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장도 가끔은 회원이고 싶다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깨달음

by 당근짱


리더로 모임을 이끌다 보면 늘 비슷한 피곤함이 쌓인다.

거창한 피곤함은 아니다. 누군가와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 모임이 망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미세한 피곤함이다.


누가 늦으면 신경 쓰이고,

처음 온 사람이 어색해하면 괜히 내가 더 말을 걸게 되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또 뭔가 꺼내야 할 것 같고,
조용한 사람은 챙겨야 할 것 같고,
말 많은 사람은 적당히 끊어줘야 할 것 같다.


모임 내내 웃고 떠들고 돌아와도
집에 오면 이상하게 혼자 기가 빨려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모임장은 늘 작은 것들을 계속 보고 있다.


이런 피곤함이 있음에도 모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고,
바쁜 시간 내서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간보다 돈보다 마음 내는 게 더 어려운 시대다.
그런데 회비까지 내고 시간을 할애해 모임에 나와준다는 건 엄청난 마음이다.


그래서 피곤하면서도 계속 하게 된다.
답답하면서도 또 사람을 모으게 된다.
어디나 그렇듯 사람에게 지치는 날도 있지만 또 사람 덕분에 버티는 것이다.




모임장을 하면서 생긴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다.
다른 모임에 가서 그냥 회원으로 있어보기.


오늘만큼은 내가 분위기를 안 만들어도 되고, 말을 안 해도 되고,
어색한 침묵이 흘러도 못 본 척하고,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편하게 있다 오는 것.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오늘 그 미션을 수행했다.

마음이 끌리는 모임 하나를 고르고 벙개에 나갔다.

그곳의 모임장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게 하려 하고, 더 배려하려 하고
이 사람 말도 듣고 저 사람 말도 들고, 어떻게든 다 품으려 했다.
너무 애쓰는 게 보여 가만히 지켜보는 내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분위기는 더 흐려졌다.
누구도 방향을 못 잡고, 누구도 정리를 못 하고,
모임장의 노력이 더해질 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답답해했다.


결국 나도 참지 못했다.
적당히 존중하면서 정곡을 찌르고, 분위기는 깨지 않으면서도 핵심은 말했다.
사람들은 속 시원해했고, 누군가는 모임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며 웃었다.


그 말을 듣는데 허탈하면서도 허무했다.
나는 왜 어디를 가도 그냥 조용히 있는 사람이 못 될까.
왜 또 흐름을 읽고,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은 중심으로 들어가게 될까.




오늘 회원으로 벙개모임에 있으면서 새삼 느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서로를 존중하되 자신만의 분명한 생각이 있고,
질문이 오가고, 대화를 던지고 받는 사람.
“뭐든 다 좋다”고 하는 사람이 편한게 아니라,
자기 기준과 방향을 가진 사람이 편하다는 것을.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모임이 아니라 여행을 가야 한다.
혼자 여행 가서 혼자 여행 온 사람을 만나야 한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대체로 삶이 주도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분명하고,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한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꿈도 구체적이다.

그래서 대화가 즐거울 확률이 높다.

설령 맞지 않는다 해도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내일이면 헤어진다.
좋아도 그만이고, 싫어도 그만이다.
그날 하루만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모임은 다르다.
소속이 생기고, 얼굴을 트면 연락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마음과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그러다 보면 말이 남고, 감정이 남는다. 그래서 더 피곤하고 어렵다.




오늘 모임에 참여로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다.


1. 사람들은 좋은 모임장보다 기준 있는 모임장을 원한다.
하나의 방향을 정해야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그래야 다수의 회원들이 편해진다.


2.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모임보다 여행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관계도 가볍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걸 오늘 새삼 확인한 것이다.




벙개를 마치고 헤어지는데 내 공기를 읽은 누군가가 "담에 안올거죠? 오세요~ " 라고 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웃으며 눈인사로 답했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 즐겁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라는 간단 후기를 적었다.

그 글에 회원님들의 답글이 달렸다.

“OO님 또 볼 거죵? ㅎㅎ”
“OO님 매력덩어리예요. 담에 또 뵈어요.”


잠시 머뭇거리다 작은 이모티콘 하나만 남겼다.

가지 않아야 하고, 갈 수도 없다.

가면 또 흐름을 읽게 될 거고, 또 답답해질 거고, 또 중심으로 들어가게 될 걸 안다.

그럼 사람들은 내가 시원하고 재미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돌아오는 길에 또 후회하며 혼자 피곤해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호평해주는 것과 내가 그 관계 안에서 실제로 편한 것은 전혀 별개다.


모임의 사람들은 당분간 안부를 물을 테고
나는 작은 이모티콘조차 남기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을 달래며 침묵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어떤 새로운 모임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혼자 여행을 갈 것이다.

낯선 도시의 카페에 앉아 옆자리 사람과 눈 인사를 나누고,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웃다가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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