 기타리스트와 가수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그저 노래만 부르고 있다. 화려한 것이 없어서 더 담백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정확하게 이 뮤직 비디오를 소장하고 싶었다.
발매된 지 2년이 지난 이 비디오테이프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니아층은 있겠지만 수요가 많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는 테이프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일요일마다 알만한 곳은 다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지구레코드라는 대형 음반점에서 간신히 이 테이프를 찾아냈다. 하나 남은 이 테이프는 그때 돈으로 대략 만 오천 원 정도 했다. 당시에 만 오천 원이라는 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Extreme의 다른 곡들이 아닌 오로지 이 한 곡만을 소장하기 위해 그 돈을 쓴다는 것은 남들이 봤을 때 한심했을지 모른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가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집착이라면 집착일 수도 있다. 많은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최소한의 수고가 불가피한 그 시절, 그간 헤매고 다니던 내 노동의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른다.
'아우라(aura)'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영기(靈氣)'라고 번역하는데, 주체와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와 유사하고 조금은 신성시되는 그런 가치를 언급하기도 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와 대상 사이에 더 이상의 아우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처럼 많은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편리한 기술 시대에, 대상을 더욱 정확하게 살펴보고 또 소유할 수 있는 시대에, 더 이상의 노동은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Extreme의 'More than words'는 스마트 폰으로도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은 곡인데 예전처럼 끝까지 듣고 감상을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얻을 수 있어 쉽게 잊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