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친할머니는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계셨고, 친정엄마가 대소변을 받아내며 돌보셨다고 하였다. 함께 살았을 텐데 친할머니가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다. 강원도 홍천군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께서 내 장래를 걱정하셔서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릉에 있는 외가에 나를 맡겼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외가에서 지냈지만, 이모가 엄마 같았고 외할머니도 늘 자상하게 보살펴 주셔서 외롭지 않게 잘 지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는 엄마이고 고향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손자가 세 명이다. 여섯 살 쌍둥이 손자와 두 살 손자이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외할머니처럼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쌍둥이 손자가 태어나고 6개월부터 주말에 우리 집에서 돌봐 주었다. 지금 여섯 살이니 5년이 넘게 돌봐 주다 보니 쌍둥이 손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할머니가 되었다.
요즘 할머니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호칭하였는데 요즘은 대부분 사는 곳을 앞에 붙여 부른다. 나는 인천에 살고 있어서 ‘인천 할머니’가 되었고, 외할머니는 동양동에 살아서 ‘동양동 할머니’가 되었다. 어쩜 이 호칭이 맞는 것도 같다.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외할머니는 조금 소외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요즘처럼 부르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자들에게 이제 친할머니, 외할머니 호칭은 듣기 어렵겠다.
쌍둥이 손자
모임에 가서 할머니 호칭을 어떻게 부르냐고 물어보았더니 대부분 사는 곳을 앞에 넣어서 '목동 할머니, 강동 할머니'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요즘 이 호칭이 대세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결혼하고 시댁보다는 친정 가까이 사는 사람이 많아 손자들도 친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돌봐 주는 집이 많다 보니 친가보다는 외가와 더 가깝게 지낸다. 요즘 육아가 힘들어 아기 낳는 것을 기피한다는데 우리 집 쌍둥이는 친가와 외가 두 곳에서 할머니들이 돌봐 주니 복이 많은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다.
우리 집은 작은 아들이 장가를 먼저 가서 아이도 먼저 낳았다. 큰아들은 장가를 늦게 갔지만 허니문 베이비로 결혼하고 바로 아들을 낳아서 이제 두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영상 통화를 하는데 손자가 나보고
“아빠 하미! 아빠 할미!”
아직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데 나를 이렇게 불렀다.
나는 ‘아빠 할미', 외할머니는 '엄마 할미'가 되었다. 호칭도 시대에 따라 바뀌니 요즘 이런 호칭도 있다.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라 조금 어색하였지만, 호칭이야 어떤가. 손자가 내가 할머니인 걸 아는 것이 중요하지.
어린이집 다니는 손자
결혼을 먼저 한 작은아들은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산다. 거의 주말마다 쌍둥이 손자가 우리 집에 오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낯가림이 없었다. 큰아들은 조금 먼 곳에 살다 보니 손자와 자주 만나지 못한다.
가끔 영상 통화를 하면서 얼굴을 익히지만, 할머니와 친해지기엔 부족한 것 같다. 어쩌다 집에 와서 만나면 낯을 가려 안기려 하지 않는다. 안아주고 싶은데 울어서 안아주지 못해 속상하다.
지난번 추석에도 집에 왔는데 나한테 오지 않는다. 할머니를 아는지 궁금하여 손자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어디 있어?”
“아빠 할미!”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래, 내가 할머니인 걸 아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겠다.
아들 둘인데 모두 장가를 가서 손자를 낳았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숙제를 마쳤다. 요즘 걱정이 없다. 아들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은 손자들 잘 키우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거다. 요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 할미’가 되었다.
사랑이고 그리움인 ‘외할머니’ 호칭도 곧 사라질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시대가 바뀌었으니 호칭도 바뀌는 것이 맞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