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들고 벌을 서야만 갈 수 있는 그 곳을 아시나요

용와이오름

by 민작가

서귀포시 안덕면은 제주 서쪽에 위치해 있다. 안덕면이 제주시와 서귀포시 경계에 있어서 애월에서 20여분이면 갈 수 있다. 그래서 안덕면에 위치한 오름들도 많이 탐방하였는데 그 중 용와이오름은 습지를 품고 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 땅의 특성상 물이 귀하기에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이나 습지도 흔하지 않다. 대표적인 습지오름은 물영아리오름인데 서귀포 남원읍에 위치한 동쪽오름이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로는 접근이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서쪽에 습지오름이라니! 이런 연유로 용와이오름의 다른이름이 서쪽 영아리라는 뜻의 서영아리오름이다. 앞서 탐방을 했던 분들의 블로그 글을 훑어보니 탐방로가 쉽지 않아 보이고 왕복 시간도 2~3시간으로 제법 소요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꽤 다녀온 곳인데 얼마나 힘들겠냐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대로변에서 주차장까지 들어가는 길도 좁은 숲길이라 으스스했고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불안을 살며시 안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온 회원들이 다들 그 얘기로 떠들썩했다. 오늘은 신입회원 2명과 이별할 회원1명까지 총 8명이 함께 여정을 할 터인데 약간 불안과 걱정을 짊어지고 출발해야 했다.




주차장에서 오름 입구까지 15분가량 걸릴정도로 깊은 숲길이었지만 길이 시원시원하고 햇살이 좋아 기분좋은 발걸음을 이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길이 확 좁아지더니 풀과 나무가 엄청 우거진 길이 나타났다. ‘이제 시작이구나.’ 긴장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나무에 노란색 리본이 간간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갈림길이었다. 직진아니면 오른쪽. 둘다 리본이 달려있어서 더 갈등했다. 직진본능을 따라 걸었는데 갈수록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큼 키가 큰 풀들이 점점 더 길을 차지하고 내가 발을 딛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니구나.’ 후퇴!


8명이 다시 후퇴하고 아까 전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은 발을 내딛을 수는 있지만 하늘이 나무에 가려 어두웠다. 그래도 일단 길이 있으니 가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걸었다. 우리는 정상으로 가야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내려간다. 그래도 수풀을 헤치고 바위를 넘으며 사람의 발길을 열심히 찾아 걸었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화산송이길, 숨골같은 작은 동굴, 희한한 열매와 나무들을 지나쳐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습지’였다. 세상에! 정상을 넘어 습지로 가는 길이 찾기 힘들다고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읽었는데, 우리는 어떻게 습지로 먼저 와 버렸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반가움 등 여러 마음이 교차하면서 습지를 한참 감상했다. 깊은 숨 속 옹달샘이라서일까 새나 노루는 보이지 않았다. 햇살이 비친 물과 수풀들이 참 아름다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건 그런 곳일수록 사람들이 더 열망하고 많이 찾는 장소가 된다.


