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학생 55명이 다녀온 제주도 졸업 여행, 학생이 된 기분
졸업 여행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생각난다. 강원도 강릉에서 초등학교에 다녀서 졸업 여행은 설악산으로 다녀왔다. 처음으로 가는 2박 3일 졸업 여행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었을 거다. 오래되어서 그때의 기분은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친구들과 처음 가는 여행이었고 설악산도 처음이어서 기대가 많이 되었을 거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6학년이 남자 한 반과 여자 한 반 두 반이었는데, 남자 반 친구들이 여자 방에 들어가 놀다가 들켜서 선생님께 혼난 것도 기억난다.
두 번째 졸업 여행인 중학교 3학년 때도 설악산으로 갔었고, 여고 때 졸업 여행은 경주로 갔었다.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간 여행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졸업 여행 갈 때도 교복을 입고 갔었다. 경주에서 불국사와 석굴암, 왕릉을 보면서 그동안 책에서 역사로 배웠던 것을 직접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유적지 보는 것도 좋았지만, 호호 깔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가장 최근의 졸업 여행은 교대 2학년 때 다녀온 충청도에 있는 월악산이었다. 예전엔 교육대학이 2년제여서 대학 시절이 짧아 아쉬웠다. 대학생이라 함께 버스로 이동하긴 했지만, 자유시간이 많아서 등산도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설렘을 안고 45년 만에 졸업 여행을 떠났다
대학교 이후에 더 이상 졸업 여행은 없을 줄 알았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퇴직하고 성경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올해 3월에 '베델성서 대학' 강좌를 신청했다. 70대인 남편도 같이 신청했는데 오전 반도 있었으나 오후반에 등록했다.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8시 30분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있는데 이번에 공부하는 과목은 구약 성경 공부였다.
1학기 수업이 7월 초에 끝나고 방학을 한 후 9월에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1, 2학기 1년 과정인데 끝나면 '베델성서 대학'은 매년 12월에 졸업 여행을 가는 전통이 있었다. 졸업 여행은 매년 제주도로 가는데 여행비 부담을 줄이려고 매달 간식비 만 원과 여행비 이 만 원, 합해서 삼 만원씩 회비를 냈다. 1년 동안 모은 회비에 부족한 여행비만 추가로 내고 드디어 지난 일요일인 12월 14일에 제주도로 1박 2일 졸업 여행을 떠났다.
이번 졸업 여행에는 화요 오전반과 오후 반 55명이 참가하였는데, 가기 전에 조를 나누어서 조장을 정해 안내하였다. 나는 1조였는데 조원이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제주도는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졸업 여행 일정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미리 날씨를 검색해 보며 짐을 챙기는 일도 즐거웠다. 일요일 예배가 끝나고 집결지에 모여 버스 두 대로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졸업 여행이라 숙소도 호텔이 아닌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우리처럼 부부가 함께 온 분도 일곱 팀이나 있었지만, 학생들처럼 남녀로 나누어 조를 짰기에 조별로 여러 명이 같은 숙소를 쓰니 졸업 여행 기분이 났다. 바닥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의 12시가 되었다.
어른 학생 졸업 여행은 달랐다
베델성서 대학 졸업 여행의 전통이 윷놀이하는 것이어서 저녁 식사 후에 가장 넓은 숙소에 다 같이 모여 조별로 윷놀이 리그전을 시작했다. 이번 졸업 여행에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였는데 윷놀이하다 보니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 동심으로 돌아갔다.
말을 잡으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잡히면 아쉬움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윷놀이에서 7조 중 우승한 1등부터 3등까지는 꽤 많은 상금을 받았다. 진 팀이 아쉬워했는데 상금은 다음 날 카페 투어 시 모두에게 차를 사야 한다는 말에 진 팀은 손뼉 치면서 좋아하였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웃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 날 졸업 여행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 일정은 '스카이 워터 쇼'를 보러 갔다. 가이드가 라스베이거스 쇼 버금가는 쇼라고 해서 기대하고 갔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 여행 가서 본 심천쇼, 북경쇼는 스케일이 정말 컸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무대에서 물이 올라오고 다이빙도 하며 멋진 공연을 하였다. 대부분 출연자가 외국인으로 어려 보였다. 멋진 공연이었으나 쇼보다도 어린 외국 출연자들을 보니 맘이 짠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럴 거다.
