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지만 웃음이 남은 기억

실패를 선물한 바가지

by 김인순

실패가 선물한 가을의 웃음, 박 바가지 소동

​캠핑장 한쪽에 마련한 작은 텃밭, 올봄에는 이웃에게 얻어온 호박 모종을 많이 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돋아나는 잎사귀가 심상치 않았다. 까슬까슬한 호박잎 대신 부드러운 잎을 가진 박잎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이웃에게 물어보니 호박인 줄 알았다고 한다. 호박이 아니고 박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어이없는 웃으이 나왔다.


자꾸 자라 갈 때 ​뽑아버릴까 생각했다.

남편은 하얀 박꽃이라도 보자며 넝쿨을 올려주었다. 호박잎은 벌레가 다 긁어먹었는데 박 잎은 벌레도 타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급기야 남의 밭까지 침범하며 넝쿨이 뻗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박이 많이 열어 감당이 안되어 어린 박을 따서 박나물도 해보았다. 처음 먹어본 박나물은 특유의 향 때문에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남편은 맛있다고 했다. 남편은 내년에도 박이나 심어야겠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린 박들을 따서 차에 가득 실어 이웃들과 당근에 무료 나눔을 했다.


된​서리가 내릴 즈음, 남편과 나는 박을 따서 생전 처음으로 '바가지 만들기'에 도전했다. 커다란 솥에 박을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얼마나 삶아야 할지 몰라 마치 뼈를 고우듯 한참을 삶았다. 박을 건지려고 만지니 박이 맥없이 끊어져 버렸다. 그 황당한 모습에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고 말았다. 다행히 몇 개는 겉면은 단단하게 살아있어 조심스레 속을 파내고 햇볕 아래 가지런히 널어 말리기 시작했다.

​그때 지나가던 이웃 형님이 한마디를 던지셨다. "박은 그늘에서 말려야 해. 햇볕에 말리면 다 오그라들어." 그 말에 서둘러 그늘로 옮겼놓았다. 일주일 뒤 다시 캠핑장에 와서 바가지와 마주한 결과는 어이없었다. 기대했던 매끈한 바가지 대신 뒤틀리고 오그라든 박으로 변해 이었다. 잘 말려서 캠핑장 이름을 멋지게 써서 걸어 놓으려던 우리의 계획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비록 바가지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가을 끝자락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귀한 수업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박의 등장부터 서툰 삶기, 그리고 건조의 실패까지. 그 과정마다 가득했던 웃음은 실패라는 이름의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