습지를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또 멈춰서 바라보다 반복한다. 물가에서 올챙이와 개구리떼를 얼핏 보았다. 역시 물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연이다. 그런 마음도 잠시, 발길을 돌려 이제는 이 어두운 숲 속에서 탈출하고 싶다. 왔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길을 계속 찾아 갈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다시 돌아가는 길도 쉽지 않으니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보자는 결정을 내리고 나아간다. 도전정신은 높으나 그 뒤로 이어진 여정은 정말 힘들었다. 처음에 맞닥뜨렸던 길 같지 않은 길의 연속이었다. 수풀의 키는 성인 여성만큼 크고 포위망이 좁혀져 내가 개척자인 마냥 길을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수풀 사이에 가시나무까지 있어서 팔이 긁히고 옷이 뜯기고 키가 큰 한 분은 얼굴이 긁히기도 했다. 저절로 두 팔을 들어서 가야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키가 150cm 밖에 안되는 분은 앞사람 등만 보며 걸어야 했다. 걱정과 불만을 토하다가도 8명이 두 팔 들고 벌서며 걸어가는 장관을 목도하면 웃음이 난다. 이렇게 힘들게 가는 게 나의 책임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만 긍정녀가 ‘재미있다’고 한마디 할 때마다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져 참 고마웠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가는 길에는 제대로 된 정상이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반가웠지만 뻥 뚫린 정상은 어디에 있는지 애가 탔다. 이미 길잡이 리본은 못 본 지 오래되었고 정상을 찾아 헤매다 그냥 주차장에라도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애월 큰손이 아침부터 싼 김밥을 4줄이나 우리에게 투척했다. 손 큰 애월씨의 김밥에는 계란 지단과 햄이 3줄이나 들어가 있어 포만감은 물론 당수치를 확 당겨올리기에 충분했다. 긍정호르몬이 충전되었는지 다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삼나무 숲에 들어섰다. 한동안 높다란 삼나무길에 심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삼나무 숲에서 길을 잃었다. 아뿔싸! 수풀에 가려진 길만 걷다보니 풀이 없는 삼나무 숲에서는 모두 길이었기에 막 헤쳐가던 게 화근이었다. 방향감각과 햇빛을 모두 잃었다. 심지어 핸드폰 신호도 약해서 인터넷이 안 터진다.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전화가 안 터지는 곳이 바로 여기다. “조난 신호나 구조요청해야 하지 않아?” “우리 애들 밥 어떻게 하지?” 등등 걱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들이 내 귀에 꽂혔다. 내가 7명을 여기 데리고 왔으니 나까지 동요하면 답이 없다. 어떻게든 끌고 나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더이상 길이 없으니 후퇴만이 답이다 싶었다.

지금은 인터넷도 소용없으니 모두의 기억을 모아 왔던 길로 갑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건 함께한 사람이 많았기에 서로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기억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되돌아가는 길을 찾았다. 그리고 희망의 줄기를 찾았다. 되돌아 가던 중에 리본을 찾았다!


안도감에 나는 뒤로 빠지고 약골녀가 앞장 섰다. 위기는 사람을 강하게 하던가. 그녀가 길잡이 역할을 한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돌담을 넘고 집채만한 바위도 기어 오르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계속 오르니 도달한 곳은. 드.디.어. 정상이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화상송이 사막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바위 둘. 일명 형제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저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우리가 헤쳤을 수풀 머리들이 보이는 전망이 너무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고 나온 후련함과 그렇게 찾던 정상을 찾은 기쁨의 탄성이었다. 찍사를 자처한 분이 등떠밀어 모두들 바위 위에서 각자의 인생샷을 남기고 여러 감정을 추스리느라 한동안 정상에 머물렀다. 형제바위 뒤로 쭉 뻗은 잘 닦인 길을 보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 길을 걸으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허무함을 느꼈던 건 얼마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 갈림길에서 후퇴하지않고 원래대로 직진을 했더라면 바로 이 길과 만나는 것이었다. 내 촉을 의심했어야 했는데 ‘또 잘못된 촉때문에 그 고생을 했구나.’하는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하산하는 내내, 그 때를 회상하는 지금도 마음이 참 불편하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살아 나와서 아이들 하교시간 전에 다들 집에 무사히 도착한 걸로 다시 위안을 삼는다. 사람들 여러명이 가서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아니 되려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생고생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재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고 또다른 생고생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잘 하자고 다짐한다.


용와이오름 경험을 토대로 탐방 방식을 조금 변경하였다. 내가 매번 앞장을 서서 걸었는데 이런 생고생을 덜하고자 회원들이 매번 길잡이를 돌아가면서 하기로 말이다. 길잡이는 사전에 탐방로와 주차장 등을 조사하여 리더와 짐을 나눠 짊어지기로 한다. 얼마가지는 않았지만 회원들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나도 편한 방법 중의 하나다.

참! 용와이오름에 얽힌 놀라운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눈에 띄는 빨간색 경고문에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 지역은 군 전술 훈련장으로 민간인 출입을 금지합니다. 해병대 제 9389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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