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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당신의 훠궈(火锅) 스타일은?

어떤 국물, 어떤 재료, 어떤 소스로즐길 건가요?

  한국에 마라(麻辣) 열풍이 불면서 마라탕(麻辣烫), 마라샹궈(麻辣香锅), 훠궈(火锅) 같은 요리들은 이제 제법 대중에게 익숙하고 매니아도 꽤나 있는 듯 하다. 5-6년 전만 해도 향신료 냄새때문에 중국 출장 갔을때 아무것도 못먹었다는 사람이 제법 많았는데 이제는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아 매운거 땡겨! 마라 조지러 가자!' 고 하는 친구들이 더 많을 지경이다. 처음 중국 파견이 결정되어 연락했을 때 몇몇 친구들이 "와 좋겠다. 가서 훠궈랑 마라탕 맨날 먹겠네!!!!"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실감한다. 새초롬하게 "아~~니. 가서 상해요리 많이 먹을건데~. 훠궈는 충칭 가서 먹을건데~" 라고 대꾸했던 나지만, 입맛이 각기 다른 친구들 여럿이 모여 술과 밥을 함께 즐기기엔 펄펄 끓는 훠궈만큼 적절하고 만만한 메뉴가 또 없어 애초에 생각했던 것 보단 자주 훠궈집을 들락거렸다. 

  훠궈에도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음식 연구가나 평론가가 아니라 유래와 특징을 정확하게 구분짓기 어려우나 먹어본 음식들을 돌이켜보면 지역마다 명확한 특색이 있었다. 차오샨식과 광동식 훠궈는 소고기 무국같은 뽀얀 육수에 옥수수의 들큰한 맛과 무의 시원함, 고기의 감칠맛이 곁들여져 국물을 자꾸 한 그릇씩 떠 마시게 된다. 겨울에 생각나는 맛이다. 대만식 훠궈는 뭔가 아기자기하다. 육수 옵션도 선택지가 다양하고 재료도 예쁘게 배열되어 나온다. 두부 인심이 특히 후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갖출 건 다 갖춘 느낌. 베이징에서 먹은 훠궈는, 베이징에서 먹은 모든 요리가 그랬듯 고기가 돋보였다. 양고기를 살짝만 익혀 먹어 수안양로우(涮羊肉) 라고 했다. 涮 은 씻다는 뜻인다. 하늘하늘 흔들어 고기를 익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하이난식 예즈지(椰子鸡) 는 코코넛 육수에 끓여낸 닭 한마리 같다. 먹어보기 전까지 약간 의아할 수 있지만 크림색 육수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이 엄청나다. 충칭훠궈는 등장부터 압도적이다. 박력이 넘친다. 고추와 향신료가 아낌없이 들어간 육수와 가장 낮은 단계로 설정해도 얼얼하게 매운맛에 압도된다. 장도 기름장 딱 하나뿐이다. 이것저것 섞어 소스 만드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름과 파, 마늘만 달랑 나오는 소스에 실망할 수 도 있다. 

같은 육수에 9칸으로 구획을 나눠 나온 구공격훠궈

  육수가 담겨 나오는 냄비도 각양각색이다. 2칸으로 나뉘어 2가지 국물을 고를 수 있는 원앙훠궈(鸳鸯火锅),  구획이 나뉘어 재료들을 적절한 칸에서 각기 익히기 좋은 구공격(九宫格), 신선로같이 가운데가 높이 솟아있고 동으로 얇게 펴서 만든 냄비(베이징식 훠궈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용으로 장식된 냄비...... 그 집의 특색을 그릇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각양 각색의 훠궈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건 보기만 해도 매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충칭 훠궈(重庆火锅)인데 술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가게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매캐한 향이 '오늘 한번 달려볼까?' 하는 마음을 일게 해 회사 근처의 충칭 훠궈집을 퇴근하고 꽤나 자주 갔었다. 6시부터 골목 안쪽에 빼곡하게 줄을 서 90분 대기는 기본으로 하는 유명한 곳이었다.

상하이 난징시루(南京西路)근처 마오밍베이루(茂名北路)에 위치한, 페이지에 훠궈(佩姐火锅). 자주 다녔다.

 사실 기름과 매운 향신료가 범벅된 충칭 훠궈는 맛있지만 어느 정도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음식이다. 술을 마시면서도 중간 중간 뜨거운 두유나 매실 음료, 빙펀(冰粉)으로 속을 달래줘야 하는데 이렇게 해도 다음날 화장실에서 99.9%의 확률로 고생하게 된다. 냄새는 또 어떤가. 훠궈집에 다녀오면 머리며 옷이며 온통 향신료 냄새로 범벅이 된다. 점심시간에 훠궈집에 다녀오면 사무실 동료들이 어렵지 않게 알아챌 정도이고, 저녁에 집에 오면서도 훠궈월(火锅味儿, 훠궈 냄새)을 풍기며 돌아와야 한다. 집에 오자마자 빨래는 필수다. 머리도 지체없이 감아야 한다. 훠궈집에 갈때엔 어두운 컬러의, 허리와 배가 조이지 않는 디자인이며, 물세탁해도 망가지지 않는 옷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로 먹는게 이롭다는 나의 지론은 이런 경험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와 화자오(花椒)가 한웅큼씩떠 있는 뻘건 육수에 재료를 익혀 기름과 파, 마늘을 넣은 장에 찍어먹으면 감칠맛이 남다르고 매운맛에 스트레스도 풀렸기에 이를 멈출 수 는 없었다.

 훠궈를 먹으러 갈 때에도 밀크티를 주문할 때 만큼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림잡아 4단계 정도는 된다.  