다음 일정으로 '제주 허브 동산'에 갔다. 동산 마당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동백꽃이었다. 제주도에 여러 번 갔지만, 이번 여행에서 동백꽃을 가장 많이 보았는데 제주도 겨울 여행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주렁주렁 달린 귤을 보면서 제주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제주 허브 동산에서는 족욕을 하였다. 55명 어른 학생이 뜨거운 족욕탕에 발을 넣고 허브 소금으로 문질러 주며 '발아 고맙다. 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즐겁게 여행도 하는구나.' 하며 발을 소중하게 닦아주었다. 족욕이 끝나고 어른 학생 모두 행복해했다. 족욕도 어른 학생들만의 졸업 여행 일정이 아닐까 싶다. 족욕 후에 허브 동산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미리 만나는 크리스마스도 경험했다. 참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학생들 졸업 여행과 또 다른 점은 점심 식사 후에 카페 투어가 있다는 점이다. 55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카페가 궁금했다. 미리 조별로 차를 주문하고 도착한 카페 글랜코는 카페라기보다 넓은 정원이었다. 오전에 방문한 허브 동산과 마찬가지로 개인 땅이란 게 놀라웠다. 손목 팔찌를 차고 자유롭게 차 마시면서 정원을 산책할 수 있었다.
카페 정원에는 다양한 동백 군락지와 색은 바랬지만, 핑크뮬리 군락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차 마시는 장소가 별관이 있어서 조별로 모여서 차를 마시고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점심 식사 후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동백꽃이 빨간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꽃이 큰 서양 분홍 동백, 백동백 등 이번 여행에서 다양한 동백꽃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요즘 여행 문화도 족욕 체험, 카페 투어 등 보는 여행에서 체험하는 여행으로 달라졌음을 느꼈다. 여행 중 카페 투어가 들어있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에코랜드도 좋았다. 에코랜드는 여러 번 다녀왔는데 겨울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주도에는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숲이 많다. 이곳도 기차를 타고 숲을 보면서 이동하는데 수국이 피어있는 초여름도 좋았지만, 잎이 떨어져 적나라하게 드러난 줄기를 보는 것도 좋았다. 여러 가지 식물들 줄기가 서로를 감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향한 열정을 보는 것 같았다.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보다 누구랑 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거다. 이번 여행은 1박 2일로 짧았지만, 정말 알차게 운영되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현지 가이드가 안내를 해 주어서인지 매끼 식사가 다 좋았다. 갈치조림, 고등어구이, 간장게장, 고사리 제육볶음, 보말 미역국 등 정말 맛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어른들은 여행 후에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다 잊어버리는데 무얼 먹었는지는 다 기억한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이번 졸업 여행은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였지만, 한마음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저는 결혼하고 가족 없이 혼자 한 여행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의미 있는 여행이었어요."
"이번 졸업 여행은 연가를 내고 와야 해서 안 올까 했는데 안 갔으면 땅 치고 후회할 뻔했어요."
"같은 종교인들이라 밤에 간증을 나누는 시간도 참 좋았어요."
"저도 졸업여행은 30년 만에 왔는데 내년에 또 오고 싶어서 베델성서 대학 신약도 공부하려고 해요."
"어린 아들 둘을 남편과 어머니께 맡기고 와야 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나를 위한 여행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모두 1박 2일로 짧았던 졸업 여행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학생이 된 것처럼 순수하게 보낸 이틀이었다며 즐거워했다. 이번 졸업 여행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은 70대 남편이었지만, 함께 가신 목사님 부부와 늘 식사도 같이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어 좋았다고 했다.
이번 여행으로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랑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45년 만의 졸업 여행은 또 다른 추억 한 페이지를 장식해 주었다. 앞으로 '졸업 여행'이란 이름으로 가는 여행은 마지막일 것 같아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제주도 겨울 여행도 동백꽃을 실컷 보고 주렁주렁 달린 귤밭도 보는 괜찮은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