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1978

알리바이 1978년 (아버지가 쓴 이야기를 이어서 마무리하다)

by 박바로가

알리바이 1978년

여학교 1학년 2학기 끝날 무렵이었다. 늦가을 종례시간 후 나른해진 나를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교무실에 담임선생님 앞에 나온 나는 겁 먹은 채 서 있었다. 담임은 3통의 편지뭉치를 내 앞에 내밀었다. 영문도 모르는 나는 담임이 하라는 대로 편지를 하나씩 펼쳐 읽어 갔다. 첫 번째 보내온 편지에는 그 날 밤 달빛아래 갈대밭을 헤치며 걸었던 것과 둘이서 다정하게 주고 받은 대화의 달달함이 장황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 번째 보낸 편지는 으슥한 잔디밭에서 일어났던 짙은 사랑의 나눔이 낮 뜨겁게 묘사되어 있었다. 눈앞이 침침해져 글자들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번째 편지 내용은 보고 싶어 못견디겠으니 아예 도망쳐 살자는 내용이 제법 설득력 있게 쓰여 있고 도주 행각 일시가 모래 아침 8시로 잡혀져 있었다.

홍당무가 되어 있는 나를 싸움장에 나온 진돗개처럼 노려보던 담임은 솔직히 고백하라고 재촉했다. 나는 이 곤혹스럽고, 황당함에 온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손에는 어머니를 모셔오라는 소환장이 들려져 있었다.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방황 후 집에 돌아 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예상하고 소환장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걱정어린 주의와 당부만 건넸다.

다음날 어머니는 나의 담임을 만났고 나는 수업후 부리나케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에따, 여기 이것 받아라!”

어머니가 한뭉치 편지를 내 앞에 던졌다. 그리고 물었다.

“얘, 순아! 그 편지봉투에 쓰여진 진태하라는 애가 누구니?”

“우리 담임의 막내 아들.”

내가 대답했다.

“그럼 자기 아들이 너하고 사귄다고 따진거니?”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그게 아니고 진태하가 자기 아들이란 것을 몰랐지!”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수수께기같은 소리야? 담임이 자기 아들 이름도 몰라?” 어머니는 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편지 겉봉투에 있던 이름과 주소가 가짜야.” 내가 설명했다.

“담임의 아들 이름은 진태하가 아니고 하태진이고 그가 다니는 학교는 N고가 아니고 B고이거든. 그러니까 우리 담임은 이 편지를 보낸 이가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어!” 내가 내 짐작을 말했다.

“너의 담임 아들 잘 생겼니?” 어머니가 궁금한 듯 엉뚱한 질문을 했다.

“난 잘 몰라. 걘 내가 자기 여자친구랑 싸웠다고 나한테 앙갚음하는 거야.”

나는 얼굴이 상기 되어서 어머니에게 분하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준 엄마는 담임에게 내가 수업이 끝날 때마자 돌아와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왔다고 말해줬다고 알려주었다.

‘그래, 이거면 내 알리바이는 증명되는 거야. 하지만 진숙이는 정말 얄미워!’

나는 어머니에게 나랑 싸운 하태진의 여자친구인 진숙이에 대한 질투심으로 불타오른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끝내 내 마음을 어머니한테까지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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