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본 명언은 정주영 회장이 울산 조선소 건설을 놓고 모두가 반대할 때 꿋꿋이 밀어붙이며 남겼다.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조선소 없는 조선소 수주’라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이뤄냈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장남이었던 그는 소를 팔아 서울로 몰래 상경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강한 독립심과 실행력을 보였다. 그가 처음 고향을 떠나며 남긴 말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였다. 어린 소년의 이 다짐은 이후 평생을 관통하는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 그는 쌀가게 배달원부터 시작해 정비공, 회계원,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일제의 식민통치와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젊은 청년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정 회장은 ‘머리보다 몸이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는 철학을 익혔다.
1937년, 그는 자동차 정비업체 ‘아도서비스’를 창업하며 첫 창업을 시도했지만 일제의 통제와 자금난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정 회장은 건축자재를 나르는 운수업에 뛰어들어 사업 기반을 잡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직후 물자 복구와 관련된 수요가 커지며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1947년 창립한 현대토건사를 통해 정주영 회장은 본격적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전후 복구 사업을 시작으로, 그는 경부고속도로, 한강 철교, 국회의사당 등 국가 인프라를 잇달아 수주하며 ‘대한민국의 재건’을 책임지는 민간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70년대, 한국기업으로는 전례가 없던 중동 건설시장 진출을 단행해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에서 수조 원대의 공사를 수주했고, ‘해외건설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 되었다.
정주영 경영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울산 조선소다. 조선소도, 기술도,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선박부터 먼저 팔고, 그 수주금으로 조선소를 세웠다. 이 전대미문의 발상은 현대중공업을 낳았고, 한국은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도약했다. 이후 현대자동차, 현대전자, 현대상선 등 계열사를 연이어 세우며 현대를 ‘산업 왕국’으로 키웠다. 1980년대, 현대그룹은 재계 1위로 올라섰고, 한국 GDP의 10%를 차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92년, 정계 진출을 선언하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를 내려놓은 뒤에도 ‘민간 외교’의 선봉에 섰다. 특히 1998년, 소 1,001마리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소떼 방북’은 남북경협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후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실현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2001년, 그는 87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과 기업가 정신은 여전히 한국 산업화의 살아 있는 신화로 남아 있다.
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1972년, 정 회장은 산업화의 다음 스텝으로 조선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는 조선소도, 조선공학도, 관련 기술도 없었다. 정부조차 회의적이었고,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무모한 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울산의 황무지를 조선소 부지로 사들일 때,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확신이 있었다.
당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바로 ‘조선소 없는 조선소 수주’였다. 그는 그리스의 선주사에 도면도 없이, 조선소도 없이, 선박 두 척을 먼저 팔았다. 그리고 그 계약금을 기반으로 울산에 현대중공업을 짓기 시작했다. 계약부터 조선소 완공까지 고작 3년. 세계 해운업계가 경악한 이 사건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한국이 ‘기술 후진국’이라는 인식을 뒤집은 사건이었다.
정주영은 이 결정을 내릴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이 못한다고 못할 이유 없다. 우리는 기회조차 없었을 뿐이다.” 이 판단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조선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위기는 늘 기회였다. 그는 상식 밖의 결정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 터닝 포인트는 그가 어떤 리더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신중함보다 과감함, 불확실성 앞에서의 냉철한 직관, 무엇보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로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 이는 현대적 경영 이론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실제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었다. 이 한 번의 결단은 현대그룹의 위상을 바꿨고, 대한민국 산업의 수준을 바꿨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정 회장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핵심적인 자질은 ‘실행 중심의 낙관주의’다. 그는 누구보다 현실적이었지만, 현실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그는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데 탁월했다. 그는 남들이 자료를 검토할 때 현장에 먼저 나갔고, 남들이 회의할 때 계약서에 먼저 사인했다. 두려움을 행동으로 바꾸는 이 힘은 결국 실행력에서 나온다.
이 능력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환경, 정보 과잉, 리스크 회피가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독자는 그처럼 큰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 대신 작은 일이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바로 실행해보는 연습을 해보자. 계획은 짧게, 실행은 빠르게. 그 리듬이 익숙해질 때, 비로소 리더십도 생겨난다.
리더도 사람이다?!
중동 건설 현장에 갔을 때, 현지 관계자가 “한국인은 정말 성실하다”고 말하자 정 회장은 웃으며 “예, 우리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여자도 안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통역이 난처해하자 정주영은 “그냥 ‘예’라고만 해”라고 툭 던졌다. 회의장은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됐고, 분위기는 단숨에 풀렸다.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