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우리 인순이는 복덩이야"
나의 친할머니는 딸 셋에 아들 하나뿐인 집안이었고, 외할머니네는 딸만 다섯이었다. 친정엄마는 가난한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셨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아들 손주 타령을 심하게 하셨다. 하지만 내 위의 오빠와 내 아래 동생네는 줄줄이 딸이었다. 오빠랑 동생은 딸 셋을 낳았다. 딸이 태어날 때마다 부모님의 서운함은 깊어만 갔다. 그렇게 상심을 하셨다. 그런데 정작 딸을 그토록 원했던 나는 아들만 셋을 낳았다. 나의 계획은 딸 한 명만 낳아 잘 키우자 여는데 말이다.
아버지는 오죽하면 우리 아들 하고 오빠네 딸하고 바꾸면 좋겠다고까지 하셨다. 내가 아들 셋을 낳으니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했었다. 그때 누구보다 아들 셋을 기뻐해 주셨던 분은 바로 나의 친정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유독 우리 세 아들을 예뻐해 주셨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잔병치레가 심해 늘 기운 없이 앉아 있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배고픈 나그네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려 밥 한 끼를 청했고, 부모님은 기꺼이 따뜻한 밥상을 차려 드렸단다. 식사를 마친 그분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부모님께 이 말을 남기고 가셨단다.
"이 아기 잘 키워요. 복덩이네 복이 가득 들어 있어"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나를 정말 '복덩이'로 믿고 나를 키우셨나 보다. 동네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들로 산으로 일하러 갈 때도, 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 보기 드문 공주로 살았던 셈이다. 아버지는 지게 가득 소 풀을 베어 오시면서도 간식거리를 가지고 오셨다. 연한 칡넝쿨과 찔레를 꺾어 오는 걸 잊지 않으셨다. 추운 겨울밤, 소죽을 끓이며 가마솥 옆에서 구워 주시던 고구마의 향기는 지금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아버지가 나를 귀하게 키워주신 건, 어쩌면 그날 나그네가 남긴 말 한마디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올해 아흔넷이 되신 아버지는 몸은 쇠약해지셨지만, 여전히 기억력도 좋고 계산도 나보다 빠르시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나에게 줄 건 없는지 살뜰히 챙겨주신다. 엄마보다 나를 더 챙기신다. 올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따뜻한 봄나들이를 가자고 약속을 했다.
"아버지, 저를 복덩이라 믿고 소중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그 사랑 덕분에 저도 제 자신이 늘 복덩이라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아버지가 캐 주셨던 칙을 어제는 남편이 캐주어서 생칙을 씹어 먹으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