1. 궈디 (锅底)선택: 어떤 육수를 택할 것이냐. 

 재료를 끓여 먹을 육수를 궈디 라고 부른다. 어떤 냄비를 고르느냐에 따라 궈디의 갯수도 결정된다. 맑은 육수인 칭탕(清汤)과 매운 육수인 홍탕(红汤)이 보편적이지만 이 외에도 버섯 육수, 닭 육수, 코코넛 육수, 토마토 육수, 솬차이육수 같이 가게마다 특색있는 육수가 있다. 다양하게 고를 수 있지만 3개 이상의 선택을 해본 적은 없다. 나는 주로 구공에 마라홍탕을 택해 맵게 먹는 편.  

2. 훈차이(荤菜) 고르기: 훠궈의 메인 재료가 되는 고기, 해물류. 

 소, 돼지, 양, 생선, 갑각류, 완자류 같은 단백질 재료들이 해당된다. 얇게 썰거나 다져 나오는 다양한 육류 부위 뿐 아니라 다양한 부속물도 훈차이에 해당한다. 천엽, 대창과 같은 익숙한 내장들부터 뇌, 거위 혀 같은 특이한 재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동글동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완자도 훈차이. 

3. 수차이(蔬菜) 고르기: 부재료가 되는 채소류.

 고기나 해산물이 아닌 다른 재료들을 일컫는다. 보통 채소나 두부, 해조류, 면류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두부는 얼린것, 말린것, 가늘게 포뜬것, 유막만 걷어내어 굳힌것, 연두부 등 다양한 형태로 준비되어 있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면류는 주의깊게 건져내지 않으면 냄비 밑바닥에 눌어붙어 타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 

4. 디랴오(底料) 고르기: 찍어먹는 소스. 

 소스 바에 다양한 양념장이 준비되어 있는 가게가 있고, 아닌 가게가 있다. 보통 기본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재료 수도 다양하다. 장류로는 기름, 식초, 설탕, 해선장, 굴소스, 소금, 깨소스, 땅콩소스, 고추 다짐 소스, 라조장 같은게 준비되어 있으며 부재료로 고수, 쪽파, 참깨, 다진마늘, 절인 고추, 다진 샐러리 같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간단한 과일이나 스낵, 절인 채소가 소스 바에 함께 준비되어 있기도 하다. 다양하게 취향대로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으며, 모르겠으면 직원에게 추천을 부탁해도 된다. 


  식재료에 관심과 도전정신이 남다른 나에게 다양한 훠궈 재료는 눈이 튀어나올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요소였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재료들을 구경하고, 도장깨기 하듯 하나씩 맛보는 재미가 엄청나 처음 보거나 안 먹어본 재료가 있으면 꼭 시킬 정도였다. 몇번 먹다보니 취향이라는게 생겨 반복적으로 주문하는 재료들이 생겼는데 내가 특히 좋아해 친구들이 알아서 빼놓지 않고 나를 위해 주문하는 재료로 오리 창자(鸭肠)와 생 오리 선지(鲜鸭血), 천엽(毛肚), 개구리(牛蛙), 산마(山药), 다시마(海带), 궁채(贡菜) 라는 반건 채소가 있다. 다시마나 천엽은 한국 훠궈집에서도 흔한 재료라 한국으로 복귀한 지금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지만 오리창자와 오리 선지는 좀처럼 찾을 수 가 없어 아쉽다. '오리 창자에 오리 선지? 윽!! 그런걸 어떻게 먹어!'

오리 창자는 보통 이렇게 세척 후 길게 펴서 나온다

이러며 접해 보기도 전에 역겨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리선지는 소 선지와 달리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러운 표면에 탱글하기가 도토리묵 못지 않다. 쇠비린내도, 잡내도 나지 않으며 육수를 가득 머금어 일단 먹으면 계속 손이 가게 되는 맛이다. 오리 창자도 그렇다. 염통이나 곱창을 좀 먹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쫄깃함인데 두텁지 않고 종이장처럼 하늘하늘 얄쌍하다. 보통 얼음 접시에 잘 펴서 나오는데 모양새가 납작 우동면 같다. 뜨거운 불에 익히면 스프링처럼 돌돌 말려 익었는지 안익었는지 확인하기도 좋다.  개구리도 그렇다. 개구리는 중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재료지만 나는 생선이라기엔 맛이 닭고기같고 고기라기엔 살점에 결이 하나도 없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개구리의 식감을 꽤나 즐기는 편이다. 가시같이 가느다란 뼈를 호도도독 발라내며 먹는것도 제법 재미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먹는데 편견이 없으며 도전정신이 강하고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다. 

 한국에도 많은 훠궈집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유명 체인인 하이디라오도 있고, 어지간한 중화요리 집에서 제법 그럴듯한 훠궈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복귀한 뒤에는 어쩐지 훠궈를 잘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재료의 반절이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충분히 맵지 않아서인지, 선택지가 작아서인지, 마실거리가 부족해서인지 고민해보았는데 아무래도 - covid-19와 변이 바이러스 탓에 - 여러 명이 둘러 앉아 정신 없이 젓가락을 들이대며 먹을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아서인것 같다. 2명이서 외식으로 훠궈를 선택하기엔 재료의 낭비도, 양도 너무 많은 탓에 어느덧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훠궈 냄비가 있는 풍경을 잊어가고 있다. 나중에 결혼 하면 집에서 작은 냄비에 이것저것 복닥하게 모아놓고 훠궈를 먹어야지. 라고 다짐하며 지나간 시절의 충칭 훠궈 사진을 뒤적여본다. 당신은, 어디에 뭘 넣어 먹